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40주년]③국내외 문건·증언으로 재구성한 10·26(2)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탐사보도팀 기자 = 전두환 회고록은 10·26 사건 발생 후 김재규가 맞이한 최대 위기를 '동지'로 생각했던 김계원 비서실장과 정승화 육참총장의 갈등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계원은 김재규의 설득으로 육군본부 벙커에 오기는 했으나 고민 끝에 김재규가 시해범임을 노재현 국방부 장관과 정승화 육참총장에게 알렸다. 사실을 알게 된 노재현 장관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김재규를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오후 11시 50분 국무회의가 열려 계엄 선포 안을 심의하던 중 김성진 문공부 장관 건의로 10분간 정회한 비상 국무회의는 이튿날 새벽 두 시에 속개됐다.
김계원의 실토로 대통령 서거 사실을 알게 된 최 총리와 신 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유해가 안치된 사실 확인을 위해 국군서울지구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27일 새벽 3시 국무회의를 마쳤고 4시10분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계엄사령관에는 정승화 육참총장이 임명됐으나 국무위원 중 누구도 그가 김재규의 요청으로 사건 현장 인근에 있었던 사실은 알지 못했다.
자정 무렵 정 총장에게서 '신병 확보' 지시를 받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보안사 군사정보과장 오일랑 중령에게 육본 헌병 대장 복장을 하도록 했다.
국방부 장관실에서 최 총리와 국무위원들의 동태를 감시하던 김재규를 밖으로 유인하는 일은 정 총장의 비서실장으로 위장한 김진기 헌병감이 맡았다.
그가 조약래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보내 정 총장이 만나고자 한다는 전갈을 하자 김재규는 순순히 따라 나왔다.
김진기와 오일랑이 국방부 지하 계단 쪽으로 김재규를 데리고 가자 박흥주가 따라붙었으나 헌병들애 제지됐다. 대기하던 차량 앞에 온 오일랑은 뒷문을 열고 "부장님, 타시죠."라며 김재규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김재규가 체념한 듯 저항하지 않자 뒷좌석 왼쪽에 밀착해 앉아 김재규의 권총을 빼앗았다. 27일 0시 30분의 일이다.
보안사 정동 분실로 압송된 김재규는 허화평 대령의 안내로 2층 응접실로 가더니 "전 사령관 좀 오라고 해. 지시하거나 상의할 일도 있다"고 했고 "(내가) 여기 잡혀 있는 사실을 알면 부하들이 쳐들어올 거야"라며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고 한다.
전두환 당시 사령관은 인근 중정 분실 쪽이 반격할 수 있다는 허화평 대령의 우려를 받아들여 27일 오전 2시 김재규를 서빙고 분실로 이송하도록 했다.
조갑제의 『제5공화국』에 따르면 그사이에 박흥주와 박선호 등 사건 가담자 6명도 전원 체포됐다. 보안사의 우국일 참모장은 새벽 1시께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청와대 경호실 직속인 33 헌병대 병력 지원을 받아 사건 현장인 궁정동 식당을 접수하고 (중정의 반격에 대비해) 보안사 경비도 강화하겠다고 건의했다.
전두환 사령관은 "신병을 확보해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는 정 총장의 지침을 받아 새벽 2시께 헌병대 병력을 안가에 보내 중정 경비원들을 무장 해제시켰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와 조사받던 김재규는 수사관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켜 놓은 라디오에서 새벽 4시 10분께 '정승화 계엄사령관 임명 소식을 듣고 돌연 손뼉을 치면서 떠들어댔다고 전두환 회고록은 전한다.
허화평 이사장은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요청으로 범행 현장 인근에 있었고 사건 직후 육본으로 동행한 사실을 그때서야 수사관들이 알게 된다고 전했다. 김재규는 계엄사령관 임명 사실을 전해 들은 뒤 안도한 듯 조사관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실을 줄줄이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이학봉 당시 수사국장은 이를 전 사령관에게 즉각 보고했고 수사관들은 정승화와 김재규의 공모에 대한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허 이사장은 부연했다.
김재규의 대통령 시해 후 첫 단계 계획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에 임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비상계엄 선포를 재촉하면서도 그 사유를 궁금해하는 국무위원들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급기야 김성진 문공부 장관 등이 반발하며 정회를 요구했고 국무회의는 중단됐다. 전두환 회고록은 이 시점을 "김재규에게 치명적인 순간"으로 묘사했다.
"김재규와 김계원은 계엄령 선포 의결을 앞둔 시점에서 상황이 그렇게 반전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터였다...(중략)...김계원 실장이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기로 마음을 정한 것은 이때였다. 비상 국무회의가 좌초되자 김재규의 쿠데타 기도가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계원은 회의가 중단되자 슬며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옆방으로 가 국방부 장관 보좌관에게 노재현 장관과 정승화 총장을 급히 불러오라고 요청했고, 두 사람에게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임을 밝히고 "그에게 권총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는 게 전두환 회고록에 묘사된 당시 상황이다.
김재규를 체포해 조사한 전두환 계엄사 합수본부장은 사건 발생 이틀 만인 10월 28일 중간수사 결과를, 11월 6일에는 수사 상황 전모를 각각 발표했다. 다음 날인 7일에는 언론 공개 하에 현장 검증을 했고 11월 13일에는 김재규와 수하 7명, 김계원 등 8명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 미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
김재규는 서빙고 분실로 압송된 뒤 수사관들에게 "김계원이 나를 배신했지만 정 총장은 병력 동원 내용을 장관이 아닌 내게만 보고하는 등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며 정 총장과의 묵계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전두환 회고록은 전했다.
이학봉 수사국장 등 수사관들은 정 총장이 최소한 육본 벙커에서 병력 동원 상황을 김재규에게 알려주던 그 상황까지는 김재규의 의도대로 군을 움직여주었다고 의심할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정 총장은 훗날 12·12사태로 총장 공관에서 합수부 수사관들에게 강제 연행돼 조사를 받을 때 벙커 내 총장실에서 김재규에게 군 수뇌 소집 사실과 계엄군의 출동 상황을 보고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 총장은 또 수사관이 "계엄군의 점령 목표에 대해 (김재규에게) 문의한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김재규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뜻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라고 시인했다. (1980·2·6. 피의자 신문조서, 12·12사건 검찰 수사기록 6,990쪽.)
김재규와 그의 중정 부하 6명, 김계원 등 8명은 12월 4일 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첫 공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 중 7명은 12월 20일 1심 판결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유석술 피고인만 증거 은닉죄로 3년 형을 받았다. 이듬해 1월 28일 항소심 판결에서는 김계원 피고인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현역 군인이던 박흥주 대령은 단심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이듬해 3월 6일 수도권 부대 소재지인 경기도 시흥시 소래면의 한 야산에서 총살됐다.
안동일 변호사의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를 보면 박흥주는 사형 집행 직전 '대한민국 만세'를 두 번이나 소리 높여 외쳤다고 한다.
태윤기 변호사 등은 재심 청구(1979·12·26) 등을 통해 박흥주의 사형집행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계엄 당국은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도 나기 전에 박흥주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것이 문제라고 안동일 변호사는 지적했다.
김재규와 박선호, 유석술, 이기주, 김태원, 유성옥 등 부하 5명은 상고심 판결(1980·5·20)에 기대를 걸었으나 허사였다. 김재규는 최후 진술에서 부하들은 죄가 없으니 선처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6명에 대한 교수형은 1980년 5월 24일 서대문형무소 자리에서 집행됐다.
duck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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