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끌던 미중 무역전쟁 1단계 합의..WSJ "시진핑 승리"

박현영 입력 2019. 10. 13. 16:45 수정 2019. 10. 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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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협상 '구두' 합의
中,미국산 농산물 50조원 구매
美,관세율 25%→30% 인상 철회
"美,관세 인상 피하려 中요구 수용"
"'미니 딜'조차 성사될지 회의적"
"美영향력 보여줘, 中과 협력 성과"
11월 APEC에서 트럼프-시 서명
류허 중국 부총리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이후 세계 경제를 뒤흔든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임시 휴전에 들어갔다. 양국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무역협상을 마친 뒤 제한적 범위에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아직은 구두 합의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합의문에 서명하기까지는 5주가량 남았다. 하지만 G2(주요 2개국)의 무역전쟁이 진행된 지난 15개월 동안 가장 근접한 합의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중국과 무역협상에서 실질적인 1단계 합의(substantial phase one deal)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양국은 무역전쟁 종결에 매우 가까이 있다”라고도 했다. 류허 중국 부총리와 이강 중국 인민은행 총재 등 중국 무역협상단을 백악관으로 초대한 자리에서다. 류 부총리는 트럼프에게 시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연간 미국산 농산물 400억~500억 달러(약 47조~59조원)어치를 구매하기로 했고, 미국은 다음 주 시행하려던 관세율 인상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무역전쟁 전인 2017년 구매액(210억 달러)의 두 배가량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오는 15일부터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30% 올릴 계획이었다.

지식재산권과 위안화 환율 문제도 다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강제 기술 이전을 포함해 지식재산권에 관한 일부 조항도 합의에 포함됐으며, 미국 은행과 금융기업이 중국 시장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이 같은 핵심 의제는 2단계, 3단계 협상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1단계 합의 완성과 동시에 2단계 합의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2단계에서 모든 합의가 끝날 수도, 3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도 “핵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는 이뤄졌지만 상당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 던진 출사표를 접고 중국 요구를 수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는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 아니라 미국 기업 기술 절취, 강제 기술 이전 요구, 중국 기업에 불법 보조금 제공 등 불공정 관행과 산업정책을 바로잡겠다면서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핵심 요구사항을 나중에 해결할 과제로 남겨둔 채 관세 인상안을 먼저 철회했다"면서 "이번 무역협상은 중국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의 전략은 협상을 길게 연장할수록 좋다는 것인데, 그것을 얻었다"면서 "남겨둔 어려운 문제들을 나중에라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중국 전문가인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는 양국 간 무역 및 경제 갈등의 주요 원인을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합의문 서명 등 '미니 딜'조차 제대로 성사될지 회의론이 있다"고 말했다.

스캇 케네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최근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을 피하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매우 제한된 범위의 구두 합의도 받아들였다"면서 "시 주석은 이 결과에 상당히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선 정국으로 들어간 가운데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고율 관세 부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류허 중국 부총리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접견하던 중 뒤를 돌아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무역협상은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깨졌다. 5월 합의안과 이번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류허 부총리는 “협조(cooperation)”라고 답했다고 CNBC 방송이 보도했다. 미국이 중국에 협력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협상단이 기존 입장을 번복하면서 합의를 서두른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완전한 딜(complete deal)”이 아니면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젠 협상을 1·2·3 단계로 쪼개서 진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5월만 해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중국이 약속을 어기지 못하도록 합의 이행을 담보하는 '이행 매커니즘'을 반드시 합의문에 담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합의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합의의 쾌거라고 설명한 중국의 농산물 구매나 위안화 평가절하 자제는 중국이 이미 무역전쟁 직후부터 미국에 약속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에서는 합의를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의 측근인 스티븐 번 변호사는 "대통령에게 큰 승리다. 미국은 무역협상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클리트 윌렘스 전 대통령 경제 고문은 "미·중 양국이 중요한 이슈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농가에 엄청난 승리"라고 자화자찬했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농산물 수출 길이 열릴 것이며, 농부들은 땅을 더 사고 트랙터를 더 큰 것으로 바꿔서 중국 특수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1단계 합의안을 작성하는데 3주에서 5주 정도 걸릴 예정”이라면서 “준비되면 시 주석과 만나 정상회담을 열고 서명하겠다”고 말했다. 11월 16~17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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