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덕질'하는 환경 활동가 고금숙씨 "플라스틱 프리 운동은 쓰레기가 되지 않는 삶이죠"

장은교 기자 입력 2019. 10.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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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금숙씨는 ‘알맹’ 회원들과 함께 망원시장 옆 카페M 한편에 ‘세제소분샵’을 열었다. 친환경 세제를 자신이 가져온 용기에 원하는 만큼 덜어 사갈 수 있는 곳이다. 고씨는 ‘한 평’의 공간만 있으면 어디서든 세제소분샵을 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온라인에 올렸고, 세제소분샵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고씨가 손에 든 것은 자연분해되는 세제 소프넛 열매(왼쪽)와 대나무칫솔, 실리콘 빨대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활동명 ‘금자’. 금자씨의 명함을 보면 한 번 두 번 세 번, 아니 네 번 보게 된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활동가’. 아, 환경단체 활동가구나. ‘알맹@망원시장 매니저’. 매니저? 시장에도 매니저가 있어? 그래도 여기까진 직함 같다. ‘망원동에코하우스 호모쓰레기쿠스’. 뭐? 호모쓰레기쿠스? 쓰레기형 인간이라는 건가. 갸우뚱할 때쯤 마지막 직함이 또 뒤통수를 친다. ‘쓰레기덕질 오거나이저’. 아, 이 사람 뭐지?

‘망원동 호모쓰레기쿠스’

‘쓰레기덕질 오거나이저’

시장서 비닐봉지를 안 쓰고

선포장 없애는 알맹캠페인

쓰레기 쫓아 케냐·인도 견학

단편영화까지 만든 ‘금자’씨

“자본주의는 일회용품으로

몸집을 불리고, 인간까지도

일회용으로 만들고 있죠”

최근 ‘프리 실천법’ 책 펴내

“안 버리고 안 만들자가 아닌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거예요

어떤 물건도 사람도 쓰레기로

취급 않고 서로 돌봄 사회로”

명함 한 장 받았는데 호기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이상한 금자씨’를 만났다. 쓰레기를 쫓아다니다, 쓰레기 찾아 해외여행까지 다녀오더니 “쓰레기도 사람도 일회용이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 운동만 하는 줄 알았더니 “쓰레기가 되지 않는 삶”을 얘기해주는 사람. 지난 7일 서울 망원동에서 고금숙씨(41·사진)를 만나 ‘쓰레기 수다’를 떨었다.

- 본인을 뭐라고 소개하나요.

“원래 ‘할머니 활동가’로 늙어 죽는 게 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1인 독립활동가 겸 반상근활동가가 됐어요. 반은 임금노동자, 반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살죠. 환경단체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에 주 3일 출근해서 유해물질 없애기 운동을 하고요. 그 외에는 동네(망원동)에서 동네 사람들과 ‘플라스틱 프리’ 운동을 하고 있어요.”

고씨의 원래 꿈은 패션지 기자였다. “코르덴을 코듀로이라고 부르고, 연예인도 많이 만나고 뭔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멋져 보여서”였는데, 대학 1학년 때 화장실에 떨어져 있던 페미니즘 교지를 주워 읽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람시(이탈리아 정치사상가)를 읽으며 뭔가 다른 세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여서” 대안적 삶에 빠졌고, 그게 평생 화두가 됐다. 여성환경연대에서 13년간 일하며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이끌었다. 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도록 법 개정을 해낸 것도 그의 작품이다.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기 전부터 건강한 생리대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일을 그만두니까 일상이 더 가까워졌어요. 동네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요.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했어요. 외국을 보니까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불필요한 일회용 포장재에 반대하는 의미로 포장재를 벗기고 내용물만 담아 오거나, 포장재 쓰레기를 파는 곳에 돌려주는 것)’을 하더라고요.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안 쓰는 날’(7월3일)을 맞아 지난해 7월1일에 45명이 모여서 상암동 홈플러스에 쳐들어갔어요. 서로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웃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보고 모였거든요. 마트에서 장 보고 포장지를 다 돌려줬죠. 근데 바뀌는 게 없더라고요. 사실 전 대형마트에서 장을 잘 보지도 않아요. 그래서 내가 사는 곳부터 바꾸자 싶었어요. 지난해 9월부터 망원시장에서 ‘알맹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검정 비닐봉지를 없애고 장바구니를 쓰자’ ‘선포장하지 말자’ 이런 운동이에요.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주고받자는 거죠.”

- 잘됐나요.

“처음에 정말 힘들고 좌절했어요. 채소가게를 세 번씩 찾아갔는데 다 거절당했어요. 우리도 감자 한 알, 양파 두 개 무게 재서 사고팔자고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하면 손님들이 물건을 만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다는 거예요. 비닐을 쓰는 문화, 20년 넘게 굳어진 관성을 뚫고 설득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너희들이 암행어사냐’는 항의도 들었고요. 그래도 1년 동안 많이 바뀌었어요. 망원시장 상점 80곳 중 19곳이 함께하고 있어요. 처음에 부정적이던 어떤 사장님은 ‘대형마트는 사람들이 알아서 안 쓰는데, 시장 오는 어르신들 중엔 왜 비닐 안 주느냐, 비닐값이 아깝냐고 화내는 분도 있어. 차라리 시장에 규제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하세요.”

