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조국 사퇴에 환호하다 며칠만에 '술렁'..다시 리더십 시험대

정성호 2019. 10. 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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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넘게 '조국 퇴진'을 외쳤던 자유한국당. 막상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사퇴하자, 채 열흘도 안 돼 한국당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자중지란에 가까워 보입니다.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 의원 공천 가산점' 논란에 이어 '동일지역 3선 이상 공천 배제설' 등이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 '조국 사퇴 유공 표창장' 파문…당원들도 분노!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22일 나경원 원내대표가 공개석상에서 조국 인사청문대책 태스크포스에 속한 이른바 '조국 사퇴 유공 의원' 등에게 표창장과 5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준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셉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조국 인사청문회대책TF 유공 의원과 당직자들을 표창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9.10.22


한국당 의원들은 '죽을 맛'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수도권 뿐 아니라 전통적 강세 지역인 TK에서까지 당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자축 파티할 때냐', '한국당이 잘한 게 뭐가 있느냐', '교만하다' '정신 못 차렸다'는 지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24일 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선 이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몇몇 최고위원들이 이 행사를 추진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며 거세게 몰아붙인 겁니다.

■ '패스트트랙 공천 가산점'...말 바꾼 황교안 대표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달이 난 다음 날인 25일 오전, 황교안 대표는 기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 의원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방안에 대해 묻자, 황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습니다.

"가산점에 관해서 저는 생각해 본 바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공천 기준에 대해선 협의 중인 단계라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하루 전인 24일 황 대표의 말은 정반대였습니다.

"당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 상응하는 평가를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당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공천 심사에)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하루 사이에 '당 헌신에 상응하도록 반드시 평가에 반영'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을 바꾼 겁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가 2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9.10.25


■ "(나경원의) 사실상 해당 행위"

사실, 이 말을 처음 꺼낸 건 나 원내대표였습니다. 나흘 전이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수사 대상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줘야 한다고 황 대표에게 건의했다"고 한 겁니다. 패스트트랙 수사에 대한 의원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야 했던 나 원내대표의 이 말에, 황 대표마저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불법 혐의를 받는 이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준다? 공당에서 할 일이 아니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내 여론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원내대표의 월권이자, '원내대표가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10.25


황 대표는 공천에 대해선 그동안 말을 아껴 왔습니다. 총선 승리는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활이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신중했습니다. 공천 관련 질문엔 딱 3가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이기는 공천, 공정한 공천, 경제 살리기 공천'을 하겠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그랬던 황 대표가 유독 '패스트트랙 수사 의원 공천 가산점' 이야기엔 긍정적 입장을 밝히자, 의외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황 대표가 발언을 번복한 이유는 뭘까요? 우선은 '표창장 파문'에 이어 '공천 가산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황 대표도 공천 관련해선 원론적 이야기만 했는데,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회자되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뜻밖의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대표 입장에선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사실상 해당 행위가 아니냐는 생각도 한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 역시 가산점 제도 자체가 없다면서, 황 대표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말 바꾸기 한 것 아니냐'는 물음엔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당내에선 '황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한 의원은 "귀를 의심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황 대표가 국민의 따가운 질타 때문에 말을 바꿨다고 설명하면 모르겠는데, 본인 입장이 아닌 것처럼 뒤집어버렸다"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하니 우스운 거죠"라고 설명했습니다.

■ 동일 지역 3선 공천 배제?…또 다른 파문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의원의 공천에 대해선 좀 검토해 봐야 한다.'

22일 한 '고위 관계자'가 했다는 이 말도 한국당을 달궜습니다. '한국당, 동일 지역 3선 이상 공천 배제 검토'라는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됐는데, 발화자로 지목된 '고위 관계자'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문은 컸습니다. 워낙 비중 있는 인물인 데다, 구체적으로 부산·경남·울산(PK)와 대구·경북(TK), 서울 강남권 등 지역을 거론하면서 3선 이상 의원의 교체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물갈이론'은 선거철이 되면 흔히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몇 명이나 물갈이를 했는지'가 특정 정당의 공천 혁신의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신상진 의원도 "17부터 19대 국회까지 현역 의원 교체 비율이 30~40%는 됐다"며 "그것보다는 더 (교체)돼야 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에게 공천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습니다. 교체 대상으로 몰린 당사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특히, 경선의 잠재적 경쟁자들이 지역구에서 '물갈이론'을 자꾸 거론하고 퍼뜨리고 다니는 것도 이들에겐 부담입니다.

당내에선 '원론적 이야기였을 것'이라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기류, 또 아무런 권한도 없는 '고위 관계자'가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평가가 함께 나옵니다. 물론 졸지에 '공천 배제 대상'이 된 3선 의원들은 불쾌감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한 3선 의원은 "국회에 다선도 있어야 해. 정치는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숨 걸고 하는 건데, 말초신경 자극하는 얘기를 자꾸 하면 안 된다"면서 "경선을 통해 물갈이가 돼야지. 인위적 물갈이는 웃기는 소리"라고 밝혔습니다.

■ '총선 공천', '새 원내대표 선출' 놓고 당내 갈등

한국당이 덜컹대는 건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총선 공천입니다. 민주당이 일찌감치 '공천 규정'을 정한 데 반해, 한국당은 아직 그 윤곽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공천'의 '공'자만 나오면 각종 주장과 억측이 난무합니다. '패스트트랙 수사 의원 공천 가산점' 논란이나 '동일지역 3선 이상 공천 배제설'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에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가능성을 내비쳤던 윤상직·정종섭·김정훈 의원 등이 재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철희·표창원 등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는 민주당과는 분명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2019.10.24


또 다른 하나는 12월 새 원내대표 선출 여부입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 종료가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안갯속입니다. 몇몇 원내대표 경선 도전자들의 이름만 거론될 뿐, 아직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물밑에 '친박(근혜)'과 '비박' 양 계파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이라 그 누구도 원내대표 당선을 쉬 담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 총선을 앞두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나 원내대표를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일부의 현실론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 '패스트트랙 수사'… "개별 출석해 조사받겠다"

여기에 변수도 있습니다. 바로 패스트트랙 수사입니다. 검찰은 한국당이 주장하는 '불법 사보임'에 대한 판단 없이 '폭력 사태'에만 수사를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 결과로 말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11월 안에 사건을 모두 처리한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당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당론인 '소환 거부 방침'을 어기고 개별 출석해 대응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당만 쳐다보다 항변할 기회도 없이 자칫 재판에 넘겨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의원 개인 몫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에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조국 정국'을 거치며 지지율이 상승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내 혁신'은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 상황입니다. 언제든 또 다른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엿보입니다. 한국당은 다시 소란스럽습니다. 당 리더십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정성호 기자 (andrea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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