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동호의 시시각각] 평범한 시민들의 '광화문 앙가주망'

김동호 입력 2019.10.09. 00:23 수정 2019.10.0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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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인내심 한계 넘어 길거리로
대통령은 '심리적 내전' 방치 말고
시민들 정의 회복 요구 받아들이길
김동호 논설위원
나라가 두 쪽 난 걸 현장에서 직접 보니 참담했다. 광화문과 서초동은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광화문에선 ‘조국 사퇴’ ‘조국 구속’을 외쳤고 서초동에선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소리쳤다. 현재로는 이 심리적 내전 상태를 해소할 사람은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럴 의사가 없는 듯하다. 그제 “국민이 직접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해서다. 문 대통령은 왜 한쪽 민심에 기울어진 것으로 읽히는 듯한 말을 했을까. 혹여 서초동에도 적지 않은 시민들이 집결해 조국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봤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큰 오판이다.

조국 사태는 사모펀드 투자, 웅동학원 문제, 자녀 입학 과정에서 희대의 반칙과 위선을 보인 사람을 장관에 기용한 게 발단이었지, 대의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조국의 거취는 아무 언급 없이 조국 사태의 책임을 남 탓하듯 외부로 돌렸다. 이래서는 광장의 외침이 끝나긴 어려워 보인다.

그 근거는 광화문에서 엿본 ‘세 가지 현상’이다. 첫째는 광화문 집회가 보수 진영만의 집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인파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았다. 한눈에 보면 알 수 있다. 손을 맞잡은 중년 부부와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층은 모자 쓰고 등산복 차림을 한 동원된 사람들과는 다른 티가 난다. 휴일을 반납하고 뙤약볕 아스팔트에 서는 게 동원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이에 비해 서초동은 기획된 의도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곳곳에서 플래카드를 나눠줬고, 서울시에선 광화문에는 없던 임시 화장실 30개를 제공했다. 지상파의 헬기·크레인 방송 지원까지 받으면서 관제집회 성격이 더 짙었다. 선동적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모두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문 정권의 무능과 위선에 대해서다.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약속한 정부였다. 나아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지만, 국민에게 돌아온 건 고용참사와 빈부격차 확대였다. 시민들은 그래서 분노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김수진씨가 3일 광화문 집회에서 쏟아낸 말을 옮겨본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이 아줌마가 볼 때도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경제·안보·국가관계·교육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주 52시간제로 일하고 싶어도 못하고 소득주도성장으로 우리 아이들 알바도 못 구한다.” “이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조국의 위선과 정권의 비호”라고 분노했다.

광화문에서 확인한 셋째 사실은 1940~50년대 프랑스 사회를 풍미했던 앙가주망(engagement)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앙가주망은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지식인의 사회 참여다. 조국이 말한 것처럼 장관 자리를 꿰차는 건 진정한 앙가주망이 아니다. 정의를 외치면서 조국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1만여 대학교수가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이야말로 장 폴 사르트르가 촉구한 양심적 지성의 앙가주망이다. 광화문의 평범한 시민들도 평소 자기 자리를 지키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왔으니 앙가주망이라고 봐야 한다.

오늘 광화문에는 또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 정권이 ‘정의 회복’이라는 민심에 귀를 막고 있어서다. 어디 이뿐인가. 이낙연 국무총리는 “광화문 집회의 폭력을 엄중하게 처리하라”며 폭력성을 부각했다. 폭력은 용납될 수 없지만, 민심을 깔아뭉개는 건 더 큰 폭력일 수 있다. 서초동 집회는 ‘자발적 참여’라면서 광화문 집회는 ‘내란 선동’이라는 이중잣대야말로 거짓과 위선이다.

광화문은 해방 맞이와 4·19 혁명에 이어 살아 있는 정권도 교체한 국민의 광장이다. 문 정권은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광화문 앙가주망’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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