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덴마크에선 가르치고 한국에선 안 가르치는 것

2019. 10. 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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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5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외국에서 온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은 방송에 소개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당시 방송에서 내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는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사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그런 칭찬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도로 옆 화단이든 산속 둘레길이든, 나는 자연 속에 쓰레기를 버리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자연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소중하고 고마운 공간인데, 어떻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더럽히고 망가뜨릴 수 있겠는가.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자연은 울타리 너머에 있는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집 밖을 나서며 만나는 모든 열린 공간이다.

덴마크에선 오래전부터 숲 교육이라 불리는 자연친화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이 일반화되어 있다. 아이들은 몸을 쓰며 뛰어놀아야 하고, 이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공간은 자연이라고 덴마크 사람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어린 시절 '네이처 클럽'이라는 청소년 클럽에 참여해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자연을 돌보고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는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마음껏 뛰어노는 그 시간 동안 누구도 내게 조심하라고 소리 지르거나 다쳤다고 혼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은 내 옷에 흙먼지가 많이 묻어있을수록 "우리 에밀, 오늘 정말 밖에서 신나게 놀았구나!"하며 반겨주셨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숲의 하늘이 늘 파랗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치며 깜깜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눈이 내리면 하얗게 변하고 다 죽은 것 같았던 앙상한 가지들에서 봄이면 다시 새싹이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자연은 아름답게 옷을 갈아입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이러한 감정을 나의 딸 리나에게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 유민은 리나를 아기 때부터 집 뒷산에 데리고 다니며 자연과 친해지게 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리나도 그 어떤 장난감보다 자연 속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신기해 하며 좋아한다.

그 과정에서 나뭇잎, 나뭇가지, 흙, 돌멩이, 솔방울, 풀은 리나의 장난감이 되었고, 개미, 거미, 메뚜기, 풍뎅이, 애벌레, 지렁이, 나비는 리나의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리나에게도 자연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더럽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과 자연과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가 먼저 자연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보고 배운다. 때로는 아이들을 자연 속에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자연을 단순히 위험하고 함께 하기 힘든 곳, 불편한 곳으로 인식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따뜻함과 경이로움을 알려주고 싶다. 산속에 모기와 거미가 많은 것도, 길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것도, 때로는 우리를 찌르는 나뭇가지와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는 돌부리가 곳곳에 존재하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함께하는 시간이다.

칼이 위험하다고 해서 아예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할수록 부모가 보는 데서 잡아보게 하고 잘 다룰 수 있도록 사용법을 교육해야 한다는 게 덴마크 부모들의 생각이다. 자연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이들이 자연에서 놀 때는 걱정과 통제를 조금 줄여도 좋을 것 같다. "하지 마!", "조심해", "넘어져" "다친다" 같은 말들은 아이를 위축시킨다. 예전에는 한 번 다치면 치료가 쉽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자연 속에서 얻는 웬만한 상처는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으니 좀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노는 것에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전혀 즐겁지 않을 것 같다. "놀랐잖아.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라는 질책의 말이나 "야, 괜찮아 일어나"라는 차가운 말 대신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고 공감해 주는 자세가 어른들에겐 필요하다.

덴마크에서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정부가 엄청난 세금을 쓴다. 허가 없이는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을 수도, 개구리 알을 가져갈 수도 없다. 돈이 들고 불편한 정책들이지만, 사람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산업계에서도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그 상품이나 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과감히 포기하고는 한다.

이렇게 덴마크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는 데 큰 비용을 지출한다는 얘기를 하면, 어떤 한국 사람들은 "덴마크는 돈이 많은 선진국이라서 그런가 보네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덴마크 사람들이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과 자연과 함께하는 행복한 기억을 쌓아왔기 때문일 거다.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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