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공동체의 사회연대 혁신 실험, 무엇을 배울 것인가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2019. 10. 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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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SOCIETY] 새로운 공동체 향한 20년 실험의 현재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 인근은 얼핏 보기엔 서울 같지 않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뜻하게 지은 신축 건물이 있다. '2018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쉐어하우스 '은혜공동체'다. 20년 가까이 공동체와 사회연대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박민수 은혜공동체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이를 통해 공동체와 복지가 가져다 준 효과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 공동체가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가족'과 '공동체 복지'의 혁신 실험은 우리 사회가 가족중심주의에서 복지국가로의 가능성을 여는 데 좋은 상상을 제공하고 있다.

각 '부족'이 연결된 공동 주택

윤호창 사무처장(이하 윤호창) : 은혜공동체의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건축에 어떤 철학을 반영했는지 궁금합니다. 

박민수 대표(이하 박민수) : 어떤 집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할지, 집의 가치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은 공유 공간의 풍요였습니다. 도시의 품격이 공원, 문화 공간, 교통 시설 등과 같은 공공재에 의해 결정되듯이, 공동체 주택의 가치는 공유 공간의 풍요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유 공간을 위해 지하층을 두었고, 1층과 옥상에 다양한 공유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개인 공간을 조금 희생하고, 공유 공간은 넉넉하게 확보했습니다. 

세대 거실들에 서재, 리조트 로비, 모던 바, 카페 등 각기 다른 특성을 부여했습니다. 계단 밑 공간, 자투리 공간, 옥상 등 공유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여러 활동 공간을 꾸몄습니다. 공유 공간의 인테리어에도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공유 공간이 풍요로운 집이 되었고, 이런 다양한 공유 공간은 공동체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또 자주 만나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세대 간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스킵플로어(건물 각 층 바닥 높이를 반층차로 달리 설계하는 방식)를 적용해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두 세대가 서로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보이드 공간(개방형 천장)을 두어 위·아래 세대가 통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중앙 현관에 메인 신발장을 두고 각 세대의 현관을 열고 살자는 혁명적 결정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일반 주거 형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서로 연결되고 열린 집'이 됐습니다. 구성원들은 필요에 따라 여러 공간들로 자유롭게 이동합니다.

우리는 공동체 여행을 다니며 종종 휴양지 리조트 같은 집을 짓고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최소한의 짐을 꾸려 먼 미래가 아닌 그 날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여행자의 삶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이 바람은 건축 모임을 해가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곳곳에 반영되었습니다. 옥상플로어의 정원, 스파, 바베큐장, 가제보, 산책로, 옥상 티룸, 리조트 로비 거실 등은 여행자 집의 구체적 구현이었습니다. 여행자의 삶은 공동체적 사유를 통해 얻은 인생의 의미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현재에 두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여행자의 집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윤호창 : 거주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민수 : 우리 집은 쉐어하우스형 코하우징 주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개의 쉐어하우스가 2층과 3층에 각각 2개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쉐어하우스는 제1공유공간(거실), 제2공유공간(공부방, 사랑방, 어린이 서재), 파우더룸, 부엌, 세탁실, 건조실 등의 공유 시설들과 개별 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윤호창 : 공동체가 실험하고 있다는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들립니다. 왜 이런 개념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또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민수 : 예수는 혈연이나 인종을 넘어 보편적 인류애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을 진정한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혈연을 넘어선 가치 지향형의 사회적 가족을 꾸려서 함께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우리동네사람들'이라는 청년공동체가 비혈연 가족을 꾸려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이를 공동 주택에 적극 도입해 보기로 했습니다. 몇 팀이 연합 가정을 꾸려서 실험적으로 살아보았는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를 은공1호에 확대했습니다. 50명을 네 개의 묶음으로 나누고, 한 묶음을 ‘부족’이라고 불렀습니다. 1부족과 2부족은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세대들, 3부족은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 세대들, 4부족은 11명의 싱글 여성들과 한부모 가족의 엄마들로 구성했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2년이 넘었는데, 각 부족은 친밀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부족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해 나가고 있으며, 재정 관리도 독립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 치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동체

윤호창 : 은혜공동체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박민수 : 2000년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개신교 교회로 시작했습니다. 10년간의 성경 공부를 통해서 예수가 품었던 공동체의 이상을 발견하고 종교 모임에서 공동체로 정체성을 전환했습니다. 회기동에서 마을 형태로 살다가 2017년 도봉동에 쉐어하우스 은공1호를 건립하여 생활공동체를 꾸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독교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종교 색을 탈피해 공동체, 복지, 행복 등을 키워드로 삼아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윤호창 : 대표께서 은혜공동체를 제안하고 만들게 된 개인적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박민수 : 교회 창립 이후 멤버들과 오랜 기간 토론식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대학원 시절 토론식 수업을 통해 황홀경을 경험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토론식 성경 공부의 결과,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성경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알려주는 공동체적 가치에 동의하였고, 공동체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멤버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상담을 했습니다.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사람들을 도와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아마도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품었던 마음이 그 발로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면서 사람의 근원적 욕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 욕구였습니다. 사람들은 관계 욕구가 채워지면 행복을 느끼지만 관계 욕구가 채우지 못하면 내적으로 고통을 겪거나 심리적으로 병들었습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공동체였습니다.

