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10년에 걸친 '4대강 부역자들' 추적기 [시네프리뷰]

2019. 10. 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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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삽질

제작연도 2019년

감독 김병기

각본 정재홍

주연 이명박, 이재오, 김무성, 정종환, 이만의, 권도엽

상영시간 94분

상영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11월 4일

㈜엣나인필름
궁금했다. 일반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떤 소감일까. 영화리뷰를 쓰지만 기자 역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꽤 열심히 취재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 잘 안다. 심지어 영화에서 주연 내지는 조연으로 언급되는 ‘사업 찬동 내지는 부역자들’조차도.

영화 〈삽질〉의 장르는 다큐멘터리다. 홍보사는 이렇게 덧붙여 놨다. ‘장르: 대국민 뒤통수 프로젝트 추적 다큐멘터리.’ 국민들의 뒤통수를 친 사람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던 사람들이다. 그 정점에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있었다.

영화는 MB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대운하 공약을 내걸 때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사건들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사건들에는 책임져야 할 인물들이 있다. 4대강 사업이 집중 추진되던 시기가 2009년에서 2012년이다. 영화는 문제 인물들의 당시 행적 내지는 발언 영상을 보여주고, 현재 시점에서 그 인물들이 자신의 발언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발로 뛰어 찾아가 묻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그 어떤 당시 책임자도 현 시점에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의 당시 결정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일단 들고 있던 책이나 문건 같은 것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거나, “이런 식으로 불쑥 찾아오면 되느냐”며 역정을 내는 식이다. 코미디 같은 장면도 여럿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모 교수는 카메라를 발견하자마자 알아차렸다는 듯이 계단으로 냉큼 도주한다. 뒤쫓던 영화의 감독이자 인터뷰어인 김병기 기자는 “한 말씀만 부탁한다”고 요청하지만 애써 외면한다. 몇 개 층을 한꺼번에 뛰어가 자신의 연구실에 도착한 교수는 숨을 몰아쉬며 “할 말 없다”며 문을 쾅 닫아버린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책사업

영화가 고발하고 있는 ‘4대강 사업 찬동자 내지는 부역자’ 중에는 현재도 종편 등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명인사도 있다. 그 역시 카메라를 피하며 당시 자신이 했다고 폭로된 ‘은밀한 역할’에 대해 “오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변명하고 있다.

놀라운 감정은 이내 씁쓸함으로 바뀐다. 결과적으로 당시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확신범’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 같은 사람이다. 재야인사 출신이지만, 그는 당시 보수 집권당의 실세로 ‘열혈 4대강 전도사’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에필로그로 삽입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는 올봄에도 ‘4대강 보철거 반대 서울역 집회’ 같은 행사를 주도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감독을 만나서는 그런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않는다. 대신 예정에 없던 기습 인터뷰에 대한 무례함만 탓한다.

기자가 ‘씁쓸함’을 거론한 것은 영화에서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8~9년 전 그들의 모습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은 기자에게 자신의 “직과 명예를 걸겠다”며 진짜로 자신들이 하는 것은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 아니다”라고 밝힌 적도 있다. 2012년 정권교체에 실패하면서 정말 그렇게 넘어갈 뻔했다. 영화에서도 인용되지만, 4대강사업추진단에 참여했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공무원의 ‘방치된 PC’에서 ‘대외비 VIP문건’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면 진실은 묻혔을 수도 있다.

놀라움에 이어 씁쓸함 안기는 영화

여기에 착잡하고도 묘한 감정을 더하는 것은 영화에서 핵심 내부자로 담담하게 폭로하는 전 정치인 정두언 같은 이는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마감을 앞두고 있는 관계로 시사회에 이어 마련된 감독과 주요 출연자들의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민완기자로만 알았던 감독이 영화연출 능력까지 있는지는 몰랐다. 필모그래피까지 살펴보지 않았지만 김병기 감독의 첫 영화일 것이다. 영화로 밥벌이하는 사람 못지않은 연출감각도 그렇지만 10년 가까이 끈질기게 추적해 그 결과물을 내놓은 것도 놀랍다. 김 기자나 ‘에코큐레이터’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금강 지킴이 활동을 했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종술씨 등 ‘4대강 독립군’이라는 별칭으로 활동한 모두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4대강 사업의 추악한 실체 중 상당 부분은 드러났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에 잠깐 인용됐던 ‘4대강 홍보영상’의 경우 국무위원부터 시작해 지방의 말단 9급 담당공무원들까지 반드시 보고 보고서를 써내야 했던 영상인데, 이 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곳은 국정원이었다. 영상의 구체적 제작경위나 책임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가 4대강 진실 규명작업의 끝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4대강 부역자’들의 근황

‘앰부쉬(ambush)’라는 인터뷰 기법이 있다. 말 그대로 매복 내지는 기습 인터뷰다. ‘60분’과 같은 외국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 길거리나 리셉션장 등에서 불쑥 카메라를 갖다 대고 직설적으로 질문한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 자체가 보도거리가 되는 뉴스다. 권력자의 부도덕성 등을 폭로할 때 속칭 ‘그림 만들기 좋은’ 기법이다. 영화에서 4대강 부역자들을 접근할 때 주로 쓴 방법이다.

㈜엣나인필름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확신범인 이재오 전 장관 케이스도 언급했지만, 과연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부끄럼 없다, 떳떳하다”고 말할 사람은 정말 한 사람도 없는 걸까.

실제 기자가 과거 취재한 사례 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나선 대학교수들 중에는 현역 국토교통부 공무원으로, 4대강사업추진단의 고위직을 맡고 있던 인사의 대학 및 석·박사 지도교수도 있었다. 그 공무원은 기자가 일하는 신문에 게재된 ‘4대강 공사현장’ 사진을 ‘피 튀기는 개복수술 장면’에 비유하며 선동이라고 비난했다. 그에게 “정권은 유한한 법이다. 지금은 잘나갈지 몰라도 나중에 은사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 인사가 말한 답의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답이었던 것 같다.

정권이 바뀌고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비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이 인사였다. 국토부 조직도에서 찾아보니 여전히 그는 국토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수차례 시도 끝에 부서 유선전화로 통화했다. 돌아온 답은 “할 말 없다”는 것이었다.

〈신갈나무 투쟁기〉의 저자로 4대강살리기본부 홍보실장으로 발탁되었던 차윤정 경원대 조경학과 교수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이전에 기사를 쓰면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했었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7년 전인 2012년 ‘江의 미래를 열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사가 신문지상에 나온 마지막 인터뷰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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