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왜 사업장에 '현미밥'을 보급했나 [인터뷰]

김한솔 기자 입력 2019. 10.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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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의철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소장(42)은 그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현미 아저씨’라고 불린다. 8년차 채식주의자는 그는 자신이 진료하는 노동자들 중 약을 먹어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거나, 부작용이 있는 이들을 보며 고민하다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본인이 직접 현미밥에 채소 반찬만 먹는 ‘채식 실험’을 1달 동안 한 뒤 자신이 관리하는 사업장의 구내 식당에도 ‘현미밥’ 식단을 추가했다. 그는 “병원 안 가는 사람들을 병원에 보내는게 제 일인데, (병원에 와서)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는 분들을 만나면 해줄 게 없어 고민했다. 이런 분들은 식단을 바꾸는 것, 채식도 하나의 치료법이겠다 싶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을 하는 의사모임인 ‘베지닥터’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소장을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의철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소장.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채식을 한 지 얼마나 됐고, 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제 8년 됐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공장에서 일 하는 사람들 건강검진을 하고, 건강 관리가 필요한 분들을 발굴해 적절한 관리를 하도록 만드는 거에요. 병원 안 가는 사람들을 병원에 보내는게 제 일이죠. 그런데 그 중에 약 먹어도 혈압이 안 떨어지는 분들, 혈당 조절이 안되는 분들, 약에 부작용이 있는 분들을 만나면 제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고,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죠. 그러다 우연히 채식 관련 책을 보게 됐고, 약 먹어도 안 되는 분들에게는 식단을 바꾸는게 하나의 치료법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책에서는 좋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알기 위해 제가 먼저 현미밥에 채소만 먹는 ‘실험’을 해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직업병과 환경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일을 합니다. 일 하는 사람들이 좀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서 노동력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죠. 일선 병원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주로 하는 일은 건강검진이에요. 유해인자, 중금속, 가스류 같은 것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1년에 1~2번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를 만나게 되어있어요. 일반 의사와 차이는,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그 증상만 보는게 아니라, 환자가 노출된 환경과 물질, 일하는 조건 등과 연관지어서 증상을 분석하도록 트레이닝을 받아요. 그래서 그냥 약만 주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조언해주죠.”

- 맡고 있는 사업장 몇 곳에 현미밥 식단을 추가했나요?

“3곳이요. 타이어 만드는 회사, 배터리 만드는 회사, 불화수소 만드는 회사에요. 배터리 회사는 제가 6년 정도 관리해 온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평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채식과 건강)관련 교육을 많이 했어요. 그런 교육을 하면서 현미밥이 제공되니까 정착이 잘 됐어요. 반면 불화수소 만드는 회사는 아무런 교육 없이 그냥 현미밥만 식단에 추가했어요. 제대로 된 교육이나 캠페인 없이 주면 사람들이 안 먹어요. 그래서 몇 달 하다가 그만뒀죠. 타이어 회사도 아주 잘 정착이 됐어요. 타이어 회사는 큰 사업장이 3군데 있는데, 다 잘 정착이 됐다고 합니다. 사업장에서는 저를 ‘현미 아저씨’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채식식단을 추가한 뒤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이 얼마나 좋아졌나요.

“사실 회사에서 현미밥 한 끼를 먹는다고 몸이 좋아지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해준 이유는 채식을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에요.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주는데가 없어서 못 먹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회사에 놔두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거죠. 수치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긴 어렵지만, 개별 사례들로서는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사업장별로 몇명씩 보았어요.”

- 왜 직접 ‘채식 실험’까지 해서 사업장에 채식 식단을 추가했나요.

“사람의 건강하게 만드는게 제 일이니까요. 의사의 일이 사람들을 약 먹이는 것인가, 아니면 건강하게 만드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저에게는 채식이 (일종의) 치료 수단이거든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직업환경의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이들이 대우 받아야 하고, 일을 하다 건강마저 손상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의사로서 그런 일에 기여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의철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소장.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사실 매일 ‘신선한 채소’를 사서 뭔가 만들어먹는 것 자체가 ‘부자들의 식습관’인 것은 아닐까요.

“그럴수록 그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채식 선택권’이 존중될 필요가 있어요.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내에서 채식이 활발한 도시는 아닌데, 그래도 중앙역에 가 보면 여러 음식점과 편의점이 있는데 ‘비건’ 메뉴들이 한두개씩은 꼭 있어요. 기차 타기 전 훅 집어서 비건으로 먹을 수가 있다는거죠. 인프라가 있으면 소득이나 계층 구분없이 채식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어요. 지금은 워낙 채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식당도 없고, 음식을 제공해주시는 분도 ‘햄 빼주세요’ 하면 햄 대신에 ‘맛살’이나 ‘계란’을 넣어주니까요. 실천하기가 어렵고, 몇 번 하니까 지치는거죠. 그럼 포기하게 돼요. ‘너무 유난떠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고. 이건 아직 우리 사회가 채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데, 몇년 내 한국도 크게 변할거라고 생각해요.”

