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쿠폰 받고 책 15% 싸게 판 오픈마켓, 불법일까요?

김용우 2019. 10. 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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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16)
물건의 가격은 같은 종류라도 어떤 경로로 만들어진 제품이냐에 따라 다르다. 사진은 2012년의 남대문에 부착된 가격표. [중앙포토]

물건값은 다양합니다. 공장에서 똑같이 출하된 물건이라도 유통경로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요. 가격경쟁이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자유 시장경제 질서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외도 있습니다. 바로 ‘도서’ 입니다. 우리나라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하 ‘출판법’)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서정가제’를 채택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에서 정한 도서 가격(정가)을 유통과정을 통해 소비자가 책을 구매할 때까지 ‘고정’하는 겁니다. 유통과정에서 가격이 크게 출렁이지 않도록 제한하기 위해서이지요. 만약 시장가격에 의해 책값이 결정된다면 가격경쟁력이 높은 출판사나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대형유통사만 살아남을지 모릅니다.

도서는 정보전달 및 공유에 꼭 필요한 공공재입니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다수의 무명작가와 영세 출판사를 보호하고 이를 통해 양서 제작을 유도하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것이지요. 현행 출판법에 따르면 종이나 전자매체를 포함한 각종 도서(간행물)를 판매하는 사람은 정가의 15%까지만 가격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조합해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가격할인은 10%까지만 가능합니다(출판법 제22조 제5항).

여기서 경제상의 이익은 간행물 거래에 부수되는 각종 물품, 마일리지, 할인권, 상품권 등을 의미하는데요(제7항). 예를 들어 출판사에서 신간 도서의 정가를 만원에 책정했다면 간행물 판매자는 9000원까지만 할인판매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9000원으로 할인해 판매하면 500원 상당의 마일리지까지만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우리나라 '출판법'에서는 2002년부터 도서정가제를 시행했습니다. 유통과정에서 가격이 크게 변동하지 않도록 출판사가 정한 가격을 소비자가 구매할 때까지 고정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중앙포토]

문제는 누가 출판법상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인지 여부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서점과 대형서점, 이들이 운영하는 온라인서점은 당연히 해당합니다. 그런데 ‘중개’형 쇼핑몰, 즉 오픈마켓은 어떨까요. 오픈마켓의 운영자는 대개 직접 물건을 팔지 않습니다. 단지 상품을 등록한 사용자와 소비자 사이에 거래가 성사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중개 수수료를 받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오픈마켓에서도 버젓이 도서가 거래되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온라인서점이나 오픈마켓이나 똑같이 책을 살 수 있으니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오픈마켓의 법적 성격은 중개자, 온라인서점은 판매자로 엄연히 다릅니다. 위 출판법 문언만 보면 중개자인 오픈마켓에게는 출판법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실제 사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형 오픈마켓 운영사인 A는 두 번의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판매했습니다. 첫 번째 이벤트가 적용되는 도서 판매자는 도서정가에서 10% 할인된 금액을, 두 번째 이벤트가 적용되는 경우에는 할인 없이 도서정가를 정했지요.

A가 운영하는 간편 결제서비스에 등록된 제휴카드로 결제하면 구매자에게 15%(1이벤트), 10%(2이벤트)의 할인쿠폰을 발행하고 판매가의 15%에 상당한 캐시(구매자가 적립 사용할 수 있는 적립금)를 제공했습니다. 도서 정가가 1만원일 때 할인쿠폰을 즉시 적용해 상정한 혜택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처럼 A의 이벤트를 통한 도서구매자의 경제적 혜택은 정가 대비 15%인 1500원을 훌쩍 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장은 A가 부담한 신용카드 할인쿠폰과 적립금 혜택을 출판법 위반으로 보고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A는 즉각 반발했고 과태료 부과 결정을 따르지 못하겠다며 재판까지 하게 되었지요.
중개자로 분리되는 오픈마켓도 판매자인 온라인 서점처럼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을까요? [중앙포토]

1심과 2심은 A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중개자에 불과한 A에게 판매자에게 적용되는 위 출판법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판매자에는 직접 도서를 판매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중개업자도 포함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2019. 9. 10. 선고 2019마5464 결정).

대법원은 만약 중개업자를 포함하지 않으면 도서정가제도의 실질적 의미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실제로 A와 같은 오픈마켓 운영자는 정가를 낮춰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수수료를 얻게 될 겁니다. 간편결제 시스템을 통해 확보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 상품도 만들어 판매자에게 팔 수 있으니 결국 신용카드 할인쿠폰과 적립금 제공 혜택은 판매자에게 전가된다는 논리였지요.

그런데 또 다른 사례에서 온라인서점이 신용카드 발행은행과 제휴를 맺고 특정 카드로 도서를 산 자에게 은행 부담으로 20%를 할인해 준 경우 대법원은 반대로 온라인서점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시한 적도 있습니다(대법원 2010. 10. 20. 선고 2010마1403 결정). 이 사안에서는 이익을 제공한 주체가 신용카드 발행 은행이므로 오픈마켓과는 달리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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