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2년]'첫 발' 뗐지만.. ESS화재·외산잠식에 산업생태계 요원

김정유 2019. 10.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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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W 이하 중소 발전사업자 늘어, 저변 확대 의미
산업생태계 측면선 미흡, 화재로 ESS업계 고사직전
태양광산업도 잇단 파산, 풍력은 외산이 51% 육박
불법브로커 등 부작용도, "속도보다 내실 중요한 시점"

[이데일리 김정유 남궁민관 기자] “현재 7%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20%까지 확대하고 원자력발전 축소로 줄어든 발전량을 태양광, 풍력 등으로 확대해 공급하겠다.” 2년 전인 2017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의 골자다. 로드맵이 발표된 지 2년을 맞는 지금 국내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명암은 극명히 갈리고 있다. 과거 미미했던 신재생발전 비중을 끌어올려 에너지전환에 첫걸음을 뗐다는 긍정정인 평가도 있지만 정부가 속도에만 매몰돼 신재생 관련 신성장산업 육성 및 생태계 구축에 있어선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SDI가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관련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삼성SDI,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SS·태양광·풍력… 밸류체인 끊기고 외산 잠식

21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1MW 이하 중소형 태양광발전소 비중은 전체 설치량의 92%(7월 기준, 1.5GW)를 차지하며 전년 동기대비 9.1%p 증가했다. 이중에서도 100kW~1MW급 소규모 설비 비중은 지난해 46.2%에서 올해 52.8%까지 늘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란 일종의 ‘유도책’이 큰 효과를 봤다.

사업자는 신재생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받은 REC를 다시 거래시장에 판매해 수익을 낸다.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난만큼 저변 확대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같은 긍정적 효과 뒤에는 부작용도 있다. 신재생 보급은 크게 확대됐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생태계 조성, 보호에는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대표적 사례다. REC 가중치를 상향하는 등 지난 2년간 ESS 보급 확대를 이끌던 정부는 정작 화재문제가 발생하자 홀연히 존재감을 감췄다. 정부가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탓에 그 누구도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애꿎은 중소 ESS 업계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미국, 중국 등 해외 ESS 업체들까지 국산대비 최대 20% 가량 저렴한 제품들로 저가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자칫 산업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SS 전력변환장치(PCS) 제조업체 A사 관계자는 “ESS 화재 이후 중소 ESS업체와 발전사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올해 국내 ESS 시장은 지난해대비 4분의 1수준까지 쪼그라들 정도로 숨만 쉬고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태양광 산업 자체도 밸류체인이 모두 끊어진 상태다. 최근 1~2년새 국내에서 잉곳·웨이퍼를 제조하는 업체들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넥솔론은 지난해 파산했고, 웅진에너지(103130)는 현재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태양광의 쌀’로 풀리는 폴리실리콘 업계도 위기다. 지난해 국내 폴리실리콘 2위 업체 한국실리콘이 파산한 데 이어 1위 OCI 역시 최근 적자 상태다. 풍력발전 시장은 외산 잠식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풍력발전시장에서 스페인 지멘스 가메사와 덴마크 베스타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윈드 등 해외 기자재 점유율이 2017년 말 누적 기준 51.49%에 이른다. 올해 8월에는 덴마크 국영 에너지기업 오스테드 역시 국내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정부가 신재생 확대 정책과 함께 국내 기업들의 기초체력을 함께 키울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는 “태양광과 풍력 관련 산업생태계를 빨리 구축하고 우리가 어느 정도 와있는지, 과연 우리 기술이 시장에서 적정수준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확인해야 한다”며 “태양광의 경우 보급 물량은 충분한 것 같은데, 이제는 어떻게 내실화를 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태양광 사기·지역사회 반발도 숙제

시장이 커지면서 최근 활개하고 있는 태양광 사기도 부작용 중 하나다. 지방 소재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달에 70만~80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접근해 허가증도 없이 시공부터 들어간다. 전라도에 거주하는 70대 B씨도 최근 한 시공업체로부터 18kW급 태양광 패널 설치를 권유받았다. 해당 시공업체는 계약서와 지자체 허가증도 없이, 신청서 1장으로 하루 만에 패널을 설치하고 B씨에게 비용 4000만원을 일시불로 달라고 요구했다. 뒤늦게 B씨의 아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며 철거해달라고 하자, 철거비용으로 1000만원을 요구했다.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올해 7월 말까지 에너지공단에 접수된 태양광 피해 관련 문의는 약 80건에 달한다.

주민수용성 문제도 자주 불거진다. 최근까지도 지역사회와의 갈등으로 인해 신재생발전사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도 당초 전국 700여곳에 수상태양광을 지으려고 했지만 주민 반발에 막혀 계획을 대폭 축소하는 등 지역과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내세우는 반대 이유는 △저수지 녹조 발생 △오염물질 배출 △경관 훼손 등이다. 정부 기관들은 각종 실증데이터를 기반으로 ‘환경무해’를 적극 전파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민수용성은 떨어진다. 속도에만 신경쓰다보니 주민 설득 및 합의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탓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은 고용창출과 기술개발 등이 직접 이뤄지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길게 보고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면서 “재생에너지는 가야만 하는 방향인 것은 맞지만, 이제는 산업생태계 구축에 다같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정유 (thec9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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