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구글 양자컴퓨터 칩 드디어 공개.."양자우월성 달성했다"

윤신영 기자 입력 2019. 10. 23. 20:30 수정 2019. 10. 24. 09: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글 '네이처' 논문 발표..난수 증명 특정 과제에서 슈퍼컴 능가 확인
구글이 양자컴퓨터로 기존 컴퓨터를 능가하는 연산 성능을 보이는 이른바 ′양자우월성′을 달성했다는 논문을 정식 발표했다. 9월 중순부터 한 달 이상 지속돼 온 논란이 일단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 AI 블로그 제공

지난 9월, 구글이 새로 개발한 양자컴퓨터 칩 ‘시커모어’가 특정 과제를 푸는 임무에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완전히 압도해, 양자컴퓨터가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을 일부 넘어서는 ‘양자우월성(양자우위)’을 최초로 달성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 미국항공우주국(NASA) 사이트에 게시됐다 삭제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구글은 현존 최고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3분 20초(200초)만에 풀었다고 밝혀 과학계와 공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 연구 결과가 동료 평가를 거친 정식 논문으로 드디어 출판됐다. 유출됐던 연구 내용은 전부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쟁사인 IBM은 문건 유출이 보도된 10월 초부터 지난 21일까지 줄곧 “구글은 양자우월성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부정해 왔지만, 적어도 구글이 현존 최고의 양자컴퓨터 칩을 개발해 특정 과제에서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인 것은 확실해졌다.

존 마르티니스 미국 UC샌타바버라 교수와 구글 인공지능(AI)퀀텀팀은 “기존 최강 슈퍼컴퓨터로 푸는 데 1만 년 걸리는 과제를 3분 20초(200초)만에 푸는 새로운 양자컴퓨터 칩 ‘시커모어(플라타너스라는 뜻)’를 개발하고 성능을 시험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23일자 온라인판에 공개했다. 네이처가 정규 발행 시간이 아닌 때에 논문을 즉시보도로 공개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이번 논문을 둘러싼 억측과 논란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련기사 : 구글 양자컴퓨터, 슈퍼컴 능가했나 '양자우월성 달성' 논란)

구글이 이번에 개발한 시커모어는 53개의 큐비트(양자비트. 양자 정보 최소 단위)를 십(十)자 모양으로 연결해 구현한 최신 양자컴퓨터 칩이다. 절대0도에 가까운 극저온으로 냉각했을 때 저항이 0이 되는 소재인 초전도체 사이에 금속을 끼운 전자소자(조셉슨 소자) 내부에서, 전자 두 개가 하나의 양자처럼 쌍을 이뤄 통과하는 현상을 이용해 계산을 하는 ‘초전도 소자’ 방식을 쓴다. 초전도 방식은 23일 삼성이 투자하기로 한 미국의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가 연구 중인 이온트랩(이온덫) 방식과 함께 현재 가장 유력한 양자컴퓨터 큐비트 구현 방식으로 꼽힌다. 이온트랩은 자기장 등을 이용해 이온을 분리, 제어한 뒤 양자상태를 측정해 양자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다.

구글은 시커모어를 이용해 난수를 증명하는 비교적 단순한 알고리즘을 수행하고 성능을 평가했다. 정연욱 한국표준과학연구소 양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양자컴퓨터 칩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고안된 알고리즘 중 하나로, 대부분 기존 컴퓨터보다 양자컴퓨터가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어려운데, 구글은 시커모어로 이 작업을 3분 20초 만에 끝내는 데 성공했다. 구글은 “이 과제는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로도 1만 년 걸리는 문제”라고 밝혀 사실상 이 과제에 한해서는 ‘양자우월성’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는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서미트’로 2019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슈퍼컴퓨팅 콘퍼런스가 발표한 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순위에서 148페타플롭스(PF)의 연산속도를 발휘했다. 1PF는 1초에 1000조 개의 계산을 할 수 있는 속도다.

구글은 "시커모어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칩"이라며 "이미 올해 봄 양자우월성을 달성한 뒤 지금은 양자화학과 머신러닝 양자물리 등에 응용하려 시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칩 시커모어의 큐비트 배열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구글 AI 블로그 제공

이번 연구 결과는 논문 정식 발표 이전에 초안이 사전 유출되며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켜 왔다. 논란은 지난달 20일 미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구글이 양자우월성에 도달했다고 밝힌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작했다. 기사는 지금은 사라진 NASA의 문서를 인용해 구글이 코드명이 시커모어인 양자컴퓨터 칩을 만들었고 슈퍼컴을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고 전했다. 구글은 NASA와 함께 양자우월성 확인을 위한 연구를 하기로 지난해 합의한 바 있다. 구글은 미국의 기업 IBM과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연구개발을 수행 중인 기업이다. 두 기업은 지난해 각각 53(IBM)~72(구글)개의 양자 정보단위(양자비트 또는 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경쟁사인 IBM이 어깃장을 놓으면서 논란이 커졌다. IBM은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IBM 연구소장이 직접 논평을 하며 “구글의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21일에는 자사 블로그에 글을 게재하고 논문 사전 공유사이트 ‘아카이브’에 논문까지 공개하며 “구글은 양자우월성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논평했다. 

