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1억개 지어도 안 쓴다..'큰 볼일' 밖에서 보는 인도인

이승호 2019. 10.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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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 니자무딘역 인근 철로에서 한 소년이 노상 배변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인도에서 노상 배변(Open Defecation)은 사라졌습니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 150주년을 맞은 지난 2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 5년간 약 1억1000만개의 화장실을 6억명 이상의 인도인에게 보급했다”며 “이렇게 짧은 시기에 인도가 노상 배변이 없는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현실이 됐다”고 자랑했다. 본인이 주도한 ‘클린 인디아’ 프로젝트의 임무 완수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클린 인디아는 모디 총리가 인도를 ‘노상 배변 없는 나라(Open Defecation Free)’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지난 2014년 10월 시작한 화장실 보급 프로젝트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25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주는 상도 받았다. 화장실 보급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일 마하트마 간디 탄생 15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행사에서 꽃을 뿌리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모디 총리가 상을 받은 날, 인도 중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노상 배변 문제가 미해결 과제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의 희생자는 10살과 12살 남자아이 2명이었다. 이들은 인도의 최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달리트(Dalit)'에 속했다. 달리트 층에 속하면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 빈곤층에 속한 이 아이들은 집에 화장실이 없어 밖으로 나와 용변을 보려다 성인 남성 2명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몸에 몽둥이와 각목으로 맞은 자국이 처참했다.

'소똥=귀중, 인변=불결'…13억 인구 절반이 화장실 無
지난 6월 인도 북부 비하르주 무자파르푸르 지역의 한 병원에 급성뇌염증후군(AES)에 걸린 아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인도에서 AES 등 각종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엔 노상배변도 한 몫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인도에서 화장실 부족은 뿌리 깊은 문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인도 13억 인구 중 절반인 약 6억2000만명이 화장실 없는 집에 살았다. 대다수는 시골 거주자였다. 이들은 급한 일은 동네 들판이나 후미진 골목, 강가나 해변에서 해결했다. 이로 인해 노상 배변은 인도에서 각종 질병 창궐의 주범이 됐다. 배설물이 노상에 방치되면서 음식물과 물을 오염시켰다. 2013년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인해 발생한 설사 환자가 1억9900만 명에 달했다.

노상 배변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행도 문제다. 힌두교 교리에선 신성시하는 소의 똥은 귀하게 여겨지지만, 사람의 배설물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부정한 것으로 분류한다. 이로 인해 인도에선 집 안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에 반감이 있다.

인도의 뿌리 깊은 계급제도 역시 원인이다. 역사적으로 인변을 치우는 일은 달리트 층이 전담해왔다. 인도의 계급제인 카스트 제도는 공식적으론 폐기됐지만 실제 국민 생활에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접촉 자체도 허용되지 않는' 불가촉천민이 자신의 집에 드나들며 인변을 청소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반감도 크다. 달리트 층은 인도 국민 중 약 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8월 인도 비하르 지역의 사리사브 파히에서 한 여성이 집에 화장실을 지은 것을 축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여성에게 노상 배변은 더 큰 위험이다. 용변을 보다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불법 촬영을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2014년 인도 북부 시골 마을에서 들판에 용변을 보러 나갔던 14세, 17세 소녀 2명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모디 총리의 주요 과제는 화장실 개선…논란은 여전

모디 총리가 캠페인을 시작한 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으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설사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인도인 30만 명이 생명을 건졌을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CNN은 “캠페인 시작 전엔 인도 가구의 39%만이 화장실을 갖고 있었다”며 “올해 세계은행의 지원 속에 지난 2월 인도 정부가 실시한 조사에선 인구의 약 96%가 화장실 이용이 가능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최근엔 보급률이 100%에 달했다는 게 인도 정부의 주장이다.
지난해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을 맞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소녀들이 변기를 들고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도 정부의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화장실 보급률 수치가 과장됐고, 여전히 노상 배변은 인도에 만연해 있다고 주장한다. CNN은 “인도 시민단체 공감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시골 지역에선 약 70%의 인구가 노상 배변을 했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여전히 44%의 인구가 노상 배변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클린 인디아 프로젝트에 따라 화장실이 설치됐지만 물 부족, 관리 부실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인도 정부는)화장실을 짓기만 했지 제대로 유지·보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모디 총리가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상을 받은 것도 인도 내에선 비판의 대상이 됐다. 나자르 칼리드 공감경제연구소 전문위원은 CNN에 “인도 화장실 문제의 해결책은 ‘보급’이 아니라 ‘행동 개선’에 있다”며 “인도 정부는 화장실만 설치할 것이 아니라 인도 시민의 건강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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