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환풍구에서 숨진 30대 가장..'김용균법' 무색

원종진 기자 2019. 11. 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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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태안의 한 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다 숨진 故 김용균 씨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며 지난 1년간 이른바 김용균법도 마련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지난달 제천의 한 시멘트 공장에서 생일날 숨진 한 30대 가장의 사고 기록을 살펴봤더니 김용균 씨의 경우와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원종진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달 22일 낮 12시쯤, 32살 박경훈 씨가 제천의 한 시멘트 공장 환풍구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설비 점검 작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회사 측은 박 씨가 원래 일정에 없는 곳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멘트 공장 관계자 : 그날은 그쪽에 오후에 계획이 돼 있었는데 오전에 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박 씨 카카오톡에는, 박 씨가 사고 발생 직전까지 상급자로부터 지시를 받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박경수/故 박경훈 씨 형 : 내 동생이 지시도 없이 막 현장을 돌아다니고 점검을 하고 이런 부분에서 빨려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매체에 나가니까 저희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또 SBS가 확보한 이 회사 자료에는 2인 1조로 일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박 씨는 사고 당일 혼자 일했습니다.

사고가 난 환풍구에 철망만 설치돼 있었더라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런 설비는 없었습니다.

[회사 관계자 : (철망 같은 거는 없었나 보죠?) 그런 시설이 좀 미흡했고요. 노동부·경찰 조사 중이니까 그 결과를 봐야 될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추정해서 하는 것들은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씨가 사고를 당한 날은 그의 생일이었고, 둘째 아들 100일 잔치 이틀 뒤였습니다.

[박필수/故 박경훈 씨 아버지 : 그날 며느리가 가족 카톡방에다 '오늘 우리 경훈 씨 생일입니다. 축하해주세요' 이렇게 해놓고 밑에는 평상시에는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는데 '안전제일, 무사히 집으로' 이렇게 해놨다고요. 그런데 그날 죽어서 돌아왔으니…]

안전 설비도 엉망인 곳에서, 2인 1조가 아니라 홀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 사건과 유사한 안타까운 사고였던 겁니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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