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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 강조한 나루히토..'우경화 일본' 변화 전환점 될까

김기혁 기자 입력 2019. 10. 22. 18:01 수정 2019. 10. 2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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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夢 견제한 일왕 "헌법 따르겠다"]
"헌법 따라 日·국민통합 상징으로서 직분을 다할 것"
일왕 발언은 '오코토바'..보통 국가화 개헌 영향 줄수도
"아베, 존재감 알리기·정권 홍보에 즉위식 이용" 비판
트럼프 축하 성명.."미일 파트너십 흔들리지 않는 기둥"
나루히토(왼쪽) 일왕이 22일 도쿄 고쿄(皇居) 내 영빈관 마쓰노마에서 열린 ‘즉위례 정전의식’에서 마사코 왕비와 단상에 올라 자신의 즉위를 선언하고 있다. /도쿄=EPA연합뉴스
[서울경제]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자신의 즉위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연설은 2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계 평화와 헌법 준수를 강조한 이 짧은 연설은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 총리와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일본 국민에게 울림을 준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선언이 일본 사회와 정치권 변화의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후1시 도쿄 지요다구 고쿄(皇居)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에서 열린 ‘즉위례 정전의식’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2분가량에 걸쳐 즉위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즉위는 올해 5월1일 이뤄졌으나 일본 안팎에 알리는 의식을 따로 연 것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자신이 일본 헌법과 ‘황실전범’ 특례법 등에 따라 왕위를 계승했다며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예지와 해이해지지 않은 노력에 의해 우리나라가 한층 발전을 이루고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계 평화’라는 표현은 나루히토 일왕이 새롭게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NHK에 따르면 나루히토의 부친인 아키히토 전 일왕은 지난 1990년 즉위식 당시 “항상 국민의 행복을 기원하며 일본 헌법을 준수하고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전 일왕도 재위 중 여러 차례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는 뜻을 표명했지만 나루히토 일왕은 즉위할 때부터 이 같은 메시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2차 대전 이후 출생한 첫 일왕인 나루히토가 그동안의 평화주의 행보를 이번 즉위식에서도 이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나루히토 일왕은 5월 ‘헌법에 따라 일본과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서 직무를 다할 것이며 일본이 외국과 손잡고 평화와 발전을 이루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표하며 평화헌법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8월15일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일에는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도록 절실히 기원한다”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강조했다.

이번 즉위 선언에서 나루히토 일왕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 개정을 통해 일본을 ‘보통국가화’하려는 아베 총리와 대립된 메시지를 내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는 18일 집권 자민당 주최로 와카야마현에서 열린 한 집회에 참석해 “현행 헌법도 제정한 지 70여년이 경과했으니 시대에 어울리지 않은 부분은 개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 개헌의 필요성을 재강조했다. 일본에서 일왕의 발언은 ‘오코토바(말씀)’로 불리며 특별하게 인식된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비중 있게 받아들여져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개헌 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일왕의 즉위 선언에 이어 아베 총리는 국민을 대표해 ‘요고토’라고 불리는 축하 인사를 했다. 아베 총리는 “우리 국민 일동은 ‘천황폐하’를 일본의 상징으로 우러르고 평화와 희망이 넘치는 자랑스러운 일본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외쳤다. 아베 총리는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4개월여 만에 일왕 즉위식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톡톡히 알리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번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50개국 정상, 국가 대표와 연쇄 회담에 나서고 즉위식 다음날인 23일에는 외교 사절을 대상으로 만찬을 연다. 단순한 정권 홍보에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에 전쟁 가능한 국가로 돌아가는 자신의 헌법 개정 의지를 드러내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도쿄신문은 야당 관계자를 인용해 “일왕이 바뀌고 연호가 달라지는 것이 헌법 개정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베 총리가 일왕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을 축하하는 성명을 내고 미일동맹을 강조했다. 그는 성명에서 “레이와 시대의 도래는 미일 국민 우정의 유대가 가장 강력한 시점에 이뤄진다”면서 “우리의 국제적 파트너십은 인도태평양 지역 및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라고 밝혔다.

이날 도쿄에는 제20호 태풍 ‘너구리’의 영향으로 폭우가 내려 일왕이 자신의 조상들에게 ‘즉위 행사 거행’을 보고하는 오전 의식은 폭풍우 속에서 진행됐다. 저녁에는 나루히토 일왕이 각국의 축하 사절을 맞는 궁중연회가 이어졌다.

한편 이번 즉위식을 계기로 여성도 일왕에 오를 수 있도록 후계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과 아키히토 전 일왕을 제외하면 남성 왕족은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와 아키히토의 동생인 마사히토, 후미히토의 아들인 히사히토밖에 없어 차기 왕위 계승자는 나루히토의 딸인 아이코 공주가 돼야 한다는 견해도 상당하다. NHK가 9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 일왕의 탄생에 찬성하는 의견이 74%에 달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가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이 끝난 후 왕위 계승을 위한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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