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비판기류 마주한 주미대사, 대미외교 '새 접근법' 강조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2019. 11.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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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일 이수혁 대사 간담회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이수혁 신임 주미 대사가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취임 후 첫 특파원 간담회를 갖고 대미 외교정책 방향, 방위비 분담금 등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워싱턴 특파원 공동취재단
이수혁 신임 주미 대사가 ‘한국 중심적 외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미(對美) 외교 변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을 두고 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청구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균열을 막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지만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워싱턴 조야의 비판적 시각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한국 중심적 외교 바뀌어야”

지난달 25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간 이 대사는 30일(현지 시간) 취임 후 첫 특파원 간담회를 가졌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이 대사가 향후 대미외교 방식의 변화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 대사는 “우리 정책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어떻게 연계되고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논리를 개발하고자 한다. 너무 우리 중심으로 (외교를) 하니까 친북 정책이니 뭐니 하는 말이 미국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국 중심 외교’ ‘친북’ 등은 지난해 남북관계 확대를 놓고 한미 불협화음이 불거지면서 미국 외교가에서 확산된 우려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해 미국의 강도 높은 독자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철도 연결 등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제재는 유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지만 여권 내에서는 남북관계 경색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더구나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기존의 5배에 이르는 증액을 요구하고,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사가 대미 외교의 방향 전환을 시사한 것은 이 같은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30일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공화·콜로라도)과 면담한 데 이어 미 고위 인사와의 접촉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 대사는 “한반도를 위하고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에 미국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문제와 관련해 그는 “미국도 남북경협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건 없고, 다만 현재 시행 중인 제재하에서 두 사업을 진행하는 건 아직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견지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에 대해 “12월 말 이전에 한 번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미 국무부 부장관에 임명될 것으로 알려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임명 이후에도 북핵 협상 대표 업무를 계속할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그는 전했다.

○ 지소미아 종료 앞두고 “미국 입장 가감 없이 (정부에) 보고”

미국 내에선 23일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한미 간 긴장 수위가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26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재고를 한국 측에 요청하겠다”며 지소미아 복원을 재차 압박하고 나선 바 있다. 이 대사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며 “(지소미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가감 없이 (정부에)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역시 어느 때보다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와 미국 공화당 일각에선 북한의 위협 증대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포함해 주한미군 분담금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사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미국 요구는) 어마어마한 숫자”라며 “금액이 커지면 (협상에서 다루는) 분야가 넓어지는 만큼 협상하면서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내에선 이 대사의 언급과 관련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라면서도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중심적 외교’ ‘친북’ 등 일부 표현은 그동안 청와대가 추진해 온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세간의 평가를 들며 설명한 것”이라면서도 “일부 표현은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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