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바다에 똥·오줌 누는 군함..분뇨처리장치 '엉터리'였다

김찬호 기자 2019. 10.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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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해경, 해군이 운용 중인 함정 수십척의 분뇨처리장치가 정부 형식승인이 취소된 불법 제품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분뇨처리장치는 ‘성능시험서’ 위조 사실 등이 밝혀져 2016년 승인이 취소됐다. 해경, 해군은 “승인취소 전에 설치됐다”는 이유로 제품을 계속 사용중이다. 감독관청인 해양수산부는 “형식승인 취소 전에 설치된 제품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해양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경 경비함정에 장착된 \'ㄱ사\' 분뇨처리장치. 업체 관계자는 \

경향신문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해경 경비함정 41척, 해군 함정 최소 44척의 분뇨처리장치는 형식승인 취소 제품이다. 법의 사각지대 속에 “분뇨를 바다에 그대로 버렸다”거나 “분뇨처리장치 사용법도 모른다”는 폭로도 나왔다. 하지만 해경, 해군은 “일단, 불법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업체에 대한 책임 요구’, ‘방지 대책 수립’ 등의 조치는 하지 않았다.

■‘불법’제품의 탄생

전자관보에 게시된 ‘ㄱ사’ 분뇨처리장치 형식승인 취소 공고.

선박용 분뇨처리장치를 만드는 ‘ㄱ사’는 2010년부터 4년간 분뇨처리장치의 ‘성능시험서’, ‘품질확인서’ 등을 위·변조했다. 공산품 안전성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 부여되는 ‘형식승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부산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업체가 위·변조한 것은 분뇨처리장치의 ‘수위감지기’와 ‘펌프의 성능’이다. 해양수산부는 2008년 분뇨처리장치에 설치된 수위감지기를 ‘방폭 구조’로 만들 것을 규정했다. 메탄가스에 의한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업체 대표 ㄴ씨는 저가의 방수형 수위감지기를 방폭형인 것처럼 위조했다. 또 직원들과 짜고 분뇨처리장치에 설치된 펌프의 시험성적서도 변조했다.

2014년 이 사실이 밝혀지며 해당 분뇨처리장치의 형식승인은 취소됐다. 하지만 업체 대표 ㄴ씨가 승인 취소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하고 법정다툼을 벌였다. 법원은 2015년 ㄴ씨와 직원 3명에게 ‘사문서 위·변조’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다. 형식승인은 이듬해 최종 취소됐다.

■“일단, 우리 책임은 아니다”는 관계자들

형식승인 취소 제품은 ‘무허가 불법 제품’이다. 하지만 해경, 해군은 “사용에 문제가 없다”며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형식승인 취소 전에 분뇨처리장치가 장착됐다’는 것이다. 법정다툼으로 형식승인 취소처분이 정지된 것은 2014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다. 이 기간 등에 분뇨처리장치가 설치돼 합법이라는 것이다. “정부 기준이 강화됐다고, 이전에 설치된 제품이 모두 불법은 아니다”고도 한다.

분뇨처리장치 형식승인 취소 상황도.

하지만 형식승인 기준은 해당 분뇨처리장치가 납품된 후에 강화된 것이 아니다. 이미 변경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 관련 정보가 위·변조됐다.

설치 당시 합법이어서 불법제품을 계속 사용한다면 ‘환경오염 방지’라는 제도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 해당 제품은 수위감지기 외에 성능시험성적도 위조됐다. 제품 사용이 환경오염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해경·해군 관계자는 “법원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했다”며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두 번째 근거는 ‘문제점이 보완됐다’는 것이다. 해경, 해군 관계자는 “업체가 분뇨처리장치를 보완해줬고, 성능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이 이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업체는 법정다툼 기간 동안 수위감지기에 스파크 차단기인 ‘베리어(barriers)’를 설치해줬다. 해수부로부터 성능검사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선급은 ‘베리어’ 설치만으로 방수형 스위치를 방폭형으로 인정했다. 이런 방식으로 방폭형 스위치가 인정된 것은 이 업체가 유일하다. 이 방식대로라면 손쉽게 방폭형 제품이 될 수 있지만 업체는 형식승인을 다시 신청하지 않았다. 해수부는 해당 제품 승인을 최종 취소했다.

