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입장 훼손 안 되게".. 강제동원 문제 '구상권 카드' 부상

김청중 입력 2019. 10. 28. 19:13 수정 2019. 10. 2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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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사관 고위관계자 '관계개선 해법' 언급 주목 / 韓정부가 피해자에 배상금 先지급 후 / 日기업 상대로 구상권 행사하는 방식 / 일제강점 불법성 인정 여부 모호해져 / 일본측 반발 가능성 상대적으로 낮아 / 李총리 "日, 약간의 변화 기미 엿보여"
주일 한국대사관 고위관계자는 28일 한·일의 강제동원 피해 문제 해결방안과 관련해 “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훼손, 부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지혜를 짜서 마련할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 입장과 한·일 입장을 존중하는 해결 방안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고위관계자는 이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부터 (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에 대한) 입장차가 있었다”며 “한국이 옳으니 일본이 옳으니, 한국의 해석이 옳으니 일본의 해석이 옳으니, 그런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낙연) 총리가 양국이 지혜를 짜내서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하는 데 방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2∼24일 방일기간 일본 정부 고위층과 공식·비공식으로 만나 이런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
한일기본조약 협상 당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불법이라는 우리 입장과 합법이라는 일본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영어본에 ‘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을 넣은 뒤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이 체결한 조약 및 협정에 대해 한국어본에는 ‘이미 무효’(일제강점 불법 의미)라고 적시하고, 일본어본에서는 ‘이제 무효’(일제강점 합법 의미)라고 해석함으로써 각자의 주장을 하도록 했다. 협상 난관을 돌파한 묘수였으나 이후 이 잘못 끼운 단추 탓에 한·일 관계의 국제법적 기반은 뒤틀리고 말았다. 
고위관계자 언급에 따라 구상권 방식의 해결방안이 초점이 될 전망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과 관련해선 정부가 대외에 공개한 △1+1(한국 기업+ 일본 기업)안 외에도 △구상권 방안 △선(先) 일본기업·후(後) 한국 측 해결 방안 등 여러 가지 안이 한·일 당국 사이에 타진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1+1안은 한·일 기업이 재단을 설립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안이다. 선 일본기업·후 한국 측 해결안은 현재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3건에 대해 일본 기업이 먼저 배상금을 지급하면 한국 정부가 보전해 준다는 것이다. 대법 확정 3건에 외에 1, 2심에 계류 중인 13건을 포함한 나머지 피해자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설립해 해결한다는 방안이다.

그런데 1+1안과 선 일본기업·후 한국 측 해결안은 모두 배상금 성격의 일본 기업 자금이 투입됨으로써 일본 측이 일제강점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법 판결이 일제강점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배상금 성격의 돈을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구상권 방안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뒤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요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 정부의 자금이 나간다는 측면에서 일제강점의 불법성 인정 여부가 모호해진다. 한·일 양국 정부가 기존 주장을 각자 전개할 수 있는 셈이다. 또 특별법 입법이나 일본 측과의 협의 과정도 필요해 실제 구상권 행사가 선언적 수준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다른 안에 비해 일본 측의 반발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다만 이런 안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추진될 경우 2015년 12·28 위안부문제 합의와 같은 거센 역풍에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도통신은 이와 관련해  일본 측 관계자가 한국 정부와 기업이 경제협력 명목의 경제기금을 창설하고 일본 기업이 참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이 안의 핵심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성격이 아니라 한·일이 상호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자금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 같은 보도를 부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간 한국과 일본 당국 간 논의 과정에서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방안”이라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한·일 정부는 30일 대법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1주년과 다음 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돌파구 마련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전날(27일) 한 패널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 어떻게든 타협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간 李총리 28일 재임 881일을 기록하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국무총리가 된 이낙연 총리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참석해 국무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 총리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에 변화의 기미가 있다고 밝혔다. 허정호 선임기자
이 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지난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회담과 관련한 질의에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도 있고 약간의 변화 기미가 엿보이는 것도 있었다”며 “변화 기미는 더 소중하게 관리해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변하지 않은 것은 양국 간 입장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을 테니 그것은 지혜를 짜내가면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이귀전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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