알맹프로젝트는 ‘주동자’ 고씨를 포함해 망원동 주민 7명이 처음 시작했고, 지난 9월부터는 2기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자)’ 10명이 활동 중이다. 공무원, 간호사, 셰프, 취업준비생 등 직업도 각각이며 나이도 20~40대로 다양하다. 이들은 에코백을 모아 시장에 나눠주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마포구 지역화폐(모아)를 지급하는 등 꾸준히 ‘알맹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알맹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장을 볼 때 생선 등 젖은 재료는 반찬통에, 마른 재료는 천바구니에 담아 온다.

- ‘쓰레기 덕질’이 뭔가요.

“ 길 가다 버려진 쓰레기만 보면 저 쓰레기 가져다 어떻게 살릴까 싶고, 구글 알리미에 ‘쓰레기’ 저장해놓고 관련 뉴스 받아보고 … 과연 우리가 하는 게 ‘덕질(매우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뭐냐, 우린 쓰레기를 사랑한다. 이렇게 된 거죠. 등산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모임(줍줍)도 있고, 일회용컵 보증금제 서명운동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지 여러 아이디어도 나누고, 비닐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빵집, 원두를 자기 용기에 가져갈 수 있는 커피집 등 정보를 공유해요.”

- 쓰레기 보러 외국까지 다녀왔다면서요.

“네(웃음). 망원시장 상인분의 말처럼 시스템이 바뀌는 게 정말 중요한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잖아요. 그래서 가장 강력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에 다녀왔죠.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케냐와 인도를 다녀왔어요. 케냐는 2017년부터 비닐봉지를 쓰면 벌금이 4300만원이에요. 사람들이 굉장히 빨리 적응해서 당연히 장바구니를 써요. 물론 에티오피아 국경에선 블랙마켓으로 비닐봉지가 밀수입된다고는 해요(웃음). 인도는 여성운동과 쓰레기노동(waste peaker) 운동이 같이 가요. 쓰레기를 줍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거죠.”

고씨의 ‘쓰레기여행’ 과정은 <쓰레기덕후소셜클럽>이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로 제작됐다. 이 영화는 지난 9월 환경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상 ‘옥랑문화상’에 선정돼 내년 장편 영화로도 만들어질 계획이다. 고씨는 “영상 하는 친구랑 여성학자 한 분이랑 셋이서 300만원 들고 쓰레기 보러 간 것이었는데. ‘뒷걸음치다 쥐를 잡았다’ ”고 말했다.

- ‘쓰레기 문제’의 답을 좀 찾았나요.

“답은 못 찾았지만, 확실히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건 깨달았어요. 쓰레기 문제는 사실 시스템의 허점이에요. 쓰레기 문제는 경제적 저항이 가장 적은 루트로 흘러내려요. 그래서 제3세계로 가고, 가난한 노인들이 폐지를 줍게 되죠. 이게 진짜 이 시대의 화두인 것 같아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 번 쓰고 뱉어버려요. 이 세상의 기본값이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에 세팅돼 있는 것 같아요.”

- 쓰레기 문제가 ‘존재’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보는 거군요.

“네. 그래요. 자본주의는 일회용품으로 몸집을 불리고, 이제 인간까지 일회용으로 만들고 있죠. 더 이상 자본주의는 대량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사람까지 쓰레기 취급하는 거죠. 고 김용균씨,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한 김군의 가방에서 컵라면과 일회용 젓가락이 나왔어요. 열두 시간씩 밥 먹을 틈도 없이 일하고 곁을 지키는 동료가 없어서 죽었어요. 가장 소외되고 가장 힘이 없는 계층이 시간도 자본도 없으니 결국 일회용품으로 후루룩 끼니를 때우고 자기돌봄을 할 수 없게 되죠. 저는 플라스틱 프리 운동이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가 아니라, 그런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어떤 물건도 사람도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는 삶, 관계를 되살리고 서로를 돌보는 사회로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그저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게 아니라, 관례라든지 자신의 일상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고씨는 최근 ‘쓰레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플라스틱 프리 실천법’이라는 부제를 단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라는 책을 펴냈다. 쓰레기에 관한 고씨의 철학을 담은 ‘쓰레기 이론서’이자, 쓰레기 없는 사회를 위해 누구나 뭐라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쓰레기 실용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재생지를 썼고, 표지는 코팅하지 않았으며, 띠지도 만들지 않았다. 모든 책을 ‘고급스럽게’ 만드는 것이 기본인 한국의 출판시장에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고씨는 책 인세의 일부를 ‘김용균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는 질문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환경운동을 하며 지칠 때는 없나요.

“저는 별로 안 그래요(웃음)변화가 그렇게 빨리 오진 않지만, 길게 보면 사실은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많은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야 변화가 생기잖아요그때까지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 저금하는 기분으로 쌓고 있다고 생각해요플라스틱 프리 운동도 힘들면 가끔 쉬어요‘나 지금 휴식 중이야근데 곧 돌아갈 거야’ 그러죠다행히 한국에 그레타 툰베리(스웨덴 출신의 16세 환경운동가) 같은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정말 즐기면서 자기 삶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죠아직까진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무게가 버겁지만, 언젠가는 저희 같은 ‘쓰레기 덕후’가 아닌 사람들까지 함께하도록 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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