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업가 ⑱ 댄 프라이스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 최저 연봉 7만달러..현대판 로빈 후드 '미친 사장님'

2019. 10. 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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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결제대행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
높은 카드 수수료, 낮은 서비스에 분노
19세때 "관행 바꾸겠다" 기숙사서 창업
'정직·투명성·책임감'이 핵심 가치
'저비용 고효율' 기업 경영 이론에 반기
출산율 증가..직원행복이 고객행복으로
인수한 회사도 2024년까지 7만달러 약속
프라이스는 3년 전 인수한 회사를 지난달 24일 그래비티 페이먼츠 아이다호 보이시 지점으로 변경한 뒤 해당 직원들의 최저 연봉도 2024년까지 7만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 Payments) 자료]

‘사장님이 미쳤어요’.

재고 정리를 하는 할인 매장에서나 볼 법한 문구를 타이틀로 얻게 된 정보기술(IT) 기업 ‘사장님’이 있다. 미국 신용카드 결제대행사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 Payments)’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댄 프라이스다.

그런데 프라이스는 여느 ‘미친 사장님’들과 조금 다르다. 다른 사장님들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당기기 위해 파격적인 할인이나 프로모션을 했다면, 그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연봉을 대폭 인상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전문가들과 업계의 의심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프라이스의 실험은 성공했고, 그는 미친 사장님이 아니라 ‘혁신적인 사장님’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도움’을 꿈꾼 청년=미국 아이다호의 시골 마을에서 자란 프라이스는 시애틀퍼시픽대 신입생이던 19세 때 기숙사 방에서 그래비티 페이먼츠를 창업했다. 그는 당초 음악에 열정이 있었지만 고향의 많은 소상공인들이 신용카드 결제대행사들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생의 사명을 깨달았다. 높은 카드 결제 수수료를 내고도 낮은 품질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프라이스는 직접 업계에 뛰어들어 관행을 바꾸기로 했다.

그는 소매점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드 결제 시스템을 저렴한 수수료에 제공했다. 또 고객의 유형과 취향을 분석해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컨설팅도 함께 서비스했다.

프라이스는 잡지 엔트레프레너와의 인터뷰에서 사업을 시작한 배경에 대해 “나는 절대로 많은 돈을 벌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이(신용카드 결제대행) 업계가 고객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정말로 화가 났고, 단지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프라이스는 다른 회사와 달리 ‘정직, 투명성, 책임감’을 핵심 가치로 삼는 회사를 설립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가치들을 바탕으로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고객의 신뢰를 얻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사람을 돕고 경제를 재편할 수 있는 ‘가치 기반 기업’을 만드는 것. 청년 프라이스는 이러한 사명을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고, 2010년엔 그 공을 인정받아 미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올해의 젊은 기업가상’을 수상했다.

▶‘7만달러’ CEO=2015년 4월, 프라이스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 120명 전원의 최저 연봉을 3년 안에 7만달러(약 8000만원)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임직원 평균 연봉은 프라이스의 연봉 110만달러를 포함해 평균 4만8000달러였다. 직원들의 연봉을 무려 50%나 올리겠다는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더 놀라웠던 건 프라이스가 자신의 연봉을 90% 삭감해 이를 실현하겠다고 한 점이다. 자신이 받을 몫을 전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셈이다. 자수성가한 CEO였던 그가 회사 안팎의 모두를 놀라게 한 결정을 내린 것은 두 가지 일을 하면서도 오르는 집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친구와 “회사가 우리를 착취하고 있다”는 직원의 하소연을 듣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절망감에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친구도, 내 직원들도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됐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프라이스는 이 결정을 “도덕적 의무(moral imperative)”라고 지칭하며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저 연봉을 특별히 7만달러로 책정한 것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니엘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 관련 연구 결과를 참고한 결정이었다. 이 연구는 7만5000달러의 연봉을 받을 때까지만 행복감이 늘어나고, 그 이상이 되면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프라이스의 결정에 대한 반응은 압도적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5억건 이상의 언급(멘션)이 올라왔으며 관련 뉴스 영상은 NBC 뉴스에서 역대 최다 공유 횟수를 기록했다.

▶현대판 ‘로빈 후드’의 성공=프라이스의 새로운 시도는 미국 전역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동계를 비롯한 찬성론자들은 현대판 ‘로빈후드’라고 칭송한 반면, 반대론자들은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며 그래비티 페이먼츠가 곧 망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극우 성향의 백만장자 방송인 러시 림보는 프라이스의 발표 이틀 후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경영전문대학원(MBA)의 연구자료 감”이라고 조롱했다.

프라이스의 친형이자 공동창업자 루카스는 “회사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자신을 따르던 임원과 함께 회사를 나갔다. 이후 동생을 배임 혐의로 고소했으나 법원은 프라이스의 손을 들어줬다.

한 CEO의 결정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통상적 기업 경영 이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가 아니라 직원들의 웰빙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프라이스의 결정은 실제로 도박에 가까웠다. 연봉 인상이 효율성 제고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돈을 번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이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보다 신념을 따른 그는 같은 해 전 직원의 최저 연봉을 5만달러로 올린 데 이어 매년 1만달러씩 인상해 2017년 7만달러의 약속을 지켜냈다.

결과는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우선 직원들의 행복도가 바로 높아졌다. 집값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된 직원들은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겨 하루 평균 6시간의 통근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삶에 여유가 생긴 직원들 사이에 ‘베이비 붐’도 일었다. 아이를 출산하는 직원이 연봉 인상 전 연간 0~1명에서 20명으로 급증했다.

회사가 망할 것이란 비판론자들의 예상과 달리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연봉 인상 발표 직후 3만장이 넘는 입사지원서가 회사에 쇄도했으며 이직률은 19% 가량 감소했다. 당시 120명이던 직원은 현재 200명으로 늘었다.

고객도 1만3000명으로 늘어 2014년 38억달러였던 카드 결제 처리 규모가 지난해 102억달러(약 11조9700억원)까지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임직원 평균 연봉은 10만3000달러(약 1억2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이스는 “직원들은 행복도는 높아졌고, 이는 고객들의 행복으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2016년 7월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들은 10개월간 몰래 모은 돈으로 프라이스에게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깜짝 선물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시장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CEO’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프라이스는 최근 또 한 번 파격적 발표를 했다.

3년 전 인수한 회사를 지난달 24일 그래비티 페이먼츠 아이다호 보이시 지점으로 변경한 뒤 해당 직원들의 최저 연봉도 2024년까지 7만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프라이스식 ‘소득주도성장’은 다른 경영자들에게도 영감을 줘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켰다.

메건 드리스콜 파머로직리크루팅 CEO는 2016년 1월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3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로 인상했다.

앤드류 매코널 렌티드닷컴 공동창업자도 지난해 직원 최저 연봉을 3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로 올렸다.

조쉬 레드베터 레드베터 CEO는 자신의 연봉을 82% 삭감해 임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시장의 ‘교란자’, ‘게임 체인저’를 자처하는 프라이스의 도전은 그의 소망대로 기업의 경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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