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위협에 美무기 도입 '맞대응'.. 되레 쪼그라든 韓 방위산업 [뉴스 인사이드]

박수찬 2019. 11.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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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국방비 50조 시대 명암] / 北 천안함·핵실험·미사일 등 잇단 도발 / 군, F-35 A 등 첨단무기 잇따라 구매 / 국내 방산업체 '낙수효과' 얻기 어려워 / 항공·함정 매출 급감.. 사업 접는 기업도 / 내년 방위력 개선비 16조6915억 달해 / 전문가 "해외구매·국내개발 균형 절실"
50조1527억원.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국방예산안 규모다. 올해 국회 예산심의를 통과하면 사상 처음으로 ‘국방비 50조 시대’가 열린다. 국방비 50조원 중에서 군의 무기도입에 쓰이는 방위력개선비는 16조6915억원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방위력개선비 평균 증가율은 11%. 지난 정부 9년간의 평균 증가율 5.3%의 두 배에 달한다.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역대 정부가 무기도입에 거액을 투입해 국내 방위산업계도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누렸을 것이라는 인식이 작지 않다. 하지만 방위산업계의 현실은 세간의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지난달 15일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에 전시돼 있는 한국형전투기(KF-X) 모형과 공군 항공기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낙수효과’ 사라진 방위산업

방위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다. 무기를 생산·판매하는 업체는 많지만, 무기를 사려는 고객은 정부뿐이다. 단일 소비자인 정부의 국방정책과 예산집행에 따라 방위산업 매출과 영업이익도 영향을 받는 ‘낙수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다.

이 같은 ‘낙수효과’는 국내 방위산업 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10여년 동안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던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무기 국산화에 나섰다. 정부는 예산·정책·기술지원을 담당했고 방산업체는 무기를 만들어 군에 납품했다. 그 결과 국내 방위산업은 소총을 포함한 개인화기를 비롯해 전차, 장갑차, 자주포, 미사일, 군함, 훈련기 등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 중 대부분을 생산하고, 나아가 해외에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군 전력증강과 방위산업 진흥이 함께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낙수효과’는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산업연구원(KIET)의 ‘2018 방위산업 통계 및 경쟁력 백서’에 따르면, 2005년 20조원 수준이던 국방비는 올해 46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방위산업 매출은 2017년 14조1000억원을 기록, 전년(16조2000억원)에 비해 13% 감소했다. 항공과 함정 분야 매출이 각각 30.4%, 24.7% 급감해 전체 방위산업 매출액 감소를 주도했다. 평균 가동률은 2017년 64.7%로 같은 해 제조업 가동률(71.9%)보다 낮았다. 영업이익률은 0.9%로 제조업 영업이익률(8.3%)과 큰 격차를 드러냈다.

경영 여건이 악화하면서 방위산업에서 손을 떼는 기업도 등장했다. 국가안보를 위해 애국심을 갖고 방위산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방산보국(防産報國)’ 논리가 이윤을 얻지 못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구조조정 기조에 밀려버린 결과다. 삼성은 2015년 한화에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삼성테크윈(현 한화디펜스)와 전자장비를 만드는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를 넘겼다. 두산도 2016년 K-21 보병전투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두산DST를 한화에 매각했다.

◆해외 도입 늘어나면서 국내 산업 ‘타격’

해마다 급증하는 국방비의 효과를 국내 방위산업계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무기의 비중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벌어지자 국민들은 수십조원의 국방비를 쓰고도 북한군의 기습을 사전에 막지 못한 정부와 군을 비난했다. 여기에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자 정부와 군은 F-35A 스텔스 전투기, AW-159 해상작전헬기, KC-330 공중급유기 등 고가의 첨단 무기를 외국에서 잇따라 도입했다. 군의 무기소요를 충족하면서 ‘군의 전력이 강해졌다’는 점을 과시,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가라앉히려는 조치이기도 했다. 여기에 투입된 비용만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국방비 증액 기조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외국 방위산업체에 지불하는 금액이 많아지면 국내 방위산업체의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국방비 ‘낙수효과’가 약해지는 이유다. 정부는 수출형 무기개발 등 방산수출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우리 군에서 쓰지 않는 무기를 외국에서 구매하겠느냐”는 회의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는 것을 줄이고 국내 개발에 힘을 쏟아야 침체 위기에 놓인 방위산업을 되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군이 싸워 이기는 데 필요한 장비를 제때 조달한다’는 무기도입사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국내 조달만 내세울 수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무기조달은 연구개발 과정이 필요해 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 중인 한국형전투기(KF-X)는 2020년대 후반에야 생산할 수 있지만,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는 KF-X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전력화 시기도 빠르다. 도입 시점이 늦어지고 가격이 상승하면 군의 무기도입 요구가 온전히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와 중국·러시아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 등 주변국과의 안보적 갈등이 심화하는 한반도 정세를 감안해 정부가 해외 구매와 국내 개발 방식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군의 요구사항과 국내외 기술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 등에 기초해 무기도입이 이뤄져야 한다”며 “선진국과의 공동개발이나 수출형 무기를 우리 군에서 시험운용하는 방안 등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방위산업 진흥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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