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이겨도 배상·사과 못받고..강제동원 이춘면 할머니 별세
“지난 1월 재판에서 승소하고 기자회견 할 때 반성하지 않는 일본 기업이나 아베 총리에 대해 크게 화를 내셨어요. 몸이 많이 안 좋아서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면(88) 할머니가 지난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일본 전범 기업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이 할머니는 결국 일본 기업과 정부 어디에서도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소송을 도운 김진영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은 이 할머니에 대해 위와 같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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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승소에도 ‘분노’…사건은 대법 계류 중
이 할머니는 13살이던 1944년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면 상급 학교에 진학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후지코시 측 거짓말에 속아 일본으로 떠났다. 설명 책자에도 ‘일본 기업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도야마시에 있는 후지코시 공장에서의 삶은 약속과는 전혀 달랐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12시간씩 철을 깎거나 자르는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임금은커녕 다쳐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이듬해인 1945년 7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할머니의 예상대로 후지코시가 불복하면서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가 현재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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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상황 자세히 알고 계셨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서도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한 소식을 꾸준히 접했다고 한다. 그는 “양쪽 정부가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며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당시에 국민학교도 나오고 공부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들이다. 뉴스나 신문을 꾸준히 보시며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자세히 알고 계셨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는 생전 슬하에 아들 2명, 딸 2명을 뒀다. 소송은 유족이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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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할머니들도 대부분 건강 악화"
김 사무국장은 “23명 할머니 중 자택에서 일상 생활이 가능하신 분은 2명뿐”이라며 “나머지 분들은 위독하시거나 요양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편 신일철주금ㆍ미쓰비시중공업 관련해 지난해 대법원에서는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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