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조국을 사랑하는 길

김준영 2019. 10. 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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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정치팀 기자
“정의에도 착한 정의, 나쁜 정의가 있는 건가.”

5년 만에 만난 후배 A는 짐짓 화가 나 보였다. 개천절, 부산의 한 식당에서였다. 검찰 수사관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A는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끌렸다는, 다소 간지러운 응시 배경을 늘어놨다. 때마침 식당 한쪽 TV에선 서울 광화문 광장의 ‘조국 퇴진’ 집회 소식이 흘러나왔다. A는 “나도 서울 살았으면 당장에라도 집회에 나갔을 거”라고 몇번이고 말했다. “너도 적폐냐”는 농담에 A는 대번 “이건 정치색의 문제를 떠나 공정의 문제”라고 맞받았다. “최순실 사태에 촛불 들면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고, 조국 사태에 촛불 들면 ‘개시민’이냐”고 말할 땐 조금 흥분했다.

생전 집회 한 번 안 나가봤다는 A가 이다지 열을 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1980년대 학생운동이 민주화 요체로 활약한 이래, 청년들은 늘 ‘정치 무관심 세대’였다. 정의·개혁·진보 등의 가치는 386세대가 전리품처럼 독점했다. 무기력한 청년들의 정치 참여 의지를 되살린 건 역설적이게도 다시 386이다. 당신들의 정의는 정의롭지 않았다고 지적했더니 “불법은 없었다”는 말만 반복하는 법무부 장관, 개혁을 반대한 적도 없는데 ‘조국 반대=반개혁 세력’으로 몰아치는 청와대 관계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30여년 전 학생 운동을 하다 징역형을 받은 적 있다. 세상은 그를 폭력배로 몰아세웠지만, 그가 쓴 항소 이유는 당당했다. “본 피고인은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젊은이입니다.”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는 격언에 가슴 뛰는 젊은이가 비단 20대 유시민뿐일까. 그가 느낀 불의와 지금의 20대가 느끼는 불의가 근본적으로 다르진 않을 터다. 외려 지금의 20대들이 더 예민할 수 있다. 청년 유시민은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러시아 시인 네그라소프의 시구)고 말했다. 지금 청년들의 슬픔과 노여움도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

김준영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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