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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하하하하!!! 웃음 참지 못해요, 저도 너무 괴롭습니다..'망상장애·우울증' 맞나요? [김진세 박사의 K상담실]

김진세 | 정신과 전문의 입력 2019.10.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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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마음의 상처’ 어루만지면 치유”

‘배트맨’ 시리즈의 조연이었던 조커를 주인공으로 희대의 악당 탄생 서사를 담은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가 국내 개봉 14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호아킨 피닉스(사진)가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과 조커 역을 맡았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조커’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는,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 ‘흙수저’로 태어나 나약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그는 사회의 무관심, 미래에 대한 절망, 무력감 속에서 점점 더 제정신으로 살기 힘듦을 깨닫는다. 소심한 아서와 악당 조커를 오가던 그는 정부 보조금마저 떨어져 정신과 약을 탈 수 없게 되자 K상담실을 찾아왔다.

조커 = 이런 말씀 드리기 창피하기도 한데요. 먹고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이벤트 회사에서 광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고가 생겨서 직장을 잃었습니다. 병들어 누워 있는 노모가 계신데, 생계마저 끊겨서 암담합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요. 그렇게 되면, 정신과 치료받을 때 진료비를 경감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가 가능할까요?

김 박사 = 그럼요. 다만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죠. 아시다시피, 정신과 진단이란 엑스레이(방사선 검사)나 혈액 검사를 통해서 알 수 없어요. 상담이 제일 중요하고요, 심리검사가 보조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상담을 통한 진단이 한 번에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4~5회의 상담이 더 필요할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려 속상하네요. 급하실 텐데.

어릴 적 머리 다친게 원인?

“뇌 다쳤다면 감정실금 등 의심 뇌 손상 없어도 유사 증상 보여”

조커 = 하하하하 히히히히 흐흐흐흐(웃음을 참으려는 모습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소리 내어 웃더니). 죄…죄송해요. 하하하하. 제가 웃음을 참지 못하거든요. 의사들이 뇌를 다쳐서 그렇다는데… 하하하 이렇게 웃고 있지만 너무 괴롭습니다. 박사님, 당장 약이 급합니다. 지난번 치료받은 정신과 의사는 제가 망상장애에 우울증이 있다고 하더군요.

김 박사 = 치료를 위해 필요하면 약물 처방을 해드릴게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초진이거나 검사가 많지 않으면, 영화 1편 정도 감상할 비용쯤 되니까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조커 = 지금 보시다시피, 웃음을 참지 못하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눈총을 많이 받아요. 오해를 사기도 하고요. 어릴 적에 머리를 다쳐서라는데, 이런 병이 있나요?

김 박사 =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웃음이 터지는 병이 있죠. 뇌를 다쳤다면, 아마도 가성정서(pseudobulbar affect·PBA) 또는 감정실금(emotional incontinence)이라고 부르는 병일 듯싶네요. 행동을 통제하는 뇌의 전두엽을 다쳤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뇌 손상 없이도 비슷한 증상이 있을 수 있어요. 그 밖에 다른 병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조커 = 다른 병이라면? 혹시 우울증에서도 부적절한 웃음을 볼 수 있나요?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거든요.

김 박사 =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니…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부적절한 웃음을 우울증에서도 볼 수는 있지만, 양상은 좀 다릅니다. 우울증에서의 부적절한 웃음은 슬픔을 감추려는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이죠. 또 강박증의 경우에서 부적절한 웃음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혹시 자신이 상황과 맞지 않게 웃을까봐 불안해하죠. 상가에 가서 웃을까봐 조문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조현병에도 부적절한 웃음이 있어요. 내면의 감정과 맞지 않는 표현을 하죠. 부모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미소를 띠는 경우도 있는데, 조현병이라는 질병명 그대로 사고와 감정이 따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조커 = 도대체 망상은 뭔가요? 우울증인 사람이 망상을 앓을 수 있나요? 아니면 뇌를 다쳐서 그런가요?

김 박사 = 망상이란 비슷한 환경과 교육 수준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믿음을 이야기해요. 의처증이 흔한 경우죠. 의학적으로는 질투망상이라고 불리는데요. 팩트가 없는데도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는 거죠. 우울증의 심한 형태에서도 볼 수 있고, 뇌를 다쳐서 생기는 기질성 뇌장애에서도 가능하죠. 여러 가지 형태의 망상장애가 존재해요.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과대망상’,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피해망상’, 의학적 검사 결과 정상인데도 틀림없이 큰 병을 앓고 있다고 믿는 ‘질병망상’ 등이 있어요. 그리고 ‘폴리아듀(Folie a deux)’라는 것이 있죠.

조커 = 처음 듣는데 병 이름인가요?

김 박사 = 네. 19세기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들이 개념을 만든 폴리아듀는 ‘이인정신병(madness of two)’이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망상을 갖게 되는 거죠. 일종의 망상이 전염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부모와 자식과 같이 한쪽이 지배적인 경우에는 지배하는 부모의 망상이 자식에게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환각과 망상이 특징적이고, 두 사람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나 가족 전체가 망상을 앓기도 하죠. 최근에는 ‘유발성 망상장애(Induced delusional disorder)’라고 합니다.

화가 나서 폭력을 행사한다면?

