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정비소 건물에 뷰티 체험관, 식물원 스타일 전시실.. 복합문화공간의 진화

박근희 기자 2019. 10. 26.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최근 새로 뜨는 복합문화공간들
최근 문 연 복합문화공간의 기본 공식엔 '휴식'이 있다. 책, 공연보다는 휴식에 좀 더 힘을 실었다. 지난 9월 서울 동교동에 개관한 '무신사 테라스'의 옥상정원 '파크'.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작년 말 문 연 서울 을지로 '아크앤북', 올 초 오픈한 성수동 '성수연방'이 복합문화공간 최신 버전인 줄 알고 있다면 오산. 최근 몇 개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속속 문 열고 있다. 책, 예술 작품, 카페가 한데 모여 있는 기본 공식이 깨진 지 오래. 특화된 아이템과 콘셉트, 공간 구성을 내세워 도시의 이색 놀이터로 주목받고 있다. 반나절의 힐링이 기다리는 도심의 '숨구멍'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찾았다.

일반 개방한 '정동1928 아트센터' '노들섬'

타박타박 정동길을 걸어가다 보면 90여 년 세월을 조용히 이고 온 옛 건물이 나온다. 지난 4일 개관한 정동1928아트센터. 근대 건축물 '구세군중앙회관' 자리에 새롭게 문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건립된 건물로 지난 2002년 서울기념물 제20호로 지정·보존돼 왔다. 유서 깊은 공간에서 전시, 공연, 콘퍼런스 등이 열린다.

개관 기념 '필의산수(筆意山水)―근대를 만나다'전이 한창이다. 본관 1층에 들어서면 멋스러운 샹들리에 뒤로 조선 후기 화가 석창 홍세섭(1832~1884)의 '10폭 병풍'이 맞는다. 새·동물을 소재로 한 영모화(翎毛畵)의 독창적 화풍을 정립한 화가답게 작품 속 새들이 요란스레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 옆 별관 전시실에선 겸재 정선부터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북산 김수철 등 조선 화가를 비롯해 이종우, 김환기, 장욱진 등 근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 70여 점이 한자리에 마주하고 있다. 일본·중국에 비해 저평가된 우리나라 문인화의 진정한 가치와 흐름을 재조명해볼 수 있어 미술계 안팎에서 화제다.

90여년 역사의 구세군중앙회관이 복합문화공간 '정동1928아트센터'로 탈바꿈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정동1928아트센터'의 본관 1층 '라운지'(위)와 휴게 공간.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본관 구세군역사박물관과 1층 부대 시설은 상설 개방한다. 프랑스 감성의 플라워숍 '리분', 핸드 드립커피와 천연 발효종 등으로 매일 만든 빵을 맛볼 수 있는 베이커리 카페 '헤이다', 사진관 '천연당'이 자리 잡았다. 현재 운영 준비 중이다. 카페 앞 복도를 따라가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코디언, 벨벳 의자 등이 놓인 '라운지'는 포토존. 안쪽엔 자개 테이블이 있는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다. 서가에 꽂힌 책은 자유롭게 꺼내 읽어도 된다.

운영을 담당하는 윤혜정(55) 실장은 "사진관 이름 천연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이었던 천연당에서 착안한 것"이라며 "추후 관람객들이 근대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필의산수 전시 관람료는 4000원. 별관 전시실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오후 7시, 본관은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7시.

지난달 28일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를 내세우며 개방한 노들섬도 한 달여 만에 한강에서 가장 핫한 놀이터로 등극했다. 공연, 마켓, 행사가 매주 열린다. 19일 '뉴트로(newtro·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를 주제로 한 'XZ 페스티벌'에 이어 27일엔 '고 신해철 5주기 추모 콘서트'가, 11월 1~3일엔 '브리즈 아트페어' 등이 기다린다. 1층 라이프스타일 매장 등에서도 플라워 클래스 등을 개별 진행한다. 야외 및 옥외 공간 상시 개방.

9월말 개장한 서울 '노들섬'. / 노들섬
서울 연남동 '다이브 인'의 다도·명상 공간.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트 스테이 갖춘 '다이브 인', 식물 주제 '식물관'

요즘 뜨는 '연남동 세모길'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복합문화공간 다이브 인. 세모 형태로 갈라진 세모길 골목 초입, 빌라를 개조한 건물 두 동을 '커뮤니티 아트 플랫폼'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었다. 입주 작가 작업실, 갤러리 라운지, 아트숍, 스테이 등으로 꾸몄다. 2~3층은 전시를 관람하고 작가들의 손길, 아이디어로 꾸민 가구와 소품이 있는 공간에서 숙박할 수 있는 '아트 스테이(art stay)'가 가능하다. 지난 5월에 문 연 후 조용히 알려지면서 3개월 만에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의 '수퍼 호스트'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다. 객실 2개 중 3층 객실에선 연남동의 옛 골목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침대 머리맡으로 난 큼직한 창밖으로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가을의 운치를 더한다. 2층 객실은 아늑한 거실을 품고 있다. 2~3층 모두 1~2인이 숙박하기에 적합한 규모다.

