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agnosis」 환우들, 저 여기 있어요! [내 인생의 노래]

입력 2019. 10. 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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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하나 더 늘었다. 나는 우울장애와 공황장애가 있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미국의 뮤지컬 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에는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는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주인공 레베카 번치(레이첼 블룸 분)가 노래한 〈A diagnosis(진단)〉의 가사처럼 나는 오랫동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주기적으로 무기력감에 짓눌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하루의 체력을 다 써버려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새벽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밖에서는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에서 공황발작이 왔다. 식은땀이 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다음 역에서 내려 한참 동안 숨을 고르다가 일정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초진 예약을 잡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건물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사람들이 내가 정신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까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우울장애의 한 형태인 기분부전장애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처방도 받았다. 처방전을 들고 나오는데 ‘꾀병이 아니고 정말 아픈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이 밀려왔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던 그것을 무어라 칭해야 할지 몰랐기에 숨기기 바빴지만, 이제 부를 수 있는 단어가 생겼다.

사실 내가 오랫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던 이유는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정신과에 가면 (어떤 기록인지는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기록이 남아서 취업이 안 된다는 소문, ‘쟤 정신과에 다닌다더라’며 혀를 차던 지인들의 반응을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차별을 답습하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사회적 낙인이 찍힐 거라는 두려움이 뒤따랐다. 그런데 막상 진단을 받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나부터 편견을 없애자는 생각으로 주변에 열심히 나의 상태를 떠들고 다녔다. 안타까워하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환우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자신도 당사자라는 고백부터 병원에 가보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때론 조력자가 되기도 했다. 환우들과 만나면 서로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어디 병원이 좋은지 정보를 교환했다. 각자 상태가 나빠지는 시기에는 SOS 요청을 하며 서로가 서로의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매드프라이드 서울’ 행사가 개최된다. 나는 미디어기록팀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신장애 환우들 그리고 폭력적인 의료시스템의 생존자들이 함께 세상으로 나가는 자리다. 광장에 나간다는 것은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각자에게 큰 위로가 되는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 더 많은 환우들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각자의 정신장애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며 함께 선언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For almost 30 years,

I’ve known something

was wrong

But Mom said weakness causes bloating, so I tried to be strong

Fake it till you make it,

that’s how I got by

And when I tried to find

the reason for my sadness

and terror

All the solutions were trial

and error

(중략)

I’m aware mental

illness is stigmatized

But the stigma is worth it

if I’ve realized

Who I’m meant to be,

armed with my diagnosis

마민지 영화 <버블패밀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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