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맘카페서 '조국 반대'에 몰표.. 침묵하는 다수인가, 진보의 분열인가

남정미 기자 2019. 10.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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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친문 성향 커뮤니티의 반란
친문(親文) 성향으로 분류돼 온 여성 커뮤니티 '레몬테라스'에서 지난 3일 실시한 조국 장관 거취에 대한 설문 조사. 투표 참여자 60%가 '즉시 사퇴'를 택했다. / 레몬테라스 캡처

"조국 반대 1번. 조국 찬성 2번. 아이디 까고 투표하세요."

지난 7일 30~50대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요리·생활 커뮤니티 '82쿡닷컴'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찬반 투표가 시작됐다. 2번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다면, 평소 이 커뮤니티에 익숙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 커뮤니티 게시글은 절대다수가 조 장관 지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게시판 민심과 전혀 달랐다. 450명(10일 오후 6시 기준)이 넘는 사람이 '1번(조국 반대)'에 투표했다. '2번(조국 찬성)'에 투표한 사람은 20명이 채 안 됐다. 최근 조 장관 비판 글 작성자를 강제로 탈퇴시켜 논란을 빚은 포털사이트 맘카페 '레몬테라스', 20~40대 남성이 주로 이용하는 스포츠 커뮤니티 'MLB파크'에서도 같은 주제로 투표했다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국내 대표적인 친문(親文) 성향으로 분류되던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평소 300명이 분위기 주도하는 것

레몬테라스는 조국 반대가 더 많이 나온 첫 투표 이후 수차례 비슷한 투표를 했다. 투표 기간이 늦은 밤이라 불공정했다는 지적을 참고해 낮에 다시 투표했다. 질문을 '윤석열VS조국'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때마다 매번 조 장관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조 장관 옹호 표는 300~400표로 꾸준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평소 300명이 카페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라며 "해당 커뮤니티는 정치 목적의 커뮤니티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 활동은) 적극적인 분들이 하게 돼 있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도 "어디에나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처음에는 그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특히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가 낮기 때문에, 댓글을 열심히 다는 사람들이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는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카페에 참여하는 대부분 이용자는 생활정보를 나눈다는 목적에 충실한 분들이라 볼 수 있고, 그런 분들은 (정치에) 발언하지 않는다"며 "이번 투표는 일부가 여론을 주도한다고 해서 동호회나 카페 다수의 의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진보가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신호?

'침묵하던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른바 '샤이(shy) 진보의 출현'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주요 원인으로 이 샤이 계층이 꼽혔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미 중산층이 겉으로 티 내지 않았지만, 막말이나 여성혐오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를 몰래 찍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 장관을 반대하지만 공개적으로 얘기했다가는 커뮤니티에서 '왕따' 당할까 봐 침묵하던 샤이 진보층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며 "정의와 공정, 윤리와 도덕에 민감하게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조 장관 사태에 침묵하면 스스로 자기 부정의 논리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더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실장 역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층에서 조 장관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통계가 나온다"며 "아직 정권에 완전히 돌아섰다든지, 다른 정치세력을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조국 감싸는 거 문제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가진 정도로는 올라온 것 같다"고 했다.

더 많은 침묵하는 다수가 목소리 내야

전문가들은 더 많은 침묵하는 다수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교수는 "인터넷 카페에서 목소리가 큰 몇몇 사람이 주도하는 분위기로 가게 되면 그냥 그 카페가 망하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이게 국가의 정치 문제로 가면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 역시 "정치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 가만히 있던 다수의 사람도 그 침묵을 깨고 앞장서서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과정들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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