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마포대교 '자살예방 문구' 7년 만에 전부 지웠다

최미랑 기자 2019. 10. 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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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8월30일 서울 한강 마포대교 난간에 2013년 설치된 자살예방문구가 붙어 있다. 위로는 2016년 설치된 자살방지 난간이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8~9일 마포대교의 자살예방문구를 모두 제거했다고 22일 밝혔다. 김정근 선임기자

투신 방지를 목적으로 한강 마포대교 안전난간에 설치한 ‘자살예방 문구’를 서울시가 7년 만에 전부 지웠다. 대신 마포대교에 3년 전 설치한 ‘자살방지 난간’을 보완하고, 한강대교 등 7개 다리에도 이를 확대 설치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22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일부 문구를 지난달 말 삭제한 데 이어 지난 8일부터 이틀간 마포대교에 설치된 문구를 전부 지웠다”고 밝혔다.

마포대교의 자살예방 문구는 2012년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합동으로 벌인 ‘생명의 다리’ 캠페인을 계기로 설치된 장치다. 난간에 센서가 장착된 LED 조명을 설치해 사람이 지나가면 불이 켜지면서 문구가 잘 보이도록 했다.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 마음을 돌리게 한다는 의도였다. 2013년에는 시민 공모를 거쳐 메시지와 사진을 선정해 다리 전체를 새로 꾸몄다.

설치 직후에는 ‘2013 부산국제광고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부적절하거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일부 문구가 투신을 결심한 사람을 위로하기는커녕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 등 우스개 문구와, 삶에 대한 응원의 뜻을 담았지만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는 것으로 오독될 여지가 있는 ‘한번 해 봐요’ 등 문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까지 이들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는 민원이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접수됐다.

설치한 지 7년이 지나 시설이 낡은 것도 문제였다. 2015년 11월부터 점등 기능은 없애고 문구만 남겨뒀던 서울시는 설상가상 지난달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문구가 새겨진 플라스틱 덮개가 다량으로 날아가 훼손되자 전문가 자문을 거쳐 결국 자살예방 문구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래도 덮개가 한 달에 1개씩은 파손됐고 앞으로도 노후화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며 “문구가 쓰여 있던 덮개를 보수할 방안을 강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016년 12월 서울시가 설치한 마포대교 자살방지난간 이미지. 서울시 제공.

시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자살예방 문구를 제거하는 대신 충동적 투신을 막을 안전장치를 늘리기로 했다. 마포대교는 실제로 2016년 12월 수상구간에 ‘자살방지 난간’을 설치한 이후 자살 시도자가 줄었다. 원래 1.5m 높이인 안전난간 위에 추가로 1m 높이 난간을 설치하고 붙잡고 오르기 어렵도록 맨 윗부분에는 롤러를 장착했는데, 2016년 211명이던 자살 시도자 수가 난간 설치 이듬해인 2017년 163명, 2018년 148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인근 한강대교와 양화대교에서는 자살 시도자 수가 오히려 늘었다. 시는 마포대교의 자살방지 난간을 보완하는 한편, 원효·한강·양화·서강·잠실·한남·광진교에 2021년부터 자살방지 난간을 모두 설치하기로 했다. 현재 마포대교를 포함해 8곳 다리의 자살방지 난간에 대한 실시설계 용역이 진행 중이다

한편 한강대교에는 마포대교를 따라 2013년 설치한 자살예방 문구가 아직 남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대교의 문구는 마포대교에 비해 보존 상태가 좋고 논란이 된 문구도 없는 데다 아직 자살방지 난간도 없는 상황이어서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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