경향신문은 한국선급에 보완된 분뇨처리장치의 성능을 실제로 조사했는지 물었다. 분뇨처리장치는 납품 때마다 별도의 검정을 진행할 정도로 엄격히 검수된다. 당시 해당 제품은 위·변조 문제로 관계자들이 검찰 기소까지 된 상황이었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해군이나 해경 함정은 한국선급에 등록된 배가 아니어서 조사가 불가능하다”며 “해군은 자체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업체에 불법 제품으로 인한 별도의 피해구제 요청도 하지 않았다. 해경은 “형식승인 취소를 2016년 이후에 알게 돼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해군은 2014년부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별도의 피해구제 요청은 하지 않았다. 업계관계자는 “자기 돈이 들어간 제품이라면 이렇게 대처하겠느냐”며 “인맥 좋은 유력 업체들은 이런 식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공공기관이 불법제품임을 알고도 사용한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 해경은 ‘오염방지설비 미검사’ 등을 이유로 올해 7월까지 해양환경오염 행위 1098건을 단속했다.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수부는 이런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4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2015년 ㄷ씨는 이 문제에 대한 민원을 해수부에 제기했다. ㄷ씨는 “당시 담당 공무원은 법정 다툼이 있어 답변이 어렵다고 했다”며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해수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 해당 사실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미 납품된 형식승인 취소 제품을 관리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냐’는 질문에는 “한국선급 등 검사 대행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분뇨처리장치 사용해 본 적 없다. 똥·오줌을 바다에 그대로 버린다.”

해경, 해군의 불법 분뇨처리장치에 대한 인식은 운용실태와도 관련돼 있다. 경향신문은 해군 함정에서 오물처리를 담당한 이들에게 분뇨처리장치에 대해 물었다. 각각 다른 함정에서 근무했지만 이들은 오물처리에 대해 공통적인 말을 했다. “밤에 바다에 버리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수인계가 된다”는 것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한 ㄹ씨는 이지스함에서 오물처리를 담당했다. 그는 “주로 야간 당직을 할 때 오물을 바다에 버렸다”며 “1주일에 한 두 번 바다에 버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려온 관례였다”고 했다.

ㄹ씨는 탑승한 함정, 오물을 버리는 방법, 장소 등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해양환경관리법에 따르면 분뇨처리장치를 통하지 않는 오물은 영해 기선으로부터 12해리 바깥에서만 배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ㄹ씨는 “오물을 버릴 당시 운항 중인 곳이 12해리 밖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어디에 있든 꼭 해가지면 방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항구에 정박중일 때도 오물은 버려졌다고 했다. ㄹ씨는 “진해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바다에 버렸다”며 “항구에는 2주 정도 정박해 있다가 출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번 정박하며 4~5차례 오물을 버렸다”고 했다.

이 같은 증언은 규모가 작은 함정에서도 나왔다. ㅁ씨는 지금까지 두대의 함정에서 오물 처리를 담당했다. 그는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분뇨처리장치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며 “오수처리기실에서 사용한 것은 환기장치가 유일하다”고 했다. 또 “함정이 평택이나 진해에 정박했을 때도 바다에 버렸다”며 “분뇨처리장치의 전원 스위치를 켜지 않는 배도 있었다”고 했다.

‘탱크에 담긴 오물 종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ㅁ씨는 “수병이나 간부들이 화장실에서 무엇을 버리는지 일일이 알 수가 없다”며 “간혹 기름도 섞여 있었지만 걸러 낼 방법은 없다”고 했다. ㅁ씨는 “탱크에 담긴 것 외에도 버려지는 오물이 있다”며 “엔진을 쓰다 보면 조금씩 누유가 생기는데 그게 기관실 바닥으로 깔린다. 이런 기름들은 해 뜨기 전에 바다에 버린다”고 했다.

안양대 해양바이오시스템공학과 류종성 교수는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상황에서 분뇨를 버리면 환경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인근 양식장 등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운항에 필요한 기름은 발암물질과 같은 유해물질도 섞여 있어 오물과는 분리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법에 따른 분뇨처리장치 사용 매뉴얼이 있다”며 “강조 교육을 계속 해왔다. 잘 관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ㄹ씨는 “군에는 항상 매뉴얼은 있다. 다만, 지키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ㅁ씨는 “해군 장교가 오물처리실에 내려와 처리과정을 관리·감독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해경 역시 비슷한 증언이 나왔다. 해경 경비함정을 여러 차례 승선했다고 밝힌 한 업계관계자는 “일부 함정은 분뇨처리장치를 쓰지 않고 방치해 두고 있었다”며 “예산을 들여 설치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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