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최강시사] 박찬주 대장님,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KBS 2019. 11. 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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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청교육대 가야 돼” 발언 박찬주, 인간이길 포기한 분. 사과받고 싶은 마음도 없어
- 10대 땐 선감학원에 수용...뚝섬서 야유회 즐기다 영문도 모른 채 삼청교육대 끌려가
- 국민 보호해야할 군인들 “죽여도 된다 명령 받았다”며 무차별 폭행...교육 목적은 ‘고통주기’
- 사망자만 400여명...죽거나 장애 입은 사람 말고는 보상 없었어. 신군부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미화하다니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1>
■ 방송시간 : 11월 7일(목) 7:37~7:56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한일영 (삼청교육대 피해자)


▷ 김경래 : 며칠 전에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좀 논란이 있었습니다. 갑질 논란으로 한국당에 영입이 되니 마니 이러고 있는 건데 그거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삼청교육대' 발언을 했어요, 박찬주 대장이. 본인에 대해서 갑질 의혹을 제기했던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삼청교육대를 한번 보내야 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게 그냥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라고 본인은 이야기하겠지만 삼청교육대라는 게 굉장히 비극적인 사건이었잖아요. 그리고 피해자들이 아직 대한민국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이게 저런 식으로 지나가면서 할 이야기인가? 아마 그런 정도의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 저희들이 오늘은 삼청교육대 피해자 한 분 모시고. 청취자분들 중에 이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젊은 분들 중에는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삼청교육대가 어떤 사건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는 어떻게 해결이 되고 있는 건지, 어떤 부분들이 해결이 안 되고 남아 있는 건지 좀 여쭤보겠습니다. 좀 먼 데서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이 인터뷰 때문에 일부러. 삼청교육대 피해자 한일영 선생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한일영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마이크에 좀 가까이 대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 대전에 사신다고 제가 들었는데 그러면 새벽에 올라오신 거네요?

▶ 한일영 : 네, 새벽 2시에 출발했습니다.

▷ 김경래 : 2시예요?

▶ 한일영 : 네, 혹시라도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 김경래 : 차가 막힐까 봐?

▶ 한일영 : 네, 저기는 타이밍 저기하면 조금 많이 막히거든요. 안 되죠.

▷ 김경래 : 아니, 그러면 뭐 타고 오셨어요?

▶ 한일영 : 차 몰고 왔어요.

▷ 김경래 : 차 몰고 새벽 2시에 아드님하고?

▶ 한일영 : 아니, 아들 차 빌려서.

▷ 김경래 : 아들 차 빌려서요?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 한일영 : 아닙니다.

▷ 김경래 :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건데. 그 이야기부터 좀 여쭤볼게요. 삼청교육대 피해자시고요. 좀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 여쭤보겠지만 박찬주라는 분은 잘 모르시잖아요, 박찬주 뭐 일반 사람들은.

▶ 한일영 :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알았죠.

▷ 김경래 : 뉴스 보면서 이제 갑질 논란 이 정도만 알고 계셨을 텐데 이분이 갑자기 삼청교육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거 뉴스에서 보셨죠?

▶ 한일영 : 네.

▷ 김경래 : 그거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한일영 : 저 양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님이 이야기한 걸 보니까 뭐라고 하더라.

▷ 김경래 : 귀하신 분.

▶ 한일영 : 네, 귀하신 분, 고귀하신 분. 고귀하신 분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보니까.

▷ 김경래 : 귀한 분이다 뭐 이런 취지로 이야기를 했죠.

▶ 한일영 : 네, 그렇게 취지로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박찬주 씨 인터뷰 하는 거 보고 그 사람에게 느끼는 건 참 이런 이야기 방송에서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참인간이기를 포기한 분이구나. 나는 그렇게 참 분개했습니다, 그거 보면서.

▷ 김경래 : 그게 어떤 뜻이죠?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게.

▶ 한일영 : 삼청교육대라는 건 전두환 신군부에서 저지른 최악의 인권 유린 사건 아닙니까. 국민들도 지금 예전에는 조중동 할 거 없이 그렇게 선전을 하는 바람에삼청교육이라는 거 그거 잘 만들었다 이렇게들 생각하는 분들이 지금도 많아요, 사실은. 그렇게 하는데 육군대장까지 했던 분이 일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알 만한 분이 어떻게 그렇게 삼청교육대를 갖다가 칭송, 무슨 되게 그렇게 좋은 쪽으로 이렇게 미화시키는지 그런 면에서.

