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신비주의와 민족주의로 과대 포장된 중국 전통 무술

강민수 입력 2019. 10. 29. 14:53 수정 2019. 10. 2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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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군 '점혈' 무공의 실체

손가락으로 우슈 산타 선수를 가볍게 기절시키는 동영상이 전 중국을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그 주인공인 이른바 '점혈대사' 훼옌산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완전히 사기다!", "점혈법은 실재한다!" 찬반 논란 속에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그가 일단 만나보자는 연락이 왔다. 푸젠성 싼밍역에서 만난 그는 대뜸 기자 신분증부터 보여달라더니 사진까지 찍는다. 수많은 매체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며 중국에선 가짜 기자들이 많으니 이해해 달란다.

푸젠성에서도 한참 시골 마을인 칭류현에 있는 훠옌산의 도장은 꽤 규모가 컸다. 한쪽은 중국 전통 무술 교장이고 다른 한쪽은 우리 태권도 도장인 것이 흥미롭다. 훠옌산이 당시 경기에 사용했던 격투 장갑을 가져왔다. 검지와 중지 부분을 찢어 손가락이 더 잘 나오게 제작된 것이다. 그가 말한다. "점혈 무공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점혈법은 아무에게나 전수하지 않아요. 비밀 유지를 위해 따로 책으로 돼 있는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점혈법을 공개하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훠옌산에게 경기 당시 점혈 장면을 재연해 달라 했더니 기자의 명치 부근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이곳이 상완혈입니다. 이곳을 찌르면 기절하게 돼요. 상대 선수가 바로 이곳을 점혈 당한 것입니다." 점혈 수련 장면을 좀 찍고 싶다고 하니 자기 이름이 들어간 도장 간판이 나오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푸저우에 있는 푸젠성 무술협회 예셩바오 부회장은 "그 경기는 훠옌산을 홍보하는 영상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훠옌산의 상대는 전혀 훈련이 안 된 사람이에요. 몸을 봐도 그렇고 손을 올리는 자세도 훈련받은 우슈 산타 선수가 아니에요. 훠옌산이 점혈했다는 해설도 틀렸어요. 아마 해설자와 짰을 수도 있겠죠."


중국 전통 무술 리그 복마전

최근 중국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인 종합격투기(MMA)강사 쉬샤오둥(徐曉冬)을 만났다. "중국 전통 무술은 사기다!"라며 태극권과 영춘권 등 중국 전통 무술 고수들을 잇달아 KO 시킨 쉬샤오둥이 중국 전통 무술 리그의 흑막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2017년 태극권 고수 웨이레이를 20초 만에 실신 KO 시킨 뒤 인상(人像)이란 프로그램에서 왕즈안(王志安)과 인터뷰 도중에 한 말이다.

"무림풍과 곤륜결 같은 전통 무술을 표방하는 격투 리그 경기의 30%는 조작입니다. 외국 선수를 돈 주고 사 와서 그냥 중국 선수가 이기는 것으로 하는 경기도 있습니다. 무림풍이 민족의 영웅으로 포장해 만든 이룽(一龍)역시 소림사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며, 이런 조작 경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쉬샤오둥은 중국 전통 무술 저변에 잘못된 민족주의 정서도 꼬집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일본을 때리고 싶다는 음험한 심리가 있죠. 그래서 베이징의 일본인 유학생을 회당 6만 위안 정도 주고 일방적으로 때립니다. 전혀 무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가 대단한 사람으로 선전한 뒤에 때리는 거죠. 산둥성에서는 중국의 프로 격투기 여자 선수가 일본 남자 선수와 성 대결을 했는데 17초 만에 KO 시켰어요. 관중은 열광했지만, 사실 일본 남자는 일반인이었어요. 일본 남자가 경기 끝나고 돈 벌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어이가 없었죠."

쉬샤오둥이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중국 전통 무술을 조롱하고 있다.


사기 논란 속 무너지는 고수들

태극권과 영춘권 등 수백 년을 자랑하는 중국 전통 무술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쉬샤오둥의 주먹에 힘없이 쓰러지면서 전통 무술의 실전성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뇌공 태극권의 창시자 웨이레이부터 영춘권의 딩하오, 쿵푸 고수 텐예, 점혈법의 뤼강까지 누구 하나 제대로 맞서보지도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가장 최근 대결했던 뤼강이 경기 다음 날 한 인터뷰가 흥미롭다. "사실 내공을 써야 하는 데 쓰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내공을 썼다면 상대방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거든요." 쉬샤오둥은 이룽 등 중국 내 전통 무술을 표방하는 고수들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고 있지만 이젠 모두 숨죽이는 상황이다.

쉬샤오둥에게 물었다. "무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당신과 대결한다고 했을 때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쉬샤오둥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들은 진짜로 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주변에서도 그렇다고 얘기하니까 자신에게 속는 겁니다. 일종의 자기세뇌, 자기최면에 당한 겁니다." 그는 전통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망상에 빠져있다고 했다. 많은 중국인이 그렇게 되면 청나라 아편전쟁 시대로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자 뇌리에 청나라 왕조 말기 의화단 운동이 연상됐다.


서양의 군대 앞에 무력했던 금강불괴(金剛不壞)·도검불침(刀劍不侵)

의화단(義和團)은 19세기 말 청나라 말기의 비밀결사 조직으로 '청나라의 전복'과 '외세의 배격'을 목표로 무장봉기를 일으킨 단체이다. 이들은 손오공이나 저팔계 따위를 신으로 숭배하면서, 칼에도 피나 부상을 입지 않으리라 믿었다고 한다.-위키백과 中

청나라가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유린당하던 그 시절, 서양 오랑캐와 기독교를 쫓아내겠다며 무술을 연마하는 단체가 생겼으니 그게 의화단이다. 이들이 워낙 신체단련을 중시해 늘 웃옷을 벗고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아온 탓에 서양인들은 의화단 운동을 Boxer Rebellion이라 부른다. 의화권을 익히는 의화단원들이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청나라 황실도 동조했다. 몸을 단련시켜 총도 피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다녔지만 8개 연합군 만5천 명의 병력에 의해 톈진에서 손쉽게 진압되고, 결국 베이징까지 점령당해 청나라는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중국이 지금까지 얘기하는 치욕의 100년 모습이다.

중국 전통 무술 논란은 중국인들 자신에게 내재한 허위의식, 이중성과의 싸움이다. 루쉰이 정신승리법에 익숙한 중국 민중을 일깨우기 위해 아큐(阿Q)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듯, 쉬샤오둥이 신비주의, 민족주의의 허울을 쓴 중국 전통 무술의 환상을 깨기 위해 등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쉬야오둥은 인터뷰 말미에 중국 무술만 가짜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중국은 무술에서만 가짜가 있는 게 아니라 분야마다 적지 않은 가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스입니다. 중국의 일부 여론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많은 인구만큼이나 중국에서 깨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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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 기자 (mand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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