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명상이 장수에도 도움이 될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입력 2019. 10. 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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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제공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빅데이터 시대에 더 와닿는 표현 아닐까. 데이터 더미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과학자의 성공 여부를 가르기 때문이다. 학술지 ‘네이처’ 10월 17일자에는 이 일을 기막히게 해낸 과학자들의 놀라운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유전학과 브루스 양크너 교수팀은 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 가운데 수명과 관련된 종류는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치매 같은 인지 장애 없이 사망한 노인들의 뇌 전두엽의 전사체(발현된 유전자 전체) 데이터를 나잇대별로 살펴봤다(사망 직후 시료를 얻어 분석했다). 

평균 수명이 85세 이상인 장수 그룹과 80세 이하인 단명 그룹(노인 기준)으로 나눈 뒤 비교한 결과 신경 활동과 시냅스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에서 뚜렷한 차이가 보였다. 장수 그룹에서 이들 유전자의 발현량이 현저히 낮았다. 반면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량은 더 높았다. 면역력이 강해서 장수했다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신경계의 전반적인 활성이 떨어진 게 오히려 장수의 비결이라는 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지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한 노인의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 장수한 사람들에서 신경 활동을 억제하는 REST 단백질 수치가 높았다. 왼쪽 위는 71세, 아래는 101세에 사망한 사람의 전전두피질 이미지로 녹색 점이 표지된 REST 단백질이다. 오른쪽은 70~80세 사망 그룹과 100세 이상 사망 그룹의 평균 수치를 나타낸 그래프다. 네이처 제공

흥분성 뉴런만 억제

사실 양크너 교수는 치매 분야의 대가로 지난 2014년 ‘네이처’에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규명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노화에 따라 뇌의 조직에 유해한 자극이 늘어나면 우리 몸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REST(레스트)라는 단백질을 늘려 신경계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인 사람들의 뉴런(신경세포)에는 REST 단백질의 수치가 낮았다. 흥미롭게도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신경 활성이 오히려 높다. 

연구자들은 수명에 따른 신경 활성 차이가 REST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알아봤다. 그 결과 장수 그룹의 뇌세포의 REST 수치가 단명 그룹보다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REST 단백질은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로, REST 수치가 높을수록 신경 활동과 시냅스 기능에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이 더 많이 억제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정상 생쥐와 REST의 유전자(Rest로 표기)가 고장난 생쥐의 뇌 활동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후자의 신경 활동이 훨씬 더 크다. REST가 없어 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특이한 사실은 흥분성 뉴런만이 REST의 영향을 받고 억제성 뉴런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흥분성 뉴런은 신경 신호를 증폭시키고 억제성 뉴런은 신경 신호를 약화시킨다. REST는 흥분성 뉴런을 억제해 전반적인 신경 활동을 줄이는 것이다.

결국 Rest는 소위 ‘장수 유전자’의 하나인 셈이다. 실제 100세가 넘어 사망한 사람들의 전두엽 REST 수치는 70대에 사망한 사람들의 수치보다 두 배 가까이 됐다. 그렇다면 REST와 신경 활동성이 어떻게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사람과 가까운 생쥐 대신 예쁜꼬마선충을 동물 모델로 써서 그 답을 찾기로 했다. 신경계의 구조가 단순해 분석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도한 신경 활동이 DAF-16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이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요 경로인 것으로 밝혀졌다. 포유류에서는 FOXO(폭소)1이 선충의 DAF-16에 해당한다. 

연구자들은 장수 그룹과 단명 그룹의 FOXO1 수치를 알아봤고 전자에서 FOXO1 수치가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REST는 신경 활동을 억제하고 신경 활동은 FOXO1을 억제하므로 결국 REST가 FOXO1의 발현을 촉진하는 셈이다. 실제 Rest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의 경우 노년기(18개월)의 FOXO1 수치가 정상 생쥐의 3분의 1로 밝혀졌다.

FOXO1 역시 전사인자로 대사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명을 늘리는 대표적인 방법인 칼로리 제한 섭식을 한 생쥐에서 FOXO1 수치가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Rest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아래)는 정상 생쥐(위)에 비해 뇌의 전반적인 신경 활동이 더 활발하다. REST가 있어야 신경 활동이 통제를 받는다는 말이다. 빨간색으로 갈수록 활동이 크고 파란색으로 갈수록 작다. 네이처 제공

항경련제가 수명 늘려

신경 활성이 낮아야 오래 산다면 이런 작용을 하는 약물인 항경련제가 수명 연장제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실제 논문에는 항경련제를 예쁜꼬마선충에게 투여하자 수명이 늘어났다는 2005년 연구결과가 소개돼 있다. 

