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SC] 성욕은 무조건 채워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정연 2019. 10. 16. 20:46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1 5년 사귀고 있지만, '관계' 드물어
여자친구의 마음 어떻게 열 수 있을까
A1 여자친구는 이미 분명하게 답해
상처받을 각오하고 먼저 대화해 보길
Q2 고백하고 차였지만 힘이 돼주고 싶어
여전히 좋은 그녀를 위해 뭘 해야 할까
A2 불행해 보여도 신경 쓸 부분 아니야
거절당했다면 그 의사를 먼저 존중해야
클립아트코리아

Q1 저는 25살 남자입니다. 20살에 만나 5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어요. 서로가 첫 번째 연애이고 첫 번째 경험이에요. 여자친구는 항상 제 생각을 많이 해주는 이랍니다. 군대 갔을 때도 그 힘들다던 ‘고무신 거꾸로 신기’를 잘 이겨낸 좋은 사람이에요. 다만 여자친구는 섹스를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섹스가 중요하다고 생각도 하지 않아요. 연애 초기에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했어요. 제가 잘하지 못해서 그렇다 생각하고 여러 곳에서 정보를 얻어 우리는 연습을 했지요. 여자친구는 ‘관계’ 중에는 꽤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걱정이 심해 비가임기에 맞춰 관계를 가졌고 끝난 뒤에는 콘돔에 물까지 채워 피임이 확실히 됐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러나 아직 2~3달에 한 번 관계를 가질까말까 합니다. 저는 여자친구에게 성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제가 성욕이 강한 편이라고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화를 나누면서 그러더군요. 자기는 섹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 해도 잘 지내지 않느냐고 하네요. 제가 이 주제로 계속 얘기하면 그러려고 만나느냐고 장난치며 얘기를 끝냅니다. 저는 여자친구와 섹스 외의 부분에서 굉장히 만족하고, 또 정말 인생을 함께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더 지나도 성관계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솔직히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저는 1주일에 한 번도 적다고 생각하는데 어떡하면 여자친구가 마음을 열까요? 확 바뀌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만약 여자친구가 바뀌지 않는다면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섹스가 부족한 남자

A1 고민을 다루기에 앞서, 저는 당신이 쓴 표현에 주목하고 싶네요.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가 마음을 열까요?’라는 표현 말이죠. 당신은 아직 여자친구가 마음을 닫고 있는 상태라고 여기네요. 지금의 상태는 일시적이고, 내가 더 설득하거나 시간이 흐른다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태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귄 지 5년이 되었고 이미 여러 번 관계를 가졌는데, 아직도 ‘마음을 열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히 당신 입장에서 여자친구를 보고 있는 것이죠. 여자친구는 이미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나는 섹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요. ‘그러려고 나 만나는 거야?’라는 말이 그저 장난으로 들리셨어요? 이미 자신의 의견을 밝혔는데도 그것을 존중해주지 않는데, 더 정색하고 말하자니 서로 마음이 상할 것 같아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솔직히 놀랍습니다. 여자친구는 별로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 ‘관계 중에는 꽤 만족한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요. 놀라지 마세요. 10명의 여자 중 7명 이상의 여자가 ‘관계 도중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좋은 척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설문조사가 있답니다. 당신의 성욕이 중요하고 그것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감정에 휩싸여, 당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선천적으로 성욕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몸이나 마음의 스트레스 지수에 따라 성욕이 들쑥날쑥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방에 따라 섹스에 대한 태도나 욕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재미없어하다가 다른 사람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세계를 맛볼 수도 있죠. 섹스란 그렇게 오묘하고 복잡한 욕구와 화학 작용의 시너지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욕이 강한 게 정상, 별로 안 하고 싶은 게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관계는 헤어지는 것 말고 답이 없습니다. 당신이 성욕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을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여자친구도 그다지 원치 않는 섹스를 하지 않을 권리라는 게 있죠.