건물을 기준으로 옆집이 와인바, 앞집이 커피집, 뒷집이 요릿집. '풍류(風流) 삼각 지대'에 자리 잡아 낭만을 즐기기에 최적화돼 있다. 골목만 나서면 '연트럴파크(연남동의 센트럴파크)'란 별칭이 붙은 경의선숲길이 이어진다. 전시 공간인 '갤러리 라운지'에선 신진 작가들의 개성있는 전시를, 아트숍에선 전시 연계 기념품을 선보인다. 다락방처럼 꾸민 공간과 루프톱 공간에선 명상과 다도(茶道), 요가 수업을 진행한다. 정창윤 다이브 인 대표('컨셉이 있는 공간' 저자)는 "단순한 숙박 개념에서 벗어나 하룻밤 묵으며 예술을 경험하고 영감을 얻어가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꾸몄다"고 했다. 숙박 요금은 2인 기준 1박 평일 14만원부터 주말 18만원까지. 전시와 아트숍은 무료 관람. 요가와 다도 체험은 별도 문의. 전시실 및 아트숍, 팝업 쇼룸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후 1~9시 운영.

지난 4월 강남구 수서동 대모산 자락엔 전시실과 대형 유리 온실을 갖춘 수상한 식물원(?)이 문을 열었다. 식물을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 식물관PH. 식물 인테리어가 유행하면서 요즘 어딜 가나 식물을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선 야생 풀 한 포기도 예사롭지 않은 자태로 놓여 있다. 원예가 박기철 '식물의 취향' 대표가 야생 초목을 작품처럼 매만져 '전시'하고 있다.

식물원처럼 꾸민 서울 수서동 '식물관PH'. / 식물관PH

2년에 걸쳐 기획하고 완성했다는 4층 규모 건물도 특이하다. 2018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경계 없는 작업실'의 문주호 건축가 작품. 식물관(植物館)이라는 이름처럼 식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집 같다. 전체 'ㄱ'자 모양 구조에 복층형의 1~2층은 관엽관, 3층은 전시실, 4층은 카페테리아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 큰 창을 내어 대모산 자락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걸어 뒀다. 사시사철 대모산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투명 유리로 깔끔하게 꾸민 관엽관 내부는 식물원 같기도, 식물 관찰 실험실 같기도 하다. 현신혜(38) 식물관PH 팀장은 "문화의 개념이 넓어진 만큼 복합문화공간 개념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식물을 주제로 한 휴식 문화 공간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싶다"고 했다.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주제의 전시를 한다. 개관 후 야생 수목을 주제로 한 사진작가 권도연의 사진전을 비롯해 사진작가 장우철과 리소 프린트를 다루는 디자인 스튜디오'코우너스' 협업 사진전을 열었다. 12월 15일까지는 한정용 서울대 도예 전공 교수와 학부생들의 토분(土盆) 전시가 이어진다. 입장료는 음료 1잔 포함 1인 1만원.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1시~오후 8시 운영.

그때그때 변신하는 '카멜레존' 유행

'카멜레존(카멜레온과 존의 합성어·상황에 맞춰 용도를 변신하는 현대의 소비 공간)'처럼 다용도로 활용하는 복합문화공간도 늘었다. 지난 9월 동교동 'AK&홍대'(애경타워) 꼭대기 17층에 문 연 무신사 테라스.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에 입점한 제품을 체험하면서 전시, 음악 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회색과 흰색으로 통일한 총 2644㎡(800평)의 넓은 공간은 브랜드 행사나 프로그램 진행 여부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언뜻 썰렁한 느낌마저 들지만 행사가 있는 날엔 신나는 '홍대 클럽'처럼 변신하기도, 피트니스·요가 센터처럼 변신하기도 한다. 평상시 브랜드 쇼케이스 공간인 '라운지'는 휴식 공간으로 활용한다. 쿠션 형태의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어 누구나 편히 쉬었다가 갈 수 있다.

서울 동교동 '무신사 테라스'의 '라운지'는 행사가 없을 땐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라운지 옆은 '키친'이다. 카페 AWK(에이더블유케이)가 입점해 전문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준다. '사진발 좋다'고 소문나면서 말차라테를 찾는 이들도 많다. 김유나 무신사 마케팅 대리는 "키친은 때에 따라 케이터링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숍'에선 무신사와 인기 브랜드가 협업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실내 공간은 행사 성격에 따라 다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원형 가벽을 둘러 구분해 놓았다. 무신사 테라스에서 가장 '핫'한 공간은 '파크'라 불리는 옥상 정원. 한 바퀴를 돌며 서울 도심을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개관 한 달 만에 '홍대 핫플레이스'가 됐다. 맑은 날뿐 아니라 노을 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해 질 녘 발길 하는 이가 많다. 지난달 '안다르 비어 요가 클래스'를 진행한 데 이어 옥상에서도 이따금 야외 관련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AK&홍대' 1층에서 무신사 테라스로 '직행'하고 싶다면 전용 엘리베이터를 탈 것. 행사가 없을 경우 오전 11시~오후 7시 열린 공간으로 운영하며 행사가 있을 경우 운영 시간은 변동될 수 있다. 주차 가능.