▷ 김경래 : 청취자분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선생님은 삼청교육대 때문에 어떤 피해를 입으셨는지 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기가 좀 그거를 떠올려야 하니까 힘드시겠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신 건 몇 년도에 끌려가신 거죠?

▶ 한일영 : 1980년도 8월.

▷ 김경래 : 왜,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 한일영 : 뭐 특별한 이유 없었습니다.

▷ 김경래 : 지나가다가요? 길 가다가?

▶ 한일영 : 아니, 저기 동네에 그때 이렇게 조그마한 공장에 이렇게 취직해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쉬는 날이었고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보고 옛날에는 달동네 이렇게 살아서 이웃 간에 다 알고 이러는데 7명인가 8명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 데리고 뚝섬유원지로 이렇게 놀러가게 됐어요, 제가 보호자로 해서.

▷ 김경래 : 애들 인솔해서.

▶ 한일영 : 네. 거기서 잡힌 거예요, 저도.

▷ 김경래 : 그냥요?

▶ 한일영 : 네.

▷ 김경래 : 이유도 없이?

▶ 한일영 : 뭐 특별한 이유 없고 나중에 보니까 여기 선감학원에 있을 때 너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이러다가 보니까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 있지 않습니까?

▷ 김경래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시요.

▶ 한일영 : 너무 좋더라고요, 그때 어려운 시기에 봐서 그런지. 거기서 삶이라는 글자 하나를 갖다가 팔에다가 새긴 적이 있었어요.

▷ 김경래 : 문신이 작은 게 있었군요?

▶ 한일영 : 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이제 알게 된 게 이런 것 때문에 갔다 온 걸 아니까 이렇게 또 생각합니다.

▷ 김경래 : 그것도 그냥 추정이신 거네요?

▶ 한일영 : 그렇죠. 그런데 그때 보면 다 이렇게 TO가 있어서 A급 몇 명, B급 몇 명, D급 이렇게 다 할당량이 있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거 맞추려다 보니까 무작위로 이렇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 김경래 : 그러면 애들하고 뚝섬에 그냥 놀러갔던 그거밖에 없는 거네요, 당시 상황은?

▶ 한일영 : 네, 그거밖에 없습니다.

▷ 김경래 : 아까 선감학원 이야기 잠깐 꺼내셔서 헷갈리시는 분들 있을 텐데 이게 참 비극적인 일인데 한일영 선생님은 삼청교육대에 가기 전에 어릴 때 10대 때는 선감학원이라고 또 끌려가셔서 고초를 겪으셨던 분이에요. 그렇죠?

▶ 한일영 : 네, 초등학교 6학년 다니다가 방학 때 되어서 이렇게. 그때는 가평에 살고 있었는데 방학 되어서 서울 작은집에 들르러 왔다가 잡힌 거죠.

▷ 김경래 : 선감학원은 몇 년 동안 계셨던 거예요?

▶ 한일영 : 한 3, 4년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10대 때, 어릴 때는 선감학원에서 고생을 하시고 영문도 모르고. 그렇죠? 거기서 겨우 풀려나니까.

▶ 한일영 : 풀려난 게 아니라 탈출했죠, 목숨 걸고.

▷ 김경래 : 탈출하셨어요?

▶ 한일영 : 탈출하다가 많이 죽어나갔어요.

▷ 김경래 : 네, 맞아요. 그렇게 들었는데 탈출에 성공을 하셨군요, 선생님은.

▶ 한일영 : 탈출에 성공했는데 또 건너편의 섬으로 수영해서 가야 하는데 또 거기 사람들이 붙잡아놓고 선감학원으로 다시 보낸다는 협박에 또 1년 동안 거기서 노예생활 하다가 또 거기서도 탈출을 하게 됐고 그렇게 됐죠.

▷ 김경래 : 이게 무슨 속된 말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무슨 드라마 같은 삶을 사셨어요.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으셨는데 20대가 되니까 삼청교육대에 또.

▶ 한일영 : 네,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이제 80년도 됐을 거 아닙니까. 삼청교육대로 또 이렇게 연결된 거죠.