성욕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욕구가 맞지만, 무조건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준엄한 무엇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고 즐겁게 행위를 할 때, ‘결과적으로’ 채워지는 욕구일 뿐입니다. 연인을 성욕 ‘해소’할 상대가 아니라, 함께 사랑을 나눌 상대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성욕이 강한 편’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저라면 솔직히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설득할 생각을 접으시고,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대화해 보세요.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그 사람에게도 중요한 일일 때, 그때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Q2 저는 21살 대학생입니다. 올해 3월 그녀와 처음 만났어요. 처음에는 공부를 같이하느라고 그녀가 ‘여자’로 안 보였지만, 같이 있다 보니 어느덧 여자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고백을 했어요. 하지만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차였어요. 그 이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다가 또 고백했어요.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이겠지만, 너무너무 그 사람이 좋았거든요. 가뜩이나 그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어 도와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남친이 아니니까 그 이상 도울 수는 없었어요. 그 사람 곁에서 힘이 되고 싶었지요.

그 이후 우리는 친구로 지냈어요. 어느 날 그 사람이 제게 자기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저를 떠났어요. 잡아봤지만, 끝내 가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몇 달 동안 고민을 많이 했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정신 차리고 지금은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며칠 전 그녀를 우연히 보았어요. 마음이 아팠어요. 그녀의 모습이 아주 초췌하고, 깊은 좌절감과 서러움이 가득해 보였어요. 마음이 참 심란했어요. 사실 그녀 앞에 놓인 길은 그리 순탄치가 않아요. 부모님 반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못 하는 상황이에요.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참 걱정되고요. 여친도 아니었는데, 뭐 이리 신경 쓰냐 하실 줄 모르겠지만 저는 너무 답답합니다. 저에게 상처 준 사람인데도 그 사람이 정말 좋고, 자꾸 마음에 걸리는 상황이에요. 제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게 좋아하는 티를 내는 이도 있는데, 눈에 안 들어오고 그녀만 생각나요. 친구들은 시간이 더 지나서 잡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울 수 없어 답답한 남자

A2 각박하고 빠르고 얕게 흘러가는 관계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당신은 마음속에 기본적인 따뜻함이 있는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죠. 아주 작은 호기심이었든,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온통 내 정신을 빼앗기고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 들었든 상대방이 ‘노’(NO)라고 말하는 순간 ‘차였다’는 표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똑같습니다. 고백이라는 게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죠. 고백하지 않은 채로는 그 사람 주변에 있을 수 있지만, 일단 고백을 하고 나면 그 사람 곁에 서성이는 것조차 어색해질 수 있으니까요. 고백이란,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행동인 거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위장 남사친’이나 ‘위장 여사친’으로 좋아하는 사람 곁에 머무는 것 아니겠어요?

고백 이후 거절당했는데, 다시 마주한 그 사람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셨다고요. 미안하지만, 제 대답은 ‘그래서요?’입니다. 그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당신 때문이 아니듯, 불행해 보인다고 해도 당신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죠. 물론, 신경이 쓰이기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답답하고 신경 쓰인다고 해서, 그 친구가 당신이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는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요? 자신의 감정을 근거로 어떤 상황을 판단하는 인지상의 오류를 ‘감정적 추론’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지금 내가 힘든데, 그저 찰나의 순간 마주친 그 사람의 표정 때문에 ‘저 사람이 힘든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그런 것을 심리학에선 ‘투사’라고 부릅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표현했는데 거절당했을 때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저 멀리서 응원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태도겠죠. 당신과 연애를 하면, 그 사람의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신경이 계속 쓰인다면 계속 신경 쓰세요.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에게 먼저 연락하기 전에 또 다가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두 번이나 싫다고 했으면, 어차피 사귀게 되어도 당신만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곽정은(작가)

※사랑, 섹스, 연애 등 상담이 필요한 분은 사연을 보내주세요. 곽 작가가 직접 상담해 드립니다. 보낼 곳 esc@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