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6시간 일하고 영양실조로 숨져"..'참혹한 노역' 증언

정영민 2019. 11. 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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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수십년 전 당시 상황을 직접 증언한 목소리를 MBC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한 재일사학자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서 녹음해둔 건데요.

일제에 의한 강제 징용 과정과 처참한 노역 현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5백 개 분량의 카세트 테잎을 분석하고, 일본 내 징용 현장을 추적했습니다.

정영민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 리포트 ▶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항구에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외딴 산골 소라치에.

1942년 1월, 이 곳 광산으로 끌려온 박병태씨는 석회석 운반 작업에 투입됩니다.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 살인적인 노동과 반복되는 구타로 살아있는 자체가 지옥이었습니다.

[故 박병태 씨/홋카이도 시카고에 광산 징용 (1976년 육성)] "강제 연행 당한 건 1942년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대동아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할 때…"

미쓰비씨 비바이 탄광에 징용됐던 최종주씨.

수 십 m 지하에서 한국인 동료들이 먹지 못해 죽어가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故 최종주 씨/홋카이도 비바이 탄광 징용 (1972년 육성)] "배를 곯아서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도 많았고 47명이 와 가지고 12명이 죽었습니다. 전부 영양실조로…"

후쿠오카 도심에서 60km 떨어진 지쿠호 일대.

이곳의 스미토모 회사 탄광에서는, 1944년, 끌려온 조선인 3천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도주할 정도로, 작업 환경이 참혹했습니다.

[故 김석동 씨/후쿠오카 다타쿠마 탄광징용 (1969년 육성)] "오다시(야간 근무) 해 가지고 목표 달성해야 하니까 그걸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가야 되거든. 그러니까 14시간 15시간 16시간 일을 했습니다."

재일사학자 故 김광열 선생이 70년 동안 모은 조선인 강제징용 관련 기록물은 13만 여건.

이 가운덴 특히, 징용 피해자들이 장년층이던 196, 70년대에 강제징용을 직접 증언한 카세트테이프 500개가 있었는데, 취재진은 이를 단독 입수해 그 현장을 추적했습니다.

[정혜경/일제 강제동원 평화연구회 연구위원] "방대한 규모와 다양한 매체로 완결성을 갖고 있는 자료를 개인이 생산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특히, 지쿠호 일대 124개 탄광 주변의 사찰 300여 곳을 조사한 기록장을 통해 조선인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박강수 (재일교포)/후쿠오카 조선인 강제 연행 연구회 사무국장] "이거는 김삼득씨, 이거는 김도화 여자인 거 같아요. 다카야마 기순, 일본 이름인데 기순은 조선인이죠."

재일 사학자가 평생을 걸고 수집한 강제징용의 증거물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강제징용을 부인하는 일본에게 이래도 과거를 외면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MBC뉴스 정영민입니다.

(영상취재: 강건구 (경남))

정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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