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치료할 곳이 '엄마의 품'밖에 없어요

이종섭 기자 2019. 10.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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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재활 난민’ 중증장애아동
ㆍ뇌병변 1급 장애 겪는 8살 광국이, 재활병원 찾아 온 가족 전국 유랑
ㆍ‘소아재활’ 223곳뿐…갈수록 줄어, 전문병원 단 1곳…또 어디로 가나

대전 서구 관저동 건양대병원 소아낮병동에서 치료사가 어린이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석광국군(8)은 첫돌이 되기 전 뇌병변 1급 장애 진단을 받았다. 팔다리를 맘대로 움직일 수 없고 안아주지 않으면 누워서만 지내야 한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몸이 틀어지고 굳기 때문에 꾸준한 재활치료가 필수적이다. 석군이 살던 경북 안동에는 소아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 장애 진단을 받은 후 석군 가족이 집을 떠나 치료할 곳을 찾아 떠도는 ‘난민 생활’을 해야 했던 이유다.

석군 가족은 그동안 재활치료를 위해 서울, 경기, 부산 등지의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다. 울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장애 진단을 받고 처음 찾아간 곳은 석군 외가가 있는 경기 고양시였다. 그곳에서도 당장 입원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서울의 한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대기 환자가 많아 장기 입원이 어려운 데다 병원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야 했다.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부산이었다. 안동에서 차로 3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인 탓에 부산의 한 병원에서 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입원치료를 했다. 생활은 엉망이 됐다. 결국 석군의 재활치료를 위해 가족이 모두 부산에서 가까운 경남 김해시로 이사했다. 4~5년간 부산에서도 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그사이에도 서울·경기 지역으로 여러 번 원정치료를 다녔다. 2년 전 아빠의 직장 문제 등으로 다시 안동으로 이사한 석군은 더 이상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안동에는 여전히 석군이 안정적으로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 부산에서는 소아낮병동에 다니며 매일 6시간씩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1주일에 3일, 하루 30분~1시간 정도 외래로 재활치료를 받는 게 전부다. 소아낮병동은 석군 같은 장애아동이 집에서 생활하며 낮에만 병원에 입원해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장애아 가족에게 선호도가 높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병원에서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소아재활치료를 꺼리기 때문이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속적인 소아재활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의원은 223곳(2014년 기준)으로 파악된다. 2015년 기준 전국 의료기관 수가 2만9488개인 점을 감안하면 소아재활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은 1%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적자를 이유로 소아재활을 포기하는 병원이 적지 않다.

소아재활치료 전문병원은 서울에 있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1곳뿐이다. 석군처럼 치료할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재활 난민’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석군 아버지(42)는 “광국이가 재활치료를 한 지 7~8년이 지났지만 치료 여건은 달라진 게 없다”며 “다시 다른 지역에서라도 치료를 하고 싶지만 광국이 동생들도 보살펴야 하고 경제적인 상황도 그럴 만한 여건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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