평양 지침받아 '결렬' 준비했나..김명길, 복귀 10여분 만에 성명
직후 10분만에 나와 준비된 원고 읽어
통역도 영문 원고 미리 준비해 읽어
낮에 이미 평양 보고후 결렬 정한 듯
취재진 질문에도 원고 보고 읽어 내려가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 오후(현지시간)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북·미 실무협상 결렬을 발표한 상황을 보면 오후 대미 협상에서 성과가 없을 것을 예상해 발표문을 미리 준비한 정황이 나타났다. 김 대사는 2시간 30분가량 협상장을 비웠던 낮 시간에 평양에 보고한 뒤, 오후 회담에서도 미국 측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경우 발표할 입장문을 미리 준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대사의 성명 발표에 앞서 권 전 국장은 질문을 세 개 받겠다고 안내했다. 김 대사가 발표문을 읽은 후 실제로 취재진의 질문 세 개를 연달아 받았다. 하지만 김 대사는 이들 질문과 관련해 하나하나 답하지 않고 다시 종이에 적힌 발표문 내용을 읽었다. 회견을 지켜보는 동안 김 대사가 준비된 원고를 보지 않고 즉석에서 답한 것은 몇 문장에 불과해 보였다.
김 대사의 발표문과 통역 상황 등을 볼 때 이는 협상장을 떠나 대사관에 복귀한 회견까지 10분 이내에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인쇄한 입장문과 통역 직원이 들고 있던 영문 입장문에 휴대용 조명까지 사전에 준비했다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김 대사는 앞서 이날 정오쯤 협상장을 떠나 북한 대사관으로 돌아가 2시간 30분가량 머물렀다. 저녁 입장문 발표로 보면 김 대사는 오전 협상에서 나온 미국 측의 입장을 들은 뒤 낮 시간에 평양에 보고하고 추후 발표할 입장문 내용까지 조율을 거쳐 모두 준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 대한 비난 내용 역시 당연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결렬이건 합의건 ‘최고존엄’의 승인이 없이는 발표할 수 없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상식이다.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협상 후 이탈리아 식당에서 미국 측 관계자들과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면서는 식당 측엔 식사가 맛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건 대표는 밤늦게 숙소인 쉐라톤 호텔로 돌아왔는데, 경비원이 지키는 주차장을 이용해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했다.
예비접촉 실무진도 모두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미국 측 대표였던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대북특사는 이날 밤 늦게 쉐라톤 호텔로 돌아왔으나 본지 취재진이 북한의 미국 비난에 대한 입장을 묻자 답을 피했다. 역시 예비접촉에 참여했던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도 호텔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으나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후커는 기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며 "남은 휴일 잘 보내라"는 말만 남겼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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