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는 사람이 '핵발전소 노동자' 책을 쓴 이유

김민수 입력 2019. 10. 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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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핵발전소 콘크리트 속에서 일하는 건 기계 아닌 사람

[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중학교 때 현장실습으로 원전을 단체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여 있는 원전과 학생들을 맞이해 주시는 홍보담당자들의 깨끗한 양복은 안전한 에너지, 녹색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마침 원자력 발전이 해외로 수출할 정도의 기술을 갖추기 시작할 때였기 때문에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긍정적인 상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간혹 언론에서 다루었던 원전 내 사고들도, 똑똑한 중앙관리조직의 철저한 통제 아래에 잘 수습되겠지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사건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2016년 원전이 밀집해 있었던 동해안에서 가까운 경북 경주의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은 '간혹 있었던 사고'가 사소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웃나라 일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심지어, 초기에 잘 수습 되고 있다며 공언하던 일본정부의 자신감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광범위하게 퍼지는 방사능 오염을 은폐하기 급급하다. 그런데, 여기서 놀랄 만한 사실 하나가 있다.

핵발전소 폭팔사건 이전이나 이후 상관없이 방사능 누출 사건이 터지면, 이 모든 상황을 수습하기까지 투입되는 건 '로봇이나 기계'가 아니라 바로 핵발전소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였다는 것이다.
 
 핵발전소 노동자 테라호 사호 지음. 박찬호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핵발전소에 대한 안전 설명에서 중앙 통제실 외에 핵발전소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해선 설명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마치 핵발전소의 모든 것을 기계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한다."

누구든 엄청난 크기의 콘크리트 돔으로 가려진 원전 안에 인간이나 노동자가 있을 거라곤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매우 신기하게도 탈핵 전문가도 아니고 원전 전문가도 아닌 피아노를 치며 토크쇼를 하는 음악가 테라호 사호가 핵발전소 노동자와 우리들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책을 펼쳐냈다.   

그는 책 '핵 발전소 노동자'를 통해 원전을 유지하는 것은 상상속의 자동화된 기계가 아니라, 피폭을 비밀리에 감내해야 하는 '현장 노동자' '파견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핵 에너지의 편리함과 경제성에 은폐된 핵발전소 노동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어쩌면, 일본의 실수를 통해 우리가 실수할 수 있거나, 실수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한 핵 발전소에 초점을 두기보다 평상시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모습, 일상적인 정기검사나 고장을 보수하는 사람들을 상세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책에서는 원자로의 냉각수 배관을 수리하는 노동자.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노동자. 전 도쿄전력 기술자 등의 사람을 포함해서 총 6명의 원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도쿄전력이든, 일본 내 원전 및 정부 관계자든 사고를 해결하는 것보다 덮거나 은폐하는 것에 급급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은 원자로 허가를 담당하는 안전심사 담당자가 도쿄원전의 조직 보전을 위해 '쓰나미와 핵발전소의 심각한 사고를 연관시키는 것은 금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을 하는 부분에서 정점을 찍는다. 

일상적인 저준위 방사선 피폭에 대한 증언도 나온다. 오히려 저준위 방사선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에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이유는, 낮은 선량이라고 쉽게 간과하거나 측정기를 필수적으로 부착하지 않기도 하고, 파견 임시노동자들에게는 구멍이 뚫리거나 방진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마스크를 지급하는 열악한 대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안전요원 다카하시 나오시의 증언이 제일 인상적이다. 원전 내부 작업장의 살인적인 온도로 마스크는 결국 벗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다보면 방사성 물질을 흡입하게 된다는것이다. 그의 증언에서 더 놀라운 건 원전 내부에 화장실이 없어 안전화 안에다가 용변을 해결해야만 했었던 적도 있었다는 거였다. 
  
원전 내 안전 불감증도 만연했다.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되어 알람이 울려도 무시하는 건 항상 있었던 일이었고, 화재가 나도 소화기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원전노동 기피현상으로 파견노동, 하청노동의 더 아래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실습생들에게도 손을 뻗친다고 한다. 물론, 안전교육은 대폭 축소 되었다. 
 
"핵연료 저장수조에 들어가는 외국인을 많이 봤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상당히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번에 200이나 300 밀리시버트 피폭한다고 합니다. 백인도 있습니다. 한번에 200만 엔이나 300만 엔 받는 것 같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부터 원전 내 터빈을 수리하는 미즈노 도요카즈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연 50밀리 시버트가 최대한도 노출량임에도, 위와 같은 불법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최근에도 일본에서는 기능실습이라는 빌미로 베트남 외국인 노동자를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된 오염제거작업에 투입하였다. 

그들의 증언을 보다보면, 일본정부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너무나 지저분해 보인다. 또한, 원전의 경제적 가치에 사고 발생 시의 복구비용과 폐로 과정에 대한 비용 그리고 방사선 피해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고통으로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을 왜 잘 고려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핵 발전소 노동자들은 어떨까?

책의 맨 뒷장에는 한국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옮긴이 박찬호가 한국의 핵발전소 노동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핵발전소는 숙련도와 높은 기술을 요하는 산업인데도 일본과 한국 양국 모두 비정규직의 비율이 50% 이상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불안하다. 사고가 쉽게 나거나, 실수하면 피폭되기 쉬운 작업 환경일텐데 산재(산업재해) 인정은 이웃나라 일본보다 쉬울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다른 직업병과는 다르게 핵발전소 노동자는 원자력 안전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고시 제2017-87호) 에서 담당하고, 원자력 안전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의 경우 산업안전 보건법의 23개 조항의 적용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보니, 산재인정 기준이 행정편의적인 경향이 있고 노동자 건강권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시로, 최근 순환기 계통 질환이나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도 지속적인 방사선 노출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는 의학적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방사선 노출로 인한 산업재해 연관 질병으로 암 이외의 순환기 계통질병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방사선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호지킨 림프종은 제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백혈병의 경우 1년간의 직업력만 있어도 인정하는반면, 한국은 2년의 직업력이 있어야 인정되며,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게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피폭의 정도를 노동자 본인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관리 수첩에 대한 지원도 없다고 한다. 일본의 핵발전소 노동자들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비파괴업무(핵물질연구)자 이외에는 교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고시되고 있는 피폭 제한기준도 한계점이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연간 50밀리시버트를 제한하는것이지만 연속적으로 12개월간 총 100밀리 시버트에 노출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렇게, 피폭되는 기간이나 빈도도 은폐되기 쉽다.

위와 같은 열악함에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원전속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책에서 증언으로 핵발전소 노동자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도왔던 다카하시의 말을 인용해 본다.
 
"백퍼센트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핵발전소가 있으면 일자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재고용 하면서 무리 없이 대체해 나가느냐 라는 방향으로 이야기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설은 반대합니다. 우리가 죽는다고 해도 오염된 곳에 후손들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 탈핵을 위한 공론화 위원회에서 시민들이 고심 했던 지점과 비슷한 느낌이다. 대다수가 생각하는 현실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정말 귀중한 현장의 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나라한 원전의 현실을 용기있게 이야기한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증언을 보다보면,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남의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내가 겪는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책을 덮을때 즈음, 그 냉혹한 현실 때문에 나처럼 몸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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