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조국 구속하지 않고 사건을 끝낼 수 있을까

박재현 2019. 10. 21. 00: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부 사법처리 수위 놓고 고심
사모펀드 통한 뇌물 혐의 관건
불구속시 재수사 불가피 할 듯
'끝까지 간다'는 게 수사팀 입장

조국 사퇴 이후 검찰 수사의 방정식
투기자본 감시센터 관계자들이 사모펀드를 통해 115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고발하고, 펀드를 관리한 조씨 5촌 조카의 재판은 이번 주 시작 된다. 사모펀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뉴시스]
‘조국 가족 수사’는 절차에 따라 가능한 신속하게 끝낸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정감사 답변은 중의적이다. 신속한 종결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고, 절차에 따른 수사에 무게 중심을 둘 수도 있다. 광장의 정치는 윤 총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상반된 정치적 해석의 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국민적 저항에 밀려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수사는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까. 특히 조씨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수위는 초미의 관심거리다. 수사에 눈 밝은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이들의 전망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①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추가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끝낸다. ②정 교수와 조 전 장관 모두 불구속 기소한다. ③정 교수는 구속 기소, 조 전 장관은 불구속 기소한다. ④정 교수는 불구속 기소, 조 전 장관은 구속 기소한다.

먼저 정 교수를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끝낼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법조인들은 많지 않았다. 주로 문재인 정부에 호의적이거나 검찰 개혁의 시급성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조 전 장관이 물러난 마당에 굳이 부인을 구속해서 무슨 이득이 있냐”고 말했다. 한 가정이 사실상 파탄 났고, 정 교수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점이 온정주의의 배경이다. 하지만 대검 국감에서 정 교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박지원 의원에게 ‘특정인을 보호하는 듯한 질문은 곤란하다’며 면박을 줬던 윤 총장 태도를 고려하면 검찰이 영장 청구 없이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조국
조씨 부부 모두를 불구속 기소하는 두 번째 안은 검찰의 입장에선 사실상 실패한 수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고, 구속 수사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지만 부부 모두를 불구속할 경우 검찰 수사권을 둘러싼 정치적·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특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현 정부와 여권에겐 검찰을 공격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구속=형벌’이라는 내재적 인식 탓에 “불구속 기소할 사안을 갖고 이 난리를 피웠냐”는 비판을 검찰이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교수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될 경우 불구속 기소를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영장 기각은 조씨에 대한 조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정 교수에게서 범행 과정에서 남편의 묵인이나 공모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조씨에 대한 임의조사도 어렵다. 특수수사통 법조인들은 “정 교수에 대해 섣불리 영장을 먼저 청구할 경우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인 구속 기소-조씨 불구속 기소’는 검찰에겐 가장 안정적 답안지가 될 것 같다. 이미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정 교수를 상대로 공무집행 방해를 비롯해 횡령·증거인멸 등 10개가 넘는 범죄사실만으로도 구속 기소가 가능하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조씨도 범행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웅동학원 교사 채용비리의 주범인 조씨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에서 보듯 법원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다는 데 검찰의 고심이 있다. 명재권 영장전담판사 주장처럼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미 이뤄졌고, 피의자가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하고, 건강상태를 참작했다”며 영장을 기각할 경우 검찰 수사는 꼬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검찰이 정 교수에 대한 영장 청구에 앞서 어떤 형태로든 조씨를 소환하는 전략을 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부부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혐의가 상대적으로 중한 사람에 대해선 영장을 발부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윤 총장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투기자본 감시센터 관계자들이 사모펀드를 통해 115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고발하고, 펀드를 관리한 조씨 5촌 조카의 재판은 이번 주 시작된다. 사모펀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김경율 전 집행위원장과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조씨 부부를 뇌물의 공범으로 지목한 것은 검찰을 찜찜하게 만들어버렸다. 정 교수 불구속-조씨 구속의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동안 윤 총장은 ‘끝까지 간다’는 수사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때도 정몽구 회장에 대한 구속을 관철했고, 국정원 댓글 수사 때도 하극상이란 비판을 감수했었다. 최순실에 대한 특검 수사와 국정농단 및 사법농단사건 때도 끝을 봤었다. “과거 사건 수사를 대충 하거나 덮었을 경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윤 총장의 발언에서도 조씨에 대한 수사가 미봉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수사팀도 조씨 사건의 재수사와 특검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의 발단 원인 중 하나인 가족펀드에 대한 수사 없이 사건을 마무리 짓기에는 검찰의 생리상 어려울 것 같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씨가 사모펀드를 통해 사실상 115억원의 이득을 보게 된 것은 민정수석의 지위를 이용한 뇌물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뇌물죄의 경우 조사 결과에 대한 적극적 법리 해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조씨가 민정수석이 된 이후 부인 정 교수가 자문료를 받았던 WFM의 관계 회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이 66배나 뛴 것도 직위를 이용한 경제적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사건을 바탕으로 조씨 부부가 경제적 이득을 함께 얻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하지만 수사팀이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여권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이 수사 확대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여기다 25일부터 사모펀드를 관리해 온 조씨 5촌 조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는 점도 검찰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 일각에선 펀드 부분에 대해선 무혐의 종결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뭍밑 수사를 이어나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치권은 또 한번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 특히 차기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에 대한 인사가 앞당겨질 경우 윤 총장은 진퇴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벼락출세한 민변 출신의 법무부 간부 말처럼 “검사들의 상판때기를 갈겨주겠다”고 달려들 가능성이 큰 것이다. 윤 총장이나 수사팀은 조씨 본인에 대한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 없인 사건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 측근 비리 재수사와 검찰 장악 시도는 정권 몰락 앞당겨

「 김영삼 정부가 무너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보비리에 대한 재수사와 이 과정에서 아들 김현철씨가 별건으로 구속되면서다.

당시 검찰은 국회의장을 비롯한 33명의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된 혐의를 잡고도 사건을 묻으려다 언론의 잇따른 의혹 제기에 재수사를 벌여야 했다.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아들들의 비리 의혹은 물론 이용호·진승현 게이트 등이 계속해 터져 나왔지만 검찰의 미진한 수사는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로 인해 검찰총장과 민정수석을 지낸 현직 법무차관이 사법처리되는 수모를 겪으면서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은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정부 출범과 함께 측근 비리 특검이 시작됐고, 이후 박씨의 월권행위가 포착됐지만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때도 ‘만사형통’ 이상득 국회부의장 등에 대한 수사를 한번에 끝내지 못해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검찰을 장악하려다 탄핵을 당했다. 정권의 고집은 민심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