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은 군용 헬기..조종사 안전이 위험하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19. 11. 2. 12: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육군 500MD 헬기가 지상 활주로에서 이륙 대기 상태로 놓여있다. 육군 제공
육군과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헬기의 조종사 안전에 ‘적신호’가 켜졌다. 헬기 조종사 양성을 위한 기초 비행훈련용 헬기 도입 사업(TH-X)이 수년째 지연되고 있어서다. 

현재 육군은 500MD, 해군은 SA-316 헬기를 조종사 훈련에 쓰고 있다. 1976년부터 국내에서 만들어진 500MD는 첫 생산 시점으로부터 40여년이 지나면서 노후화가 심해지고 있다. SA-316도 1970년대에 도입된 노후기종이다. 

노후화에 따른 고장 증가와 성능 저하가 두드러지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실정이다. 첨단 장비를 다수 장착한 AH-64E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나 AW-159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를 운용해야 하는 조종사 입장에서는 훈련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군 당국은 노후한 훈련용 헬기를 교체하기 위해 1700억원을 들여 신형 훈련헬기 40여대를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2018년 10월 1차 입찰에 이어 최근 실시된 2차 입찰에서도 기종을 선정하지 못해 조종사 안전과 전력공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실정이다.

◆반복되는 유찰에 사업 지연

2015년 10월 방위사업청은 입찰공고를 내고 훈련용 헬기 기종선정에 돌입했다. 7개 해외 헬기제작업체가 관심을 보인 가운데 미국 벨 Bell-505와 영국·이탈리아 합작회사인 레오나르도 SW-4 헬기로 후보가 압축됐다. 하지만 2018년 4월 ‘적격업체 없음’을 이유로 유찰됐으며, 같은해 9월 재입찰공고를 냈으나 제안서 평가결과 2개 업체 중 1개 업체가 탈락해 또다시 유찰됐다.

엔스트롬 480B 헬기. 태국 등 여러 국가에서 훈련용으로 쓰이고 있다. 엔스트롬 제공
이에 방사청은 같은해 11월 2차 입찰공고를 냈다. 이때 후보기종으로는 미국 MDHI 530F와 엔스트롬 480B가 선정됐다. 지난 5~6월 두 기종에 대한 시험평가를 실시했으나 지난달 8일 ‘전투 부적합’ 판정이 내려지면서 유찰됐다.

2차 입찰마저 유찰되자 군과 방사청 내부에서는 곤혹스럽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일선 부대를 중심으로 노후한 500MD 헬기를 조속히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사업 착수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났음에도 기종선정을 하지 못해 부담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3차 입찰마저 유찰되면 논란이 더욱 증폭된다”며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1, 2차 입찰 당시 후보에 올랐던 4개 업체 중 레오나르도를 제외한 3개 업체는 3차 입찰이 이뤄지면 참여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벨이 개발한 Bell-505 헬기. 일본 등에서 훈련용으로 채택했다. 벨 제공
TH-X 사업이 두 차례나 유찰된 원인에 대해 군과 방산업계에서는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벨의 Bell-505는 2014년 11월 첫 비행을 한 신형 기종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개발리스크에 따른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벨이 가격과 군요구성능(ROC)은 충족했으나 행정적인 문제로 인해 선정되지 못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MDHI의 530F는 육군 500MD와 차별성이 낮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방산업계 소식통은 “행정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방사청이 영하 32도에서도 비행 가능한 동계운용능력 관련 검증자료를 6월까지 제출하라고 했는데, MDHI는 9월에 냈다”며 “해군이 요구한 비상착수용 장비를 장착할 때 중량 증가 문제가 발생하는데, MDHI가 제시한 해결방안에 대해 방사청은 좀 더 확실한 인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레오나르도 SW-4는 군이 원하는 성능을 충족하지 못했고, 해당 업체도 관련 사업에서 철수했다는 후문이다. 엔스트롬 480B는 가격조건은 충족했으나 성능과 후속군수지원 등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경쟁구도를 만들기 위해 성능과 가격 측면에서 경쟁이 불가한 기종들을 무리하게 후보로 선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육군 500MD 헬기가 지상 표적을 향해 로켓탄을 발사하고 있다. 육군 제공
◆사업 재검토 또는 기존 헬기 개량 가능성

2차 입찰이 유찰되자 방사청은 국방부 등 관련 부서와 협의를 거쳐 향후 사업 추진방향에 대한 검토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생산된 지 40여년이 지난 500MD 헬기의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일부 기체가 퇴역하고 있고, 조종사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군 안팎에서는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백지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3차 입찰을 실시한다 해도 새로운 업체가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 1, 2차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 중에서 기종을 선정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당시에 선정되지 못했던 기종을 3차 입찰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내 방산업계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중인 소형민수헬기(LCH)를 사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KAI는 내년까지 개발이 진행되는 LCH의 첫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마케팅을 진행중이다. 4.9t급 민간용 헬기인 LCH는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H155B1 헬기를 기반으로 메인기어박스, 조종실 등에 첨단 기술을 적용한 기체다. 

조종사 훈련용 헬기는 수송 및 공격헬기보다 군요구성능(ROC) 수준이 낮다. 육군이 도입할 소형무장헬기(LAH)와 호환성이 높은 LCH를 사용하면 정비나 부품조달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새로 개발한 기체는 가격이 높고 신뢰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생산을 시작해 전력화되는 시점이 2020년대 초·중반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존 헬기를 수년 동안 계속 사용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미국 MDHI가 개발한 500E 헬기. 500MD를 개량한 것으로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는 평가다. MDHI 제공
이에 따라 기존 500MD 헬기를 성능개량해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제작사인 MDHI는 500MD와의 부품 호환성이 90%가 넘는 개량형 500E 헬기를 생산중이며, 500MD의 성능개량과 수명연장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캐노피를 교체하고 조종석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꾸며, 공기정화기를 설치한다. 기골과 엔진은 현 상태를 유지한다. 해군용은 군용항공기 항법시스템(TACAN)과 비상착수용 부주를 장착한다.   

MDHI측은 500MD 성능개량을 실시하면 기존 사업 대비 50~80% 정도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1대 개조 기간이 1개월 미만으로 짧아 조기 전력화가 가능하고, 500E 헬기가 생산되고 있어 향후 30년 동안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초훈련용 헬기인 만큼 제한된 수준의 성능개량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MDHI측은 이와 관련해 한국이 원한다면 설계도면을 비롯한 기술자료 추가 지원도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500MD=낡은 헬기’라는 군 안팎의 인식은 500MD 성능개량에 부정적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군은 기존 장비의 성능개량과 수명연장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사업이 여러 차례 추진됐으나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 초기에 생산된 기체가 퇴역하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군 소식통은 “육군과 해군 항공부대에서는 예비 헬기조종사들의 훈련 효과 저하와 안전에 대한 우려로 사업을 빨리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으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라며 조속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