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칼럼]내일은 누가 죽어갈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2019. 10. 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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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9월2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과 석수역 사이 철로에서 사전 조사 작업을 하던 코레일 하청업체 노동자 정씨(44), 전동차에 치여 사망. 9월3일, 경기도 화성 동탄 삼성물산 공사현장에서 전선작업 중이던 소방전기업체 소속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후 추락하여 사망. 인천 초등학교 급식소 공사 현장에서 추락하는 거푸집 구조물에 머리를 맞아 노동자 1명 사망. 철재 구조물에서 추락한 1명 부상…. 한 노동단체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시작된 지난 9월의 죽음의 행진은 매일 이어졌다. 아니 9월에만이 아니라 재작년에도, 지난해에도, 올해도 이어졌고, 이대로라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매일 3명의 노동자가 추락하고, 감전되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어간다. 질병을 얻어서 죽어가는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매일 5~6명이 죽어간다. 생명을 가진 노동자, 꿈을 가진 사람이었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고, 누군가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도 과거에도, 지금도 잘 알고 있다.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는 죽어가는 노동자의 3분의 1만 세 줄짜리 1단 기사로 알려진다. 사회적 애도는 거기에서 끝난다.

이 노동단체의 언론보도를 추적한 통계는 지난 9월 41명이 산업현장에서 일하다 죽었음을 보여준다. 지난 8월에도, 7월에도, 6월에도 그렇게 죽어갔고,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지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200명 가까이, 1년이면 2000명 가까이 죽어간다. 이들이 죽고 나면 안전대책들이 발표되고, 잠시 현장은 안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사건의 종결은 죽은 자에 대한 약간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나고, 세상의 산업현장에서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그들의 동료들이 죽어간 그 자리에서 똑같이 안전이 무시되는 작업공정을 거치면서 일을 한다. 결국은 죽은 사람이 안전모를 안 썼다든지 하는 개인의 안전의식 부재, 안전 불감증으로 몰아간다. 죽은 자만 억울하게 끝나는 게 산업재해 사망사건의 결론이다.

이런 심각한 사회현상에 대해서 소설가 김훈은, 대한민국은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국가와 같은 먹이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면서 “이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고층으로 올라가고, 고층에서 떨어진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고 일갈했다.

만약 매일 떨어져 죽어가는 이들이 하층 노동자들이 아니라 고위층의 자녀들이었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것 아니냐는 탄식이 뒤따른다. 노동자 중에도 죽을 위험이 있는 위험한 노동은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 노동자들에게로 넘겨진다. 죽어도 원청이 책임지지 않는 산업구조, 누구 하나 죽어도 안전설비와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비용보다는 적으므로 굳이 큰돈 들여서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을 내는 일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보는 기업윤리, 그런 기업의 사업장이 고용노동부가 인정하는 안전사업장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거기서 죽은 노동자는 그 사업의 원청이 아니라 하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이주노동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힘없는, 지위가 낮은 노동자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겨진다.

이런 죽음의 행렬을 끝내자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 하자면서 산재 사망 유가족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의 이름은 ‘다시는’이다. 삼성반도체의 황유미 아버지, 제주 산업체에서 현장실습 사고로 사망한 이민호군의 부모,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씨 어머니 등이 이 모임의 참여자다. 결국 우리 사회는 정부도, 국회도, 사법부도 죽음의 행렬을 멈추지 못하고 있으니 자식을 앞세운 비통한 유가족들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유가족들의 헌신을 역사 속에서 이미 알고 있다. 전태일 열사를 잃은 이소선 어머니의 헌신으로 그나마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소선과 같은 민주화운동 과정에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모인 단체인 유가협이 만들어진 것은 1986년이었다. 고문으로 자식을 잃은 박종철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 최루탄에 희생된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씨와 같은 유가족들은 1980년대부터 민주화 현장을 지키며 수십 년을 싸워왔다. 그분들의 노고와 헌신 덕분에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힘겹지만 이만큼이라도 전진해왔다. 의문사 유가족들이 활동하면서 군에서 사망사고도 줄어들었다. 강제납치와 고문과 불법구금이 사라지고, 의문사가 이만큼이라도 줄어든 배경에는 이들 유가족들의 헌신이 있었음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까.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그런 유가족들의 길을 가기로 했다. 이소선 어머니가 전태일 열사와의 약속을 지켜냈듯이 오로지 “내가 김용균”이라면서 “미친 세상과 싸우는 엄마”로 나섰다. 그 엄마가 국회에 가서 의원들을 잡고 호소하면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될 수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를 비롯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이만큼이라도 세상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 오는 10월26일 출범하는 ‘김용균재단’은 위험의 외주화를 없애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노동자들이 존중받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찾아 나선다.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아픔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일도 그만뒀어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이전의 엄마로, 이전의 김미숙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아버린 그 사람,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식들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음을 알면서도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는 것처럼 김미숙씨도 그 길을 가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 덕에 안전사회로 한 걸음 더 빨리 나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기서도 유가족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산 넘어 산인 그 험한 길을 나서는 김미숙씨와 산재 사망 유가족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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