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대통령의 통치력이 실종된 자리에..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19. 10. 8. 03:17 수정 2020. 11. 1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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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는 작은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날 테지만
대통령의 신망에 금이 가고 좌파정권의 존립가치 크게 훼손할 것
김대중 고문

‘조국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지난 2년여, 비록 반대와 비판은 극심했어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조국 사태 이후 대통령의 통치력에 강한 의문이 생겼다. 통치력은 국민을 아우르는 통합력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는 한쪽 편을 감싸며 그 세력 안에서 안존하는 반(半)쪽 대통령의 길을 택했다.

조국 사태는 조만간 끝날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만난을 무릅쓰고 감싸 안은 조국씨가 승승장구할 수도 있고 어쩌다 조국씨가 물러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국당이 기약 없이 허물어질는지도 모르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날 수도 있다. '조국 문제'는 전체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작은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조국 사태는 큰 후폭풍을 남길 것이다. 대통령으로서의 문재인의 신망에 금이 가고 좌파 정권의 존립 가치를 크게 훼손할 것이다. 한 법무장관 자리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한 몰염치한 정치인(전직 교수) 가족의 욕심이 이렇게 세상을 휘젓고 대통령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큰 회오를 남긴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통치력 부재라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 사태의 사실상의 피해자는 조국씨도 그의 가족도 아니고 문 대통령이다.

'조국 지키기'가 문 대통령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럴 만한 사정이 무엇인지 그런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졌다. 조국을 둘러싸고 국민이 크게 갈려 싸울 때 대통령은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했을까?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찬성하는 사람들 즉 친문은 문 대통령이 얼마든지 설득하고 달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여론조사상으로도 조국 반대가 찬성을 앞지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반대' 쪽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혐의 없음'만 내세워 찬성 쪽에 섰다. 혐의 있고 없고는 법정에서 재판관이 따질 일이다. 대통령은 재판관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신임 법무장관의 보고를 받으면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한편의 소극(笑劇)을 보는 것 같았다. 대통령을 그지없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대통령의 권한으로 하면 된다. 도대체 검찰 개혁이 얼마나 큰 괴물이기에 대통령이 마치 검찰과 싸우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일까? 아마도 전(前) 정권의 싹을 자른 '적폐 청산' 때 검찰을 부려먹은 원죄(?) 때문인가?

문 대통령은 조국 지지 데모를 자제시켰어야 했다. 자고로 집권당은 데모하지 않는 법이다. 찬반 간에 국민을 선동해서도 안 된다. 야당과 다르다. 여당의 독주로 정상적인 길이 막힌 야당은 선동에 나설 수 있다. 지금 여당이 야당 때 아주 잘 써먹었듯이. 하지만 여당은 선동이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 집권 세력이 선동에 나선다는 것은 통치력은 포기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7일 대규모 집회 사태는 국론 분열이 아니고 직접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국론 분열 아니면 무엇이고 직접민주주의 하려면 정부는 왜 있고 국회는 왜 있나? 구차하게 '검찰 개혁'을 내세우기보다 차라리 '내가 왜 조국을 지키려 하는가'를 말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보다 솔직했을 것이다.

나라의 형세는 어려워지고 있다. 모든 것이 대한민국에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거리를 두면서 멀어져 가고 북한은 그 틈새를 타고 동북아의 강자인 양 고자세로 나오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를 아예 발아래 두고 있다. 국내 경제는 저성장(低成長)으로 가고 있다. 군인들은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낄낄거리고, 외교관들은 여기저기 무릎 꿇기 바쁘다. 여당은 장기 집권 야욕에 휘말려 있고 야당은 내분으로 어지럽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오로지 '북한 모시기'에 혈안이다. 지금 대한민국 초미의 관심은 '조국이냐 아니냐'다. 어느 쪽이 더 많이 모여 세를 과시했느냐는 숫자 놀음에 빠져 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문 정권의 잘못된 질주를 비판하는 일부 진보·좌파의 성찰이 눈에 띈다. 소모적 좌파 일변도로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국식(式) 거짓과 파렴치를 경계하는 호루라기 소리다. 조국 사건 하나 해결 못 하는 통치력으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반성은 점차 번질 것이다. 머리 좋고 생각 바른 사람들은 다 떠나고 물불 못 가리는 호위무사들만 데리고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조국 사태는 그 교훈은 하나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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