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여성 단체의 선택적 분노

윤수정 사회부 기자 2019. 10. 14.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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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정 사회부 기자

"반(反)조국 잘하게 생겼네" "선배들이 치근덕대지도 않을 상(相)" "옥상에서 떨어진 개떡".

요즘 친문(親文) 네티즌들이 얼굴 사진을 띄워놓고 이렇게 욕하는 여성 검사가 있다. 조국 법무장관 자택을 압수 수색했던 김모 검사다. 여성 혐오 사이트에서나 봐왔던 "잡X" "X슬검새" 등 저질스러운 혐오 표현이 '진보'를 자처하는 친문의 손가락 끝에서 쏟아졌다. 그러면서 조 장관 가족은 "연약한 여성 두 명"으로 표현하고 "'남자 검사'들이 구둣발로 뒤졌다"고 했다.

외모 비교도 했다. 비교 대상은 조 장관이 이른바 '검찰 개혁'의 아이콘처럼 말하는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다. 그 두 명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놓고 친문 네티즌은 "임 검사는 정의로운 상" "같은 여자지만 김 검사는 정 안 가는 상" 따위 글을 올렸다. 임 검사는 최근 국회에서 "검찰의 조국 장관 압수 수색은 이중적 잣대가 적용됐다"고 주장하며 '조국 수호'에 합류한 상태다.

사실 애초 친문 진영은 김 검사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당시 현장에는 김 검사 외에도 여성 수사관이 있었고, 조 장관 측에서도 조 장관 아들과 변호인 3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친문 네티즌과 정부·여당은 한목소리로 '조 장관 아내와 딸만 있는 집을 남성 검사들이 짜장면까지 시켜 먹으며 11시간 동안 뒤졌다. 비인권적이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다 밝혀진 여성 검사의 존재에 대한 불편함을 이런 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럴 때 나서라고 후원금을 받는 여성 단체들은 뭘 했을까. 아무것도 안 했다. 단 한 줄의 성명도 내지 않았다. 그동안엔 달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작년 1월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당시 직함 기준)가 방송에 나와 성추행 피해 관련 인터뷰를 했을 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성명서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철저히 사건을 조사해 가해자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주일 뒤에는 두 번째 성명을 냈다. 한 검사가 개인 페이스북에 "(서 검사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적은 사건이 계기였다. "근거 없는 소문 확산과 외모 조롱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달창'이라고 부른 올해 5월에도 이들은 "여혐 표현"이라며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물론 우리가 그들의 '선택적 분노'를 처음 보는 건 아니다. 극단원 상습추행 혐의로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된 친문 연출가 이윤택(67)씨의 범죄가 드러났을 때도 여단협은 일주일이나 침묵하다가 여론에 떠밀리듯 성명을 낸 바 있다. 하지만 분노를 선택하는 기준이 여성의 '친조국 외모'냐 '반조국 외모냐'를 보는 수준까지 떨어졌다면 이제 그만 간판을 내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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