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장만 믿고 식당 창업, 절대로 오래갈 수 없다 왜?

이준혁 입력 2019. 10. 14. 0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오래] 이준혁의 창업은 정글이다(21)
근로시간 단축, 주5일 근무제 도입, 최저시급 상승 등의 영향으로 창업 시장이 더 얼어붙고 기존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매년 18만명 이상이 새롭게 식당 문을 열고 매년 19만명이 문을 닫는 반복이 일상화되고 있다.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푸드 플랫폼 구축 회의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지역을 개발해 전국적인 창업 메카로 만들겠다는 기획이었는데, 그 안에 창업아카데미 설립안도 포함돼 있었다. 창업아카데미 교육생으로 누구를 선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했을 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절박한 사람을 우선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외식업은 다양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의 대표 영역이다. 고된 중노동이다 보니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진 pixabay]

외식업은 막장이라 표현할 만큼 온종일 서 있어야 하는 고된 중노동이며, 다양한 고객을 상대해야만 하는 감정 노동의 대표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절박함이 없는 사람을 선발해 현장에 투입하면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기 쉽다.

대학 동기 중에 부산에서 25년째 조그마한 중국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형님 집에서 기거하며 어렵게 대학생활을 한 친구였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는 부산의 한 호텔 중식당 웨이터로 첫 직장 생활을 했고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몇 년 만에 부산 소재 특급호텔 중식당의 지배인이 됐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한 이후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 둔 돈으로 10평이 되지 않는 작은 중국집을 학교 앞에 차렸다. 처음에는 주방장을 채용한 형태의 영업을 했는데, 장사가 조금 안정이 될 만하면 술을 마시고 식당에 갑자기 나오지 않거나 월급을 자꾸 올려달라며 애를 먹이는 통에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직접 중화요리를 배웠고 각고의 노력 끝에 요리를 직접 할 수 있게 되자 장화를 신고 주방에 직접 들어가 혼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방장을 채용해서 운영할 때에 비하면 그 고생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주인이 직접 온 정성을 기울여 만든 음식이 서서히 호평을 받으면서 영업이 잘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을 쉬면서 무려 25년간 죽을 힘을 다해 고객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낸 친구의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지금은 4층 규모의 건물주가 됐는데도 1층에서는 여전히 혼자서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고 직접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에 갈 일이 있어 친구의 중국집에 들러 이렇게 25년을 혼자 주방에서 땀을 흘렸으면 이제 주방장을 채용하고 조금 편하게 운영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친구는 단호하게 “그렇게 운영하면 고객이 먼저 안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저었다. 내 식당을 운영하면서 내가 직접 재료를 고르고 정성을 기울여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그 식당은 절대로 오래갈 수 없다며, 힘이 달려 더는 요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면 그때 문을 닫을 것이라 했다.

중국집을 하는 친구에게 창업은 생존이었다. 스스로 중화요리를 배웠고 25년간 홀로 주방을 지켰다. 오랜 시간 고객들에게 인정받아 자기 이름으로 건물까지 갖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식당을 하면 입에 풀칠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자신은 카운터에 앉아 있고 주방장을 고용하며 대충대충 경영하는 식당은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직장에 다니면서 프랜차이즈 업체에 모든 것을 맡기고 오토매틱 운영을 하는 폼나는 창업은 문을 열 때 이미 폐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창업은 생존이었다. 망하면 바로 끝장인 상황에서 친구는 스스로 중화요리를 배웠고 본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됐을 때 다시 문을 열어 무려 25년간 나 홀로 주방을 지켰다. 그런 각오와 노력이 있었기에 학교 앞에 그 많은 중식당이 문을 열고 닫는 반복을 할 때도 그 오랜 시간을 고객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자기 이름의 건물까지 갖는 성공을 이뤘다.

음식점이 맛이 없으면 친형제도 다른 집으로 먹으러 간다. 그만큼 냉정하다는 뜻이다. 한 집 건너 한집이 식당인 과잉공급 시장에서 고용 주방장이 성의 없이 만들어 내는 창업이 성공할 리가 있겠는가. 굳이 식당업을 해야 한다면 자기 스스로가 음식을 배워 창업해야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22살인 해병대에서 갓 제대한 막내 아들에게 자신이 25년을 가꿔온 중식당을 물려줄 생각을 한다고 얘기했다. 당연히 아들이 주방에 들어와 모든 음식을 배울 때까진 자신이 주방을 지키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대를 이어 운영하며 식당 문을 닫지 않는 것이 고객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갚는 길이 아니겠냐고 했다.

식당을 여는 일은 누구나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한 마음 없이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굳이 어려운 막장 같은 식당업에 뛰어들겠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주방에 들어가야 한다. 자기 손으로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재료를 구매하고, 내 가족이 직접 먹는다는 정성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고객을 맞이한다면 반드시 그 식당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내게도 편한 길은 남에게도 편한 길이다. 성공은 대충해서 오지 않는다.

(사)한국공유정책 일자리 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