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읽기] '뒷담화'가 술만큼이나 끊기 어려운 이유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19. 10. 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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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는 사회적 '그루밍'.. 정서적 유대감 높이는 호르몬 분비
부정적 내용 많은 건 생존 위해 '위험 신호'에 더 민감 반응 때문
생존 자체에 매몰된 우리 삶.. 행복하려면 '감사 행동' 익혀야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뒷담화'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말이라 하는데, '당사자가 없는 뒤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뜻의 영문 'talk behind somebody's back'을 뒷담화로 번역한 경우를 보게 된다. 긍정적인 평가의 뒷담화도 있겠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지나친 뒷담화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흔한 사회현상이라 뒷담화 관련 연구들이 적지 않은데 대화의 3분의 2가 뒷담화란 이야기도 있다.

왜 뒷담화를 많이 하는 걸까. 과음하면 건강에 해로운 술을 끊어야지 생각해도 쉽게 행동화가 안 되는 것은 긴장된 나를 이완시켜 주는 술의 심리적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쾌감이 없는 것엔 중독이 일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뒷담화가 좋지 않은 것을 아는데도 이렇게 번성하는 것은 뒷담화에도 무언가 심리적 유익이 있기 때문일 텐데 우선 사회적 관계를 강화시켜 준다는 주장이 있다. 뒷담화를 나누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사회적 그루밍(grooming)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침팬지들이 서로 털 손질 등을 해주는 그루밍 행동을 통해 적이 아닌 친구임을 확인하는 것처럼 사람의 뒷담화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동물에 비해 인간이 더 많은 숫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실제 그루밍보다 훨씬 효율적인 뒷담화란 사회적 그루밍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상대방의 털을 손질해주는 것보단 뒷담화가 훨씬 쉬울 것 같긴 하다. 뒷담화가 정서적 유대감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호르몬 '옥시토신'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타인과의 대화를 뒷담화, 뒷담화가 아닌 친밀한 대화, 일반 대화로 나누어 비교하니 모든 대화 때 스트레스 호르몬은 줄어들었으나 옥시토신은 뒷담화 시에만 증가했다고 한다.

긍정보단 부정적 내용의 뒷담화가 훨씬 많은 것은 생존을 위해 위험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예를 들어 왕 입장에서 누가 충신이란 뒷담화는 좀 천천히 들어도 왕권 유지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신하가 역신이라는 뒷담화는 시간을 다투는 생존 정보다. 부정적인 뒷담화가 생존 불안을 자극하기에 더 많이 생산되고 강하게 전파되는 것이다. 말문이 트이면 뒷담화가 시작된다는 주장도 있다. 태어날 때 이미 생존 유전자에 뒷담화 소통 능력을 담고 태어나는 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인생 목표가 어떻게 되세요'란 질문에 대답을 금방 못 하는 분이 많다. 유전자도 생존을 밀어붙이는데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도 '더 열심히 완벽을 향해 달려 달려'라고 내 마음을 채찍질하다 보니 무엇을 위해 생존하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존 자체에 매몰되기가 쉽다. 단체 사진 찍을 때 빠지지 않는 구호, 파이팅(fighting)은 영어권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콩글리시'라 한다. 미국 사람한테 '파이팅' 하면 '한판 싸우자는 건가'하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얼마나 생존을 위해 전투적으로 살았으면 힘내자란 구호가 파이팅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행복'을 인생 목표라고 답하는 분이 많다. 그런데 행복이 인생 목표면 오히려 행복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목표는 도달할 때 만족감이 오는데 행복이라는 목표는 소박한 듯싶지만 굉장히 높은 수준의 목표이고 기준을 설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이 감정인 것인지 성취인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행복에 도달한 것인지 기준 설정이 어렵다. 행복은 목표보다는 내가 세운 행동 목표를 실천했을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결과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어떤 행동 목표가 행복을 마음에 잘 가져오는지 연구가 많이 돼 있다.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한다면 '감사 행동'이다. 감사 일기를 쓰도록 한 그룹과 불평 일기를 쓰도록 한 그룹에 대한 비교 연구를 보면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했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감사할 게 있어야 감사하지'란 생각도 들지만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나를 위한 감사 행동'은 연습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마음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행동이 일어나지만 반대로 행동이 내 마음에 행복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뒷담화의 에너지원인 생존 본능이 우리를 숨 가쁘게 밀어붙이는 삶이지만 그래도 겨울이 오기 전 멋진 가을 하늘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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