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표 대입개혁' 후폭풍.. "공정" 외치며 주입식교육 회귀 [뉴스분석]

이천종 2019. 10. 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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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8학군 부활' 전망에 대치동 집값 벌써 '들썩' / '수능=공정?' 이견 많아 / "사교육 많이 받을수록 고득점" / 서울대 정시 입학생 4명 중 1명 / 강남3구·양천구 지역 출신 차지 / 교육계 진보·보수 모두 반기 / "4차 산업혁명 미래교육서 퇴행" / 69개 시민단체 靑 앞서 반대 회견 / 교육부·국가교육회의 '패싱' 논란 / '학종=불공정?' 글쎄.. / 본지 대학 입학 담당자 17명 설문 / 82% "학종 탓 격차 심화, 동의 못해" / 76% "평가항목서 비교과 폐지 반대"
“정시(수능 위주 전형)가 능사는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입시 당사자들과 학부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문재인 대통령, 25일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 ‘금수저·깜깜이’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둘러싼 논란은 서울 주요 대학 정시 확대와 학종의 투명성 강화, 고교서열화 해소로 큰 가닥이 잡혔다. 정부가 드라마(SKY캐슬)와 현실(조국 사태)이 맞물리면서 대중의 분노가 비등점을 넘자 미룬 방학숙제를 몰아 처리하듯 속도전에 나서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드라이브의 원동력은 우호적인 여론이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정시 비율 확대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8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CBS 의뢰, 2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1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4.4%p)에 따르면 수능 성적을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 전형 확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3.3%였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2.3%였고 ‘모름·무응답’은 14.4%였다.

하지만 대통령발 입시 개혁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우선 여권의 우군인 진보 교육계가 강하게 반발하며 세를 결집하고 있다.

전교조 등 진보 성향 교육단체들이 정부에 대학입시 정시모집 확대 방침을 철회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전교조와 좋은교사운동,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69개 교육단체는 이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를 확대하면 주입·문제풀이식 수업을 하던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서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정시 확대 방침을 철회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정시가 다른 전형보다 사교육이나 부모의 사회·경제 지위가 영향을 많이 주는 전형”이라며 “정부는 대입제도 개편에 매몰돼 있을 게 아니라 교육을 통해 특권이 대물림되는 현상을 해소할 진정한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교육계도 즉흥적인 의사결정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문 대통령과 교육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산 학종 개선이 돌연 정시 확대로 기조가 전환하면서 소위 ‘강남 8학군’ 학생들에 유리해져 지역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부동산 가격이 벌써 들썩이고 주식 시장에서는 수능 사교육 업체가 뜨고 있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입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교육 당국이 올 한 해 오락가락하며 보여준 ‘교육부 패싱’ 논란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확대 속도전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교육계다. 문 대통령의 대입개편 언급에 이어 교육부가 서울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정시확대를 추진하자 교육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진보 교육계, 정시확대 반대로 결집… ‘강남 8학군’ 부활 우려

28일 오후 청와대 앞 공동기자회견에는 전교조·교사노동조합연맹·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69개 교육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지난해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때 23개 단체가 모인 것을 감안하면 결집력이 세다. 진보 교육감이 많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정시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과 협의회 대입제도개선연구단 단장인 박종훈 경남교육감 명의로 지난 23일 낸 성명에서 “정시확대는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여기에 보수적인 한국교총도 “차기 정권이 결정할 사안을 내년 총선용으로 밀어붙일 경우, 정권이 바뀌면 또 뒤집히는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시확대와 자사고·외고 폐지 소식에 서울 강남 아파트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 인근 지역 아파트의 호가가 1억원가량 상승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못지않게 수능도 사교육 시장에 돈을 쓸 수 있는 ‘금수저’에게 유리한 전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능 1,2등급 비율은 N수생이 압도적인데, 재수를 하려면 연간 최소 30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실제로 수능 점수 위주로 대학에 입학하는 정시 전형은 부모 소득이 높고,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유리하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입제도개선연구단에 따르면 2016~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 입학생 중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구 학생이 24.5%에 달했다. 소득 5분위(상위 20%) 부모의 자녀는 수능 1,2등급 비율이 11.0%로, 소득 1분위(하위 20%) 자녀의 2.3%보다 5배 정도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교육부 ‘패싱’ 논란… 거꾸로 가는 미래교육

문 대통령이 선봉에 선 입시 개혁 추진 과정에서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 ‘패싱’ 논란을 낳았다. 교육부는 문 대통령의 지시 이전까지는 정시확대에 선을 긋다가 부랴부랴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해 대입 공론화과정을 이끈 국가교육회의와도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 지난 23일 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육콘퍼런스 개막식에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미래교육체제 예시를 들면서 중·장기 대입개편안(대입자격고사, 논술·서술형 수능)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논란을 우려한 듯 돌연 생략했다. 여기에 정시확대로 인해 학력고사와 수능 때처럼 5지선다형 찍기 시험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진 점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준비해온 미래교육을 거꾸로 되돌리는 퇴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이로 인해 벌써 대학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학종=불공정’ 규정에 반발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세계일보가 전국 대학입학처 관계자 1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2.3%(14명)가 학종 축소, 정시확대에 반대(‘전혀 동의하지 않음’ 또는 ‘동의하지 않음’)했다. 교육 당국이 학종 공정성 제고 방안으로 내세운 학생부 비교과영역 및 자기소개서 폐지에는 76.4%(13명)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소위 ‘자동봉진’(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과 자소서가 사라지면 학생의 소질을 다각적으로 평가하는 학종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의견에는 76.4%(13명)가 찬성(‘매우 동의’ 또는 ‘동의’) 입장을 밝혔다. 대학 측의 ‘깜깜이 평가’로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오명을 썼다는 교육계 일각의 주장에도 반대가 주를 이뤘다. 76.4%(13명)가 ‘학종=깜깜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학종이 결과적으로 계층 간 격차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에 82.4%(14명)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천종·이동수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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