윤호창 : 지난 9월 만찬에 참여해보았더니, 구성원들의 행복도가 커 보였습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민수 : 행복은 관계의 질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첫째, 의지를 꼽고 싶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고 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만큼 관계의 질이 좋고, 구성원 모두는 깊은 안정감과 큰 행복감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우리 공동체는 서로를 향한 의존도가 큰 편입니다.

둘째, 문제 해결을 꼽고 싶습니다. 어떤 관계든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유무보다 문제의 해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 공동체는 문제 해결을 최우선 순위에 둡니다.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도 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다년간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 공동체만의 문제 해결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문제 해결이 안 된 경우는 없습니다. 관계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다 보니, 그만큼 마음 편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그런 관계에서 좋은 정서들이 쌓이고, 좋은 정서가 쌓이니 행복도가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호창 : 구성원들의 문화적인 감수성과 역량이 커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박민수 : 관계가 좋아지면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시도 쓰고 싶고, 노래도 하고 싶고, 춤도 추고 싶은 거죠. 이런 마음들이 커져서 여러 축제들이 만들어지고, 문화·예술 활동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내용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 축제와 문화·예술 활동이 공동체적 친밀감을 더욱 키우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성과 문화·예술 활동은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논어>에 '시를 통해 일어나고 예를 통해 서며 음악을 통해 이룬다.'(子曰;興於詩,立於禮,成於樂)는 말이 있는데, 공자께서 공동체와 예술(문화)의 관계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혜공동체는 복지와 연대체

윤호창 : 공동체 복지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 내용을 좀 설명해 주시지요.

박민수 : 병원진료비는 전액, 치과치료비는 70퍼센트를 지원합니다. 어린이집 비용부터 대학 등록금까지 자녀 교육비의 50퍼센트를 지원합니다. 자진 퇴사 등으로 실업수당을 받지 못한 경우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장애로 생계가 어려울 경우 장애연금을, 퇴직 후에는 퇴직연금을 지급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활동에 대해 활동비를 지급합니다. 재원 마련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기 소득의 10퍼센트를 내고 있습니다.

윤호창 : 대표님이 말씀하신 공동체 복지는 혁신적 사회 실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은 없나요? 이를테면 수입이 많아서 많은 복지비용을 부담하는 분들은 통념상 불만이 있을 것 같은데요?

박민수 : 수입이 많아 복지비용을 많이 내는 사람들의 경우,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겠으나 많이 내는 것이 기쁨이 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윤호창 : 공동체 복지를 통해 구성원들이 얻게 된 효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민수 : 공동체 복지를 실행하기 전엔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았습니다. 청소년들은 장래 불안, 청년들은 취업 불안, 장년들은 노후 불안 등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복지가 시작되고 나서 이런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체가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안정감이 찾아왔습니다. 안정감이 자리를 잡자 현재를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공동체가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고,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복지를 시작하면서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연대의식도 높아졌습니다. 추상적 가족 개념에서 실질적 가족 개념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죠.

윤호창 :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청년들의 창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내용과 방법은 어떤 것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박민수 : 실직한 사람이나 새롭게 창업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창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정 누구를 지정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이나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목공공방, 데이케어센터, 즉석 떡볶기 가게, 이자카야와 도시락 가게 등이 창업되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소득의 2퍼센트를 모아서 창업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윤호창 : 사회, 그리고 지역과 연대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 내용은 어떻습니까?

박민수 : 조작간첩 희생자 같은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찾아 이웃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연대가 필요한 투쟁 현장을 방문하고, 쌍용자동차, 코오롱, 콜트콜택, 세종호텔 등과 같은 장기투쟁 현장은 오랜 기간 연대해오고 있습니다. 인천사람연대가 진행하고 있는 무의탁 노인과 투쟁 사업장을 위한 김장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도봉으로 터전을 옮긴 후 적극적으로 지역연대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을총회, 마을계획단, 마을축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마을계획단 내 공동체 분과를 통해 프리마켓 행사를 진행하고, 이후 로컬푸드 매장 오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윤호창 : 은혜공동체의 이후 발전 방향과 계획이 있다면?

박민수 : 은공2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은공1호에 입주하지 못한 공동체 멤버들이 입주할 예정입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그룹 홈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공동체가 아동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골과 무수골을 잇는 도봉1동 메인 도로를 마을식당, 마을카페, 사랑방, 로컬푸드 매장 등이 자리 잡은 공동체 거리로 조성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품고 마을 공화국 운동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며, 지역 사회와 한국 사회에 공동체적 문화 확산을 위해 힘을 쏟고 싶습니다.

인터뷰 후기 

복지국가 스웨덴은 국가가 '국민의 집'이라는 개념으로 복지국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가는 구성원 모두의 집으로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구성원 개개인이 자유와 행복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집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와 연대가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유럽에서는 4명중 3명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4명 중 1명만이 타인을 신뢰한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고령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어느 곳보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처럼 낮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와 연대로는 복지국가로 진입하기 어렵다.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복지를 강화해 나가야 하겠지만, 소개된 은혜공동체처럼 지역과 마을에서 자율적 연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도 중요하다. 이것이 역동적이며 혁신적인 복지국가의 길과 시너지를 일으킬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혜공동체 20년의 실험과 모색은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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