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농사 1년 지어봐야 212만원.. 농촌 진짜 큰일"

안동/유석재 기자 입력 2019. 10.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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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필 前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퇴직 후 귀향해 직접 농사짓고 경북도 5급 자문관으로도 일해
"청년들 붙잡아 농촌 붕괴 막아야"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마땅한 판로가 없더라고요. 1년 내내 콩 19가마(약 760㎏)를 수확해 다 팔아봐야 고작 212만원 받으니…." 이렇게 한숨을 쉬는 백발의 '농민'은 이동필(64)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지금 그가 일하는 공간은 경북도청 2층의 한 사무실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7월 고향인 경북 의성의 텃밭에서 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이동필 전 장관 페이스북

'농촌을 살릴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씀을 새기고 미국 미주리대로 유학 가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을 거쳐 2013년 농림부 장관이 됐다. 융복합산업 육성법을 마련하고 쌀 관세화와 FTA 과정에서 영세 소농을 배려하는 정책을 세우다 3년 반이 후딱 지나갔다. 2016년 9월, 공직 생활을 마감한 그는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으로 내려갔다. 이제 마음놓고 농사를 지으려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다시 '공무원'이 돼 있다. 5급 시간제 신분인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이 돼 올해 초부터 출근했다. 귀향해 농민이 돼 보니 농촌의 사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책상에서 입안한 정책들이 현장에선 먹히지 않는구나!'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울에선 갑자기 '적폐 청산'의 폭풍이 불며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도매금으로 폄하됐다. 유배라도 온 듯 TV도 신문도 외면하며 농사에만 몰두하던 그가 문득 깨달았다. "나 혼자 이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농촌이 붕괴하고 지방이 소멸하는 위기에 부지깽이라도 들고 거들어야 하지 않겠나!"

마침 경북도가 그를 자문관으로 초청해 5급인 줄도 모르고 응했고, 올해 초부터 출근했다. "백의종군이고 뭐고 상관없었어요. 정책 입안자들이 제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 3일 근무, 연봉 3000만원 자리에서 그는 직접 파워포인트 문서를 만들어 가며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다녔다. 공무원과 농업인을 대상으로 농촌을 살리자는 포럼을 열어 특강에 나섰고, 금요일마다 전문가와 함께 농촌 현장을 돌며 지역 개발의 구체적 방법을 모색했다.

10개월 동안 지켜본 농촌 현장은 과연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영세 소농이 많은 데다 농촌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농촌 인구 중 30대 이하가 22%인데 그중 73%가 떠날 의사를 밝혔어요." 그 속에서도 희망은 보였다. "다행히 새로 귀농하는 인구도 일부 있습니다. 성주 참외, 청송 사과 같은 지역 특산물로 고소득을 이루는 곳도 있고요."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농공 단지와 향토 산업의 기반을 만들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농한기에도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농외(農外) 소득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과 농업이 1차산업이라면 사과 술, 사과 한과 등을 만드는 2차산업, 사과 따기 체험이나 사과 축제 같은 3차산업을 결합시켜 '1+2+3=6' 공식으로 '농업의 6차산업화'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다.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농업의 노동강도를 줄이고 효율화하는 '스마트 팜'을 실현해 농촌에 사는 청년들부터 계속 살도록 하는 '집토끼 전략'이 당장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의료·문화 같은 생활 여건이 개선돼야 하는데, 각 부처와 지방행정이 제각기 벌이는 사업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고향 의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안동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그냥 촌부인 줄 안다"며 "내가 밥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도청에서 일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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