개관한 지 이제 보름 지난 성수동 아모레 성수는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뷰티 체험 라운지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자동차 정비소였던 건물을 개조했다. 높낮이가 다른 바닥을 살리고, 자동차를 들어 올렸던 인양 장치 등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ㄷ'자 형태의 건물 중앙은 정원인 '성수가든'으로 꾸몄다. 화려한 색감의 꽃보다는 비비추, 앵초, 고사리 같은 풀꽃들이 멋스럽게 자리 잡았다.

서울 성수동 '아모레 성수'의 모든 공간에선 '성수가든'이 보인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달 서울 성수동에 개관한 '아모레 성수' 2층 카페 '오설록'의 피크닉 바구니와 '아모레 성수'의 뷰티 체험관.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열린 공간이지만 '이용법'이 있다. 안내에 따라 태블릿PC로 '웹 체크인'을 하면 제품 샘플 교환권과 음료 할인권 등이 모바일로 전송된다. 입장 후 구역별로 총 30개의 브랜드를 만나고 체험해볼 수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메이크업을 해주기도 한다. 화장품에 관심 없어도 아쉬울 것 없다. 전통이 오래된 브랜드인 만큼 공간마다 '아모레 화장품 아줌마' 유니폼, 추억의 아모레 간판, 옛날 엄마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화장품 등을 박물관처럼 전시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층 카페 '오설록'에선 이곳만의 대표 음료도 선보인다. '피크닉 바구니'를 신청하면 주문한 커피, 음료와 조각 케이크 등을 나무 바구니에 담아준다. 루프톱이나 1층에서 소풍 나온 듯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나오는 길 플라워숍에선 수수한 색감을 자랑하는 꽃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 가능하다. 박미향 아모레퍼시픽 홍보과장은 "추후 메이크업·향·플라워 클래스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 30분 운영.

전북 완주의 '산속등대'… 공장 개조해 문화 놀이터·공연장으로

전국 곳곳의 新복합문화공간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새 복합문화공간들이 '출생 신고'를 하고 있다. 일상에서 문화를 즐기려는 이들이 늘어난 데다 도시 재생 사업이 더해지면서 수가 부쩍 늘었다.

지난 16일 대구 고성동 이마트 칠성점 맞은편에 문 연 투가든은 공장과 창고가 있던 총 1900㎡(약 600평) 공간을 활용했다. 오래된 구조물을 살리고 그 안에 창고형 와인셀러를 갖춘 편의점 '이마트24', 베이커리 카페 '나인블럭', 스테이크 하우스 '선서인더가든', 플라워숍 '소화초', 책 공간 '문학동네' , 체험놀이공간 '레고 플레이 스토어' 등이 자리 잡았다. 책으로 터널을 만든 문학동네의 '북터널'이나 아담한 정원은 주말이면 쇼핑 겸 나들이하러 나오는 사람으로 붐빈다. 입점 매장별로 북콘서트나 플라워 클래스 등을 열 계획이란다. 오전 10시~자정 운영.

폐종이 공장을 개조한 전북 완주 소양면의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 / 산속등대

전북 완주 소양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도 수십 년간 방치됐던 폐종이 공장을 새롭게 꾸며 5월 개관했다. 2만6000㎡(약 8000평) 폐공장엔 미술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화 놀이터 '어뮤즈월드', 공연장, 카페 '슨슨카페'가 모여 있다. 연기를 내뿜던 굴뚝은 빨간 등대처럼 변신해 이곳의 상징물 '산속 등대'가 됐다. 미술관에서는 개관 초대전 심은솔 작가의 '무의식의 드로잉'전을 시작으로 '리카르도 마트라카스 초대전' 등을 열었다. 슨슨카페에선 직접 로스팅해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미술관 입장료는 성인 음료 1잔 포함 1만원, 중·고등학생 3000원, 36개월~초등학생 2000원. 동절기 오전 10시~오후 8시 운영.

수준 높은 문화 행사, 전시를 선보이는 곳도 늘었다. 충남 아산 신정호수 부근 모나무르는 3만3000㎡(약 1만평)의 공간에 갤러리, 레스토랑, 베이커리 카페 '더 그린', 웨딩·파티 공간이 들어섰다. 인공 호수처럼 꾸민 수경 시설 '워터가든' 수변 무대에선 이따금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산책로에선 조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만 총 4곳. 올해까지는 모두 무료 관람 가능하다. 갤러리의 경우 오전 10시~오후 6시 운영.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