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대웅전에는 '코끼리'가 산다
코 닦는 용, 호랑이, 도깨비 등 전국 곳곳 사찰 법당에 장식된 다양한 동식물의 상징 분석
"절은 역사·문화 담긴 박물관"
법당 기둥을 타고 내려오며 수달을 쫓는 용, 현판 뒤에 숨은 멧돼지,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코를 닦는 용을 보신 적 있는지?
우리의 전통 사찰은 동물원이고 식물원이자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최근 출간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불광출판사)는 400여장의 컬러 도판을 통해 사찰의 다양한 '거주자'를 낱낱이 밝힌다. 불상과 탱화 등 족보 있는 주연이 아니다. 조연도 아닌 단역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책을 보면 사찰 구석구석엔 용, 수달뿐 아니라 물고기, 게, 가재, 거북, 토끼, 호랑이, 도깨비 등이 숨어 있다. 불국사 극락전 현판 뒤엔 목조 멧돼지도 있다. 사찰에 사는 스님들조차 그런 조형물이 있는 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대체 이렇게 다양한 동식물은 왜 사찰에 깃들게 됐을까?
저자 노승대(69)씨의 이력은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는 1975년 출가해 서울 송파 불광사를 창건한 광덕 스님을 은사로 1986년까지 출가자로 지냈다. 1983년 민속학 개척자 중 한 명인 에밀레박물관 조자용(1926~2000) 관장을 만난 것은 불교와 민속학을 연결해서 보게 된 시작이었다. 노씨는 1986년 환속을 결심하고 광덕 스님에게 가사와 장삼을 바쳤다. 스님은 가사·장삼을 도로 돌려주며 "환속해서도 절에서처럼 살라"고 했다. '세상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보살처럼 살라'는 뜻이었다. 속세의 스승 조자용 관장은 "책상머리에서 글 쓰지 말라. 보고, 딛고, 글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두 스승의 당부는 노씨에게 화두(話頭)가 됐다.
그는 1993년부터 문화 답사 모임 '바라밀문화기행'을 만들어 거의 매주 전국의 사찰을 다닌다. 절을 신행(信行) 공간으로만 보지 않고 역사·문화·민속이 온축된 박물관으로 보고 안내한다. '왜?'를 물어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사찰 주변엔 왜 해양생물 조형물이 많을까? 임진왜란이 큰 변화의 계기가 됐다. 겨우 죽음을 모면한 민초에게 절은 생사고해를 넘어 극락세계로 데려가주는 배[船], 불교식으론 '반야용선'이었다. 노씨는 "국난을 겪은 후에도 가혹한 수탈을 당하며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고난의 행군'을 하던 백성들에게 불교와 사찰은 마음의 피난처였다"고 했다. 그런 인식 변화 때문에 천은사 법당은 정면엔 용머리, 뒤편엔 용꼬리 조형물이 부착됐다. 법당은 용의 몸통이었던 셈이다. 사찰이 배라면 주변은 바다다. 해남 미황사, 여수 흥국사, 완주 송광사 등 사찰엔 물고기, 거북, 게 등 물에 사는 동물이 법당 주춧돌, 부도(浮屠), 탑 등 곳곳에 돋을새김 혹은 그림으로 등장했다.
조선 후기 이후 유행한 민화(民畵)도 사찰에 들어왔다. 다산(多産)의 상징인 포도송이, 과거 합격을 상징하는 갈대를 집게발로 꽉 잡은 게 그림, 거북이 타고 바다를 건너는 토끼, 담배 피우는 호랑이 그림들이 사찰에 들어왔다. 돌·나무 장승이 사찰에 입주한 것은 17세기 말~18세기 초. 전염병이 창궐하자 액(厄)을 막기 위한 민간의 상징이 사찰까지 들어온 것이다. 노씨는 "한국의 사찰은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원융(圓融)의 공간이자 화엄세계"라고 했다.
그동안 조계사·불광사 등에서 자문에 응하며 답사와 집필을 해온 노씨는 작년 말 불광사에서 퇴직했다. "이제 답사·집필할 시간이 길어야 4~5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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