(관련기사 : 구글 양자컴 '우월성' 논란에 경쟁사 IBM "기존 슈퍼컴 완전히 뛰어넘은 것 아냐" 반박)

블로그 글과 논문에서 에드윈 페드노 IBM연구소 석좌연구원과 제이 감베타 IBM 연구소 부소장 등 세 명의 전문가는 “구글 문건은 기존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리는 문제를 새로 개발한 양자컴퓨터 칩으로 3분 20초만에 풀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우리가 다시 살펴본 결과 그 문제는 현존 슈퍼컴퓨터로 이틀 반이면 훨씬 높은 신뢰성으로 풀 수 있는 문제였다”며 구글이 기존 컴퓨터도 도저히 불가능한 성능을 보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IBM은 “이 계산도 아주 보수적으로 잡은 결과이고, 성능을 최적화하면 계산에 드는 자원을 더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IBM은 “구글은 기존 슈퍼컴퓨터가 해당 과제 수행을 위해 랜덤액세스메모리(RAM)에 슈뢰딩거 상태벡터(양자역학에서 상태를 나타내는 일종의 변수)를 모두 저장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어 공간을 시간으로 치환한 다른 시뮬레이션(슈뢰딩거-파인만 시뮬레이션)에 의존해야 한다고 보고 푸는 데 1만 년이 걸린다고 추정했다”며 “하지만 구글은 기존 컴퓨터에 외부 저장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이 23일 전격 발표한 네이처 논문 첫 페이지. 네이처 논문 캡쳐

이들은 “기존 컴퓨터는 램과 하드디스크를 이용해 상태벡터를 다루고 저장할 수 있으며, 다양한 기법으로 성능을 높이고 신뢰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며 “구글의 결과는 초전도 회로를 사용하는 53큐비트 장치의 최신 성과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지만, 양자 ‘우월’과는 거리가 멀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네이처가 서둘러 논문을 공개하면서 시커모어의 성능은 기정사실이 됐다.

정 책임연구원은 “구글이 수행한 알고리즘을 기존 컴퓨터로 풀었을 때 양자컴퓨터보다 절대 좋은 성능을 낼 수 없다고 수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기술을 총동원하면 기존 컴퓨터로도 양자컴퓨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좋은 성능을 낼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며 “이번에 IBM은 이렇게 기존 컴퓨터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양자우월성의 기준을 높여) 구글이 양자우월성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자우월성은 정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구글이 양자우월성에 도달했는지 여부는 논란이 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글의 시커모어가 현존 최고의 양자컴퓨터 칩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양자컴퓨터 분야의 큰 이정표가 틀림없다는 게 전문가들이 평이다. 다만 아직은 개발중이므로 무조건적인 낙관이나, '이제 모든 암호가 뚫리게 됐다'는 성급한 두려움은 피해야 한다. 아직은 범용 양자컴퓨터가 개발된 게 아니다. 특정 과제에서 성능을 확인했고, 연산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 등 추가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정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는 이 분야의 '문샷(미국 아폴로계획의 별명. 극적이고 과감한 도약을 의미)'으로 의미가 크다"며 "동시에 양자컴퓨터 완성에 아직 10여 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도 분명해진 계기"라고 말했다.

양자우월성이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를 압도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길 필요가 있다. IBM연구소가 21일 게시한 글에서 에드윈 페드노 IBM연구소 석좌연구원 등은 “양자컴퓨터와 기존 컴퓨터는 각자의 고유한 강점이 있기에 한쪽이 다른 쪽의 우위에 서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협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는 관측 전까지 양자가 지닌 정보를 특정할 수 없다는 '중첩성'이라는 양자역학적 특성을 이용한 컴퓨터다. 물질 이온, 전자 등의 입자를 이용해 양자를 만든 뒤 여러 개의 양자를 서로 관련성을 지니도록 묶는다(이런 상태를 '얽힘'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양자를 제어해  정보 단위로 이용한다. 이 정보단위가 큐비트다. 디지털의 정보단위 비트는 0 또는 1의 분명한 하나의 값을 갖지만, 양자정보는 관측 전까지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하기에 이들이 여럿 모이면 동시에 막대한 정보를 한꺼번에 병렬로 처리할 수 있다. 2개의 큐비트를 예로 들면, 기존의 비트는 00, 01, 10, 11의 네 정보값 가운데 하나만 처리할 수 있지만, 큐비트는 네 개를 모두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