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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심리적 압박의 고통을 과소평가한다"

정은주 입력 2019.10.26. 09:16 수정 2019.10.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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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법심리학자 댄 사이먼 교수
억울한 면죄자 미국만 2500명
DNA로 오판 밝혀질 때까지
허위자백에 미 사법당국 부정적
"고문도 결국은 정신적 고통"
"결백하면 허위자백 않는다는
믿음에 변화가 필요하다"
허위자백 전문가인 미국의 법심리학자 댄 사이먼 교수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30년간 2500명의 면죄자라면 소수니까 미국의 형사 사법 구조는 건실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 결백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유죄 오판이 발생해야 하고, 나중에 진범 등이 나타나야 한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이 2500명이나 된다는 의미다.”

26일 ‘피의자 수사면담과 허위자백’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2019년 한국법심리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초청돼 처음 방한한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로스쿨 댄 사이먼 교수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한겨레>와 만나 “허위자백과 유죄 오판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디엔에이(DNA) 검사가 형사재판에 활용되면서 1989년부터 ‘면죄’를 받은 사건이 나타나게 됐다. 범행 현장 증거물에서 채취한 디엔에이를 검사해보니 유죄 판결을 받은 피의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져 유죄 판결을 취소하고 석방하는 구제 절차(면죄)를 밟은 것이다. 디엔에이 증거분석 등의 방법으로 2019년 10월2일 현재 미국에서 면죄받은 피의자(1989년부터 집계)는 2500명에 이른다. 이들의 평균 복역 기간은 8.8년이며 살인죄는 38%를 차지한다.

피의자에겐 때론 최선의 방법

―고문 등 폭력이 없다면 허위자백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통념이 매우 강하다.

“우리는 심리적 압박이 주는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도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 끼친 영향이 크다. 가족 등 주변의 도움이 차단된 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조사실에서 고립과 절망감을 느끼다가 육체적 고통이 더해지니까 허위자백을 선택하는 것이다. 수사관이 압도하는 힘의 불균형에서 순응적으로 자백하는 심리적 수사 기법의 허위자백과 맥락이 비슷하다.”

사이먼 교수는 “한국에서는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살하는 사례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니면 감옥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수사기관의 신문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그런 심리적 압박 상황에서 허위자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허위자백을 하게 되면 수년, 수십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인가?

“피의자가 자백할 때는 이성이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허기지고, 피곤하고, 불안하고, 낙담한 상태에서 수사관의 요구에 따라 현재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끝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하기 일쑤다. 자백하는 것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고 수사관이 끊임없이 주입하고, 자백했을 때 실제적으로 처해질 형벌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심리적 수사 기법이 애초에 그렇게 설계돼 있다.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자멸 행위가 뻔한데도 왜 자백하겠는가. 같은 원리다.”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자백하면 실제로 형량이 줄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결백한 사람은 다르지 않나?

“허위자백을 한 많은 피의자들이 단지 조사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자백한다는 서명을 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나중에 증거들이 더 발견되면 결백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신문이 끝나면 바로 자백을 철회하는데, 문제는 그들이 허위자백을 했다는 것을 검사, 판사 등 형사 사법 체계 관련자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9년 디엔에이 검사로 유죄 오판이 밝혀질 때까지 허위자백이나 오판에 대해 미국 사법당국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허위자백을 이끄는 심리적 수사 기법으로는 ‘리드신문기법’이 첫손에 꼽힌다. 거짓말탐지기 검사관으로 일하던 존 리드가 개발해 1974년부터 미국에서 널리 사용된 이 기법은 얼굴 표정, 몸짓, 신체적 반응 등 비언어적 단서를 관찰해 거짓말하는 피의자를 찾아내도록 한다.

‘리드신문기법’을 훈련받은 수사관들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정확히 구분하는 비율이 85%라고 주장하지만, 광범위한 연구를 해보니 거짓말을 구별하는 비율은 평균 54%에 그쳤다. 동전 던지기의 확률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인 셈이다. 사이먼 교수는 “리드기법에서 거짓말의 단서라고 제시하는 것은 대부분 불안감에서 나오는 신체적 반응이다. 무고한 사람은 경찰 수사에서 차분한 반면 죄지은 사람은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실험을 해보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인간은 거짓말을 탐지하는 것보다 거짓말하는 데 더 유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거짓말한다고 믿는 피의자를 수사관이 강하게 신문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한 실험연구에서 리드기법을 이용하니까 실제 죄를 지은 사람의 자백 확률(2배)은 물론 결백한 사람의 자백 확률(3배)도 같이 커졌다. 사이먼 교수는 “피의자가 유죄가 상당하다고 확신될 때만 리드기법을 이용하라고 권고돼 있다. 그들 스스로도 허위자백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거짓말을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과신하는 수사관이 집요하게 피의자를 밀어붙이면 허위자백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강압적 신문 방법 엄격히 규제해야”

―허위자백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고한 사람은 허위자백을 하지 않는다는 일반적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허위자백이 연구돼왔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구체적인 개선안으로는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리드기법보다는 범죄 정보를 얻는 데 집중하는 신문 절차를 사용해야 한다. 법원도 피의자의 의지를 꺾는 강압적 신문 방법 사용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법심리학자인 사이먼 교수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로스쿨과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을 전공한 법률가이기도 하다. 그는 2012년에 <의심: 형사사법절차의 심리학>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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