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누가 따냐고요? 안 따야죠.. 박찬주, 시대부적응 상사" [인터뷰]

박세원 기자 2019. 11. 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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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 제공.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4일 기자회견에서 “감나무에서 감을 따게 했다는 둥, 골프공을 줍게 했다는 둥 사실인 것도 있다”고 ‘공관병 갑질’ 논란 관련한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없고, 스승이 제자를 질책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없듯이 지휘관이 부하에게 지시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관에 있는 감을 따야 한다면 공관병이 따야지 누가 따겠나”고 반문했다.

군인권센터는 박 전 대장 발언 뒤 “육군 규정에 따르면 감 따는 일을 공관병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육군 규정 제120호 ‘병영생활규정’을 보면 제3절에 ‘장병 사병(私兵)화 금지’ 항목을 두고 부대 활동과 무관한 임무를 부여하고 관사 주변 나물 채취, 가축 사육, 영농 활동 등을 지시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박 전 대장이 인정한 두 가지 행위가 갑질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해 5일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에게 물었다. 직장갑질119는 노무사, 변호사 등 노동전문가들이 뭉쳐 노동자들의 갑질 피해 사례에 대해 무료 상담을 진행하는 시민단체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의 영입 추진 보류와 관련, '공관병 갑질'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장의 행위가 갑질에 해당되나
“정부는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갑질을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라고 정의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가이드’에서는 ‘사적 심부름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지속적·반복적으로 지시’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감을 따고 골프공을 줍는 건 공관병의 업무가 아닙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대우’이면서 ‘사적 심부름’으로 갑질에 해당하는 게 맞습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특가법) 상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지난해 1월30일 오후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갑질119는 박 전 대장의 갑질을 유형화해 ‘박찬주식 갑질’이라고 표현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박 전 대장이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삼청교육대는 박 전 대장이 가서도 안됩니다. ‘단련을 통해 돌아보라’는데 갑질을 스승의 질책으로 생각한 것도 기가 막힙니다. ‘공관에 있는 감을 따야 한다면 공관병이 따야지 누가 따겠느냐’고 했는데, 감을 누가 따냐고요? 감을 안 따야죠. 업무가 아니니까요. 자신의 지시가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직원을 노비처럼 부리는 행위를 ‘박찬주식 갑질’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갑질 유형은 실제로 많습니다. 직장갑질119에는 고구마 굽기, 라면 끓이기는 물론이고 상사가 자기 밭 옥수수를 수확하라고 시킨다는 피해 사례도 들어왔습니다. 업무와 무관한 농사, 농산물 판매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약 갱신 조건으로 ‘소장이 시키는 모든 일에 복종한다’는 각서를 강요한 상사도 있었습니다. 다 올해 들어 일어난 갑질 사례입니다. 곶감을 만들거나 사적으로 선물하겠다면서 감 따라고 시킨 박 전 대장과 다를 바 없죠.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자기 직원을 노예처럼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 전 대장의 삼청교육대 발언은 한국 사회에 군사시절 문화가 뿌리 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 갑질이 만연한 이유이기도 하죠. 군사독재 시절 군대 문화가 학교와 직장, 사실상 한국 사회 전체에 남아 있는 겁니다. 30년 전의 인식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보니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지시를 내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상사인 겁니다.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박 전 대장이라고 봤습니다.”

군인권센터가 4일 공개한 육규 제120호 병영생활규정 제3절 장병 사병(私兵)화 금지(2017년 당시 규정).

-감을 따고 골프공을 줍게 하는 행위가 현재 직장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처벌되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직장 상사가 후배에게 감을 따고 골프공을 줍도록 지시하는 행위는 ①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③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입니다. 피해자 신고로 가해 사실이 확인되면 회사에 시정 조치가 내려집니다. 피해자 근무장소 변경·유급 휴가, 가해자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이 이뤄져야 합니다. 갑질을 당한 직원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했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로 보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의 영입 추진 보류와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장은 발언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여러 당에서 박 전 대장 영입을 고심하고 있다. 발언 뒤 파장을 어떻게 보나
“한국 사회에서 갑질을 환기시켜준 사람이 몇 있습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조현민 한진 칼 전무 자매가 대표적이죠.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대두됐지만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갔고 이걸 꺼낸 게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질이 범죄 행위가 됐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까지 시행됐습니다.

이 법이 적용되면서 가장 줄어든 제보가 모욕과 폭언 제보입니다. 사적 지시를 받는다는 제보도 줄었지만 여전히 있고요. 사적 용무 지시가 바로 ‘박찬주식 갑질’입니다. 감 따서 곶감 만들게 하는 행위가 정당한지에 대해 논의가 벌어지는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사들의 ‘박찬주식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사회가 지적하는 셈이니까요. 조 자매와 양 전 회장이 폭행·폭언·모욕의 아이콘이었다면, 박 전 대장은 사적인 지시를 정당하다고 착각하는 상사의 아이콘으로 꼽히지 않을까요.

아직 정당 영입은 확실하지 않지만 당내 활발한 논쟁은 건강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의원들이 박 전 대장의 갑질을 두고 괜찮다, 아니다를 논하면서 본인도 ‘박찬주식 생각’에 빠져있진 않은지 고심해볼 수 있으니까요. 이번 논의를 통해 ‘박찬주식 상사’가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지 함께 돌아봤으면 합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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