“분노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독 모두 파멸뿐…결국 범죄자로”

조커 = 왠지 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박사님, 제가 최근에 엄청난 분노를 터뜨린 적이 있어요. 왜 사람들은 저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구는 거죠?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비밀 보장은 되겠죠? 아니, 보장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참다 못해 몹쓸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후회는 안 해요. 죄책감요? 전혀 없습니다.

김 박사 = 분노는 인간을 병들게 하죠. 못에 슨 녹과 같아서, 점점 커져 결국 스스로를 바스러뜨리고 맙니다. 무시를 당하면 누구나 화가 납니다.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화가 난다면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조커 = 그렇죠! 박사님 마음에 드네요.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거죠!

김 박사 = 단, 절대적인 조건이 붙죠. 화는 반드시 ‘잘’ 내야 해요. 합리적이고 생산적으로 말이에요. 감정에는 모두 목적이 있어요. 화라는 감정은 나름의 목적이 있으니 표현해야겠죠. 슬픔의 목적이 ‘위로’라면, 화의 목적은 ‘존중’일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무시하지 말고, 무례하게 굴지 말라는…. 그런데 화를 폭발시켜 폭력적인 행동으로 번진다면, 상대가 무서워는 하겠지만, 절대 행동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조커 = 틀렸어요. 박사님. 아주 극한의 폭력을 사용한다면, 다시는 누구도 무시 못하게 되겠죠! 그것이 마땅한 징벌 아닌가요?

김 박사 = 힘의 논리로 분노를 보자면, 전쟁과 살인밖에 남는 것이 없어요. 감정은 서로에게 표현하는 것이죠. 상대가 없으면 분노의 감정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독이 되는 겁니다. 당장은 속 시원할 수 있겠지만, 결국 폭력은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 일이죠.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만, 범죄자가 되면 인생 망치는 거고요. 그런데 정말 죄책감이나 후회가 없어요?

조커 = 네! 그냥 좀 다른 느낌, 어쩌면 약간의 쾌감까지… 아무튼 후회는 없답니다. 혹시, 사이코패스 떠올리세요?

김 박사 = 네. 혹시 아주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사이코패스의 진단도 생각해봐야겠죠.

조커 = 제가 보기에는 나쁜 짓 저지르고도 후회하지 않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던데요. 국민을 우습게 알고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 작자들이나, 돈이나 권력이 있다고 갑질 하는 인간이 어디 한둘인가요? 매일 저녁 뉴스에 나오는 그런 작자들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이더이다.

김 박사 = 차이는 존재하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안녕은 염두에 두지 않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것은 똑같지만, 다른 부류입니다. 범죄, 특히 폭력적 범죄에 연루되면 사이코패스라고 하고, 비록 나쁜 짓이라도 비폭력적이거나 범죄에 연루되지 않는다면 소시오패스라고 부릅니다. 소시오패스의 경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합니다.

조커 = 그럼 전 처벌을 받아야 하나요?

김 박사 = 제 생각에 처벌은 처벌대로 받아야 하고, 치료 또한 받아야겠죠. 사실 정신과 의사들의 한결같은 고민 중 하나입니다. 이 경우 치료가 필요하겠지만,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면 인권에 반한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보다 사회 안녕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법원에서 치료보호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

“어릴 적 겪은 학대 등 트라우마 정신건강 위협…상담 치료를”

조커 =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것은 아닌데….

김 박사 = 글쎄요. 정확한 원인은 진단과 마찬가지로 한두 번의 상담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또 원인은 결국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하지만 어릴 적 머리를 다치셨다면, 그 시점부터 잘 살펴봐야 할 듯합니다. 혹시 큰 사고나 양육자의 학대나 폭력적 사건 때문이라면, 그로 인한 정신적 불안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뇌를 다치지 않더라도, 어릴 적 트라우마는 정신건강에 큰 위협이 되죠. 상실감, 가난, 질병, 재난 등 우리가 성장하는 환경 또한 중요합니다.

조커 = 어찌 보면 정상적으로 잘 크는 것이야말로 행운인 거 같네요.

김 박사 = 동의합니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답니다. 진화의 산물이든 종교적 결실이든, 세상이 변해도 인간은 살아가게 되죠. 그래도 조커씨가 병식(病識)이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약 처방을 받으러 상담실을 찾아준 것을 보면, 희망이 보입니다.

주변에서 왜 저를 무시하죠?

“남 이야기 쉽게 하는 게 문제 ‘상대 존중’ 하는 사회 됐으면”

조커 = 너무 속단하지는 마세요. 제 안에 더 무서운 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약을 먹으면 차분해지죠. 약을 먹지 말라고 조언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중독이 된다느니, 치매가 된다느니, 심지어는 마음 강하게 먹으면 다 없어진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마치 자신은 엄청 강한 사람인 양 착각하는 거죠. 저같이 뇌를 다치거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입었다면, 어림없죠. 어떤 정신과 질병은 약물을 먹는다고 100% 치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았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요. 약물치료를 하면서 일상의 정상 궤도를 찾아야,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김 박사 = 네.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우리 주변에는 남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 특징이 남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굴기 일쑤고요. ‘스스로 존중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필자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섰던 천생 상담가다.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된 수백편의 글을 써왔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다.』 김진세 |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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