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탈이냐 아니냐.. 일제 토지조사 사업 두고 벌어진 두 교수의 논쟁

김성현 기자 2019. 10. 3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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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vs 이영훈]
이영훈 '반일 종족주의'에 맞서 '일제 조선토지..' 펴낸 신용하
엉터리 학설이라며 서로 비판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논쟁이 1910년대 일제 토지조사사업으로 옮겨붙었다. 신용하(82)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나남)에서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인 이영훈 (68)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이영훈을 비롯한 일부 뉴라이트 경제사학도들은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자들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 강점 수탈을 옹호하고 미화(美化)하기 위해 일제 식민지 정책 수탈성의 본질을 파헤치는 필자의 연구를 고의적으로 중상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쟁은 지난 7월 이영훈 전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에서 신 교수를 실명(實名) 비판하면서 불거졌다. 이 전 교수는 당시 "신용하라는 학자는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책을 쓰면서 일선 군청이나 법원에 있는 토지대장이나 지적도를 열람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일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였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학자는 '엉터리 학설'이나 '패륜적 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상대를 비판했다.

두 교수는 각각 한국사회사와 한국경제사 분야 대표적 학자. 신 교수의 입장은 일제 토지조사사업의 수탈적 성격을 강조해서 '수탈론', 이 전 교수는 근대적 토지 소유제의 성립에 초점을 맞춰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분류된다. 이번 논쟁도 일제 토지조사사업의 성격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신 교수는 1918년 말 기준으로 총독부가 농경지 27만 정보(町步), 임야 955만 정보, 기타 국유지 137만 정보 등 국토 총면적의 50.4%(1120만 정보)를 수탈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전 국토의 50.4%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의 토지를 어떠한 대가 지불도 없이 식민지 통치 권력으로 약탈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이 전 교수는 "(1960년대 교과서에 기술된 것처럼) 토지 40%가 총독부의 소유지로 수탈되었다는 학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토지조사사업 당시 일부 토지의 소유권 분쟁이 있었지만 "전국 487만㏊ 가운데 12만㏊에 불과한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이었다"는 것이 이 전 교수의 입장이다.

1980년대 경남 김해 지역 연구 이후 최근 학계에서는 총론보다는 실증적 사례 연구로 관심이 이동하는 추세다. 또 국사학계에서 '일반 민유지(民有地) 가운데 약탈된 토지는 거의 없었다'며 경제사학계 연구를 일부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제의 약탈을 강조하는 수탈론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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