- 돈보다는 그렇게 ‘집밥’을 해먹을 수 있는 ‘시간’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저도 7시 넘어 퇴근하면 뭘 해먹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주 40시간’ 은 정말 최대치라는 생각을 해요. 채식을 하는데 있어서나, 사람들이 스스로 건강을 돌보게 하는데는 노동시간을 감축하는게 기본 전제라고 생각해요. 채식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과도한 노동시간과 저임금’이라고 생각합니다.”

- ‘채식 선택권’이 무엇인가요.

“채식을 원하는 이들이 채식으로 식단을 꾸릴 수 있는 권리인거죠. 일반인들 같은 경우는 그냥 채식을 하면 되지만 학교, 교도소, 병원같은 경우는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죠. 원하는 식당을 찾아갈 수 없는 환경인 경우에는 수요가 있으면 반드시 옵션을 제공해줘야 한다는거죠.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지만, 그 이유 중에 ‘반사회적’인 것은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사회에서, 학교에서 장려해야 할 이유들이죠. 온실가스 줄이는데 기여를 하기도 하고, 수질오염과 토양오염, 항생제의 문제, 인간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생태적인 이유, 동물과 생태 보존을 실천하려는 이유 같은 것들이요.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 시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는 무조건 채식으로 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고기나 생선을 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요청을 하면 주기로 했죠. 원래는 채식이 늘 ‘옵션’이었는데 이제 바뀐 거예요. ‘뉴노멀’인거죠.”

- 채식이 ‘환경’과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올해 기후문제를 위한 국가간협의체(IPCC)의 토지 이용에 관한 특별보고서가 발표됐는데, 그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농경지의 상당수가 가축의 먹이와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쓰이고 있어요. 그런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서 아마존 밀림과 같은 산림이 파괴되고, 축산 과정에서 쓰이는 비료들은 이산화질소나 질소화합물로 방출이 되거든요. 그런게 다 온실가스에 영향을 미치죠. 지금과 같은 육식 습관을 유지하면, 온난화는 급속화될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대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 8월 채택한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 요약본은 ‘1961년 이후 유효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식물성 기름과 육류의 1인당 공급량이 2배 이상 증가했고, 1인당 음식 칼로리 공급량도 3분의 1 늘었다. 이런 사실들은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또 ‘곡물, 과일과 야채, 견과류 및 씨앗’과 같은 식물기반 음식과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시스템에서 생산된 동물성 식품으로 이루어진 균형잡힌 식단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환경을 위한 채식’의 필요성은 전세계 52개국 107명의 과학자들이 분석한 기후변화 보고서에도 공식적으로 언급된 셈이다.

지난 8월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PCC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보고서’ 제50차 총회의 사진. 로이터

- 채식을 하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요, 아니면 원래 환경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전자요. 채식을 하면서 불필요한(과도한) 축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하면 이것을 줄일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축산에서 비롯된 환경문제가 온실가스 하나만으로 다뤄지는데에는 아쉬움이 있어요. 축산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와 분뇨, 동물 항생제 문제들도 있거든요. 분뇨 속에 포함된 동물항생제 같은 동물의약품들이 식수를 통해서 아주 미량이지만 들어와요. 축산 환경이 열악해서, 병이 들까봐 항생제를 쓰는 것도 있는데, 사료에 소량만 섞어줘도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요.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을 유지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건강을 생각해서든, 환경을 생각해서든, 기후를 생각해서든 굉장히 큰 문제들이죠.”

- 다른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생긴 일상생활의 변화가 있나요.

“이 허리띠요. 이것도 가죽이 아니라 인조가죽이에요. 이 신발도 가죽신발이 아니에요. 지금 입은 정장은 ‘비건’은 아니죠. 비건 정장류는 우리나라에선 구하기가 어려워요. 넥타이도 그렇고요. 모나 울 같은 것이 들어가 있죠. 어쨌든 그런 것들을 안 쓰게 되고, 최대한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습관을 실천하려고 해요. 집에서 전기밥솥도 안 쓰고, 밥을 많이 해 놓고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데워 먹어요. 차는 전기차로 바꿨고요.”

-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합니다. 최근에는 환경이나, 동물권 때문에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본인이 직접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채식주의자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이라면, 정식 메뉴는 아니더라도 이 분들을 위해 채식을 조금 제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본인이 직접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채식을 하는 분들이 온실가스나 동물학대를 줄이기 위해 더 꾸준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할거예요. ‘궁극적으로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동물학대를 줄이는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면 큰 틀에서 채식의 가치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되니까요. 본인이 하진 않더라도, 그런 정도의 지지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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