연구자들도 예쁜꼬마선충에 흥분성 뉴런의 활동을 억제하는 네마디핀(nemadipine)를 투여해 정말 수명이 늘어나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20일이 채 안 되던 평균수명이 25일 가까이 늘어났다. 2005년 항경련제 투여 실험과 비슷한 결과다.

연구자들은 “REST를 활성화하고 흥분성 신경 활동을 줄이면 노화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며 논문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왜 항경련제를 노화 억제제로 쓰는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은 걸까. 심혈관질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아스피린을 저용량(기존 알약의 5분의 1인 100㎎)으로 장기간 복용하듯이 노화를 늦추기 위해 항경련제를 저용량으로 쓸 수는 없는 걸까.

그러고 보면 2005년 항경련제가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늘린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발표된 뒤 생쥐를 대상으로 효과를 본 실험을 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생쥐가 사람에 비해 수명이 훨씬 짧다지만 그래도 4~5년은 잡아야 할 연구라 진행할 엄두가 나지 않은 걸까. 어쩌면 지금 양크너 교수팀이 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생쥐에서 항경련제가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 걸로 나온다고 해도 사람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항경련제가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약물이라 용량을 줄인다고 해도 장기간 복용할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미국 워싱턴대 케리 콘펠드 교수팀은 시판되는 여러 약을 예쁜꼬마선충(사진)에 투여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항경련제 에토숙시마이드(ethosuximide)가 수명을 17% 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 제공

명상이 신경 활동 정리해줘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신경 활동을 줄이는 방법이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멍 때리는’ 시간을 늘리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있는 이상 뇌는 활동을 하기 마련이고 이를 디폴드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이하 DMN)라고 부른다. 멍 때리고 있을 때도 우리 몸이 쓰는 전체 에너지의 20%가 뇌에서 소모되는 이유다. 

특별한 일이 없음에도 뇌의 상당 부분이 켜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예열’ 상태라는 설명에서 자아 성찰이나 창의성을 지원하는 회로라는 설명까지 다양하다. 아무튼 우리가 ‘나’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건 DMN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 해당 네크워크가 켜지면서 DMN의 활동은 크게 떨어진다. 단순히 머리를 쓰느냐 안 쓰느냐로 뇌의 전반적인 활동도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실제 에너지 소모량도 별 차이가 없다. 물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멀티테스킹) 뇌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학술지 ‘신경 가소성(Neural Plasticity)’ 4월 2일자에는 ‘DMN과 명상, 나이 관련 뇌 변화’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이 실렸다. 나이가 듦에 따라 DMN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그 결과 신경퇴행성질환이나 정신질환이 발생할 위험성도 높아지는데 명상이 이런 경향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DMN은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예를 들어 내면에 몰입해 자전적 기억을 반추하는 DMN의 활동이 지나치면 우울증 같은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쉬고 있다가 어떤 과제를 시작하면 DMN이 꺼지고 일 관련 회로가 켜지는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작업의 효율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DMN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일을 해도 DMN의 활동이 일종의 잡음으로 계속 남아있다.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할 때 집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다.

수년 천 년 아시아에서 발명된 명상은 주의력이나 감정조절 같은 마음의 능력을 고양시키는 정신 훈련의 한 형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명상을 하면 뇌의 전반적인 신경 활동이 낮아지는데 주로 DMN의 활동을 억제한 결과다. 특히 명상의 기초인 집중명상(호흡이나 신체 부위, 감각 자극 등에 의식을 집중하는 명상법)은 DMN을 통제하는 데 탁월하다.

리뷰논문에서 저자들은 명상을 꾸준히 수행해 DMN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게 되면 일(목표지향과제)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ST의 신경 활동 억제를 통한 수명 연장’ 논문에서는 ‘명상’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전반적인 신경 활동(주로 DMN)을 억제하는 명상이 수명을 늘리는데도 꽤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물실험을 전혀 할 수 없고(생쥐에게 명상을 가르칠 수는 없다!) 실험 참가자를 명상 유무로 나눠 수십 년에 걸친 추적연구를 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명상에 관심이 많지만 아직 해볼 결심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명상은 마음의 조절 능력을 높이는 정신 훈련이다. 명상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특히 집중명상(FA)과 마음챙김명상(OM)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억제하고 과제 관련 네트워크(TPN)를 활성화시켜 신경 활동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신경 가소성′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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