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 옷 '돼지우리' 숙소.."날마다 맞았다"

고현승 2019. 10. 3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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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은 강제 징용 배상은 이미 끝났다 하고 우익들은 아예 강제 징용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도 조선인 강제 징용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그의 기억 속 조선인 강제 징용자입니다.

너덜너덜한 작업복에 돼지 우리같은 숙소, 차별과 구타가 일상이었다는 그의 생생한 증언을 고현승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올해 91살인 니시야마 스스무씨는 14살이던 1942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그가 목격한 조선인 징용자는 약 5백 명, 주로 높은 작업대에서 선체를 쇠못으로 잇는 위험한 작업을 했습니다.

[니시야마 스스무(91세, 일본인 징용공)] "여기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있었고, (위험한) 일은 대부분 조선인 징용공이 했습니다."

작업복은 너덜너덜 구멍 나고 더러웠고, 처참한 시설에 격리 수용돼있었습니다.

"돼지우리에 가깝지요, 벽은 찢어져있고 다다미(일본 돗자리)는 너덜너덜하고. 잘도 조선인을 이런 곳에 처박아 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급료와 배급도 차별이 심했다고 말합니다.

"일본인이 최고로 뛰어나고 조선인은 하등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현재 만화갑니다.

당시 목격한 조선인을 그려달라고 하자, 누더기 차림의 몰골, 그리고 매일 온갖 폭력에 시달리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이 멍청이가! 이 조선놈이!'라고 하면서 조장이 마구 때려서, 꽤 심하게 해서 '아이고'라고 신음했습니다."

"도라지 도라지…한두 뿌리만 캐어도…"

지금도 한국 민요를 기억하는 니시야마 씨는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피폭돼 폐기종 때문에 산소 공급기를 달고 살면서도 최근까지 조선인 피폭자의 소송을 지원해왔고 SNS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의 사죄를 전제로 풀어야 한다며, 극우들의 공격을 받더라도 목격자로서 진실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니시야마 스스무(91세, 일본인 징용공)] "(일본은) 자신들이 한 일을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확실하게 징용공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80년이 다 되도록 해결되지 못했지만, 강제징용의 역사적 사실은 지금도 생존해있는 목격자들의 기억과 그들의 생생한 증언 속에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후쿠오카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김진호, 이장식(도쿄) / 영상편집: 박병근)

고현승 기자 (countach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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