▷ 김경래 : 삼청교육대에 일단 끌려가셨습니다, 1980년도에. 끌려가셔서 어느 정도 기간 수용이 되신 거예요?

▶ 한일영 : 4주 교육을 받고요, 삼청교육. 그 4주 교육 받고 또 그게 D급이겠죠.

▷ 김경래 : 선생님은 B급이었죠?

▶ 한일영 : 저는 B급이고 D급 받은 사람들은 4주 교육 받고 이제.

▷ 김경래 : 집에 보내고?

▶ 한일영 : 절반은 나가고 절반 추려져서 근로봉사로 넘어가게 된 거죠.

▷ 김경래 : B급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4주 교육을 받고.

▶ 한일영 : 4주 교육 받고 또 근로봉사 넘어가는데 그다음 단계는 넘어가기 전에 제가 탈출을 했거든요.

▷ 김경래 : 또 탈출하셨군요?

▶ 한일영 : 네, 탈출했죠.

▷ 김경래 : 4주 교육 이게 이제 핵심입니다. 박찬주 씨가 삼청교육대 한번 보내야겠어, 정신 차리려면. 이런 취지잖아요.

▶ 한일영 : 그렇죠.

▷ 김경래 : 4주 교육 그게 어떤 교육이었습니까?

▶ 한일영 : 그냥 딱 잘라 말하자면 거기는 그냥 지옥이었어요. 왜냐하면 일반 군인들 교육시키는 거 그거의 배로 해서 구타 이런 걸로 해서 걔네들 말로, 조교들 이야기하는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죽여도 괜찮다. 위에서 이렇게 명령 내려왔다, 죽여도 괜찮다. 뭐 그게 진짜인지 사실인지 그거는 팩트는 모르겠지만 자기들 입버릇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 김경래 : 교육받는 사람들한테 그런 식으로 협박을 했다는 거네요?

▶ 한일영 : 실제로 또 그렇게 잔인하게 구타를 심하게 했고요.

▷ 김경래 : 선생님도 구타를 많이 당하셨어요?

▶ 한일영 : 저는 다른 사람보다 더 당했어요.

▷ 김경래 : 왜요?

▶ 한일영 : 왜냐하면 첫날 입소하는 날 군기 잡으려고 그러는지 그냥 막 빨간 모자 쓴 게 조교들이죠. 또 경계병동 뒤에 이렇게 총 같은 거 에둘러 해놓고서는 군기 잡으려고 했을 테니까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하면서 이유도 없이 경찰서에서 저는 5사단이었는데 거기서 막 굴리기 시작하고 때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군인이다 그러면 국민을 보호하고 이렇게 좋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패고 그러니까 일어나서 따지기 시작했죠, 왜 패냐고. 아무 이유도 없이 죄도 없는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왜 이렇게 패냐고 그러니까 그 말에 찍혀서 한쪽에. 1시간이면 교육을 50분 이렇게 받으면 10분 동안 쉬게 하고 그러거든요. 그 10분 쉬는 시간에도 저는 따로 얼차려 받고 뭐 하고 그런 거죠.

▷ 김경래 : 교육이라는 게 어떤 거예요? 목적이 뭐예요? 4주 동안 왜 그러는 거죠?

▶ 한일영 : 그 목적은, 삼청교육을 전두환이 만들어놓은 취지는 알겠는데 우리가 무슨 거기 군 교육 유격 훈련 받고 뭐 하고 하면서 그거 받아서 어디에 써먹는지 그거는. 그러니까 그냥 고통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실제로 삼청교육대 사망자가 당시 현장에서도 사망자가 있었고 그 이후에 후유증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게 한 400명이 넘어요, 지금 밝혀진 바로는. 선생님도 목격을 좀 하고 그러셨나요?

▶ 한일영 : 그럼요. 제가 있을 때 2명인가. 저는 5사단이어서 2명인가 그러고 또 내가 이렇게 탈출해서 징역 살고 나와서는 피해자들 또 노무현 대통령 정권 시절에 과거사 진상규명한다고 그래서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었거든요, 삼청교육 문제 때문에. 그때 이야기하는 거 보면 5사단에서 팩트로 나온 거지만 단체로 이렇게 탈출하다가 총 맞아 죽은 사람이 5명인가 있고 그렇다고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 김경래 : 실제로 쓰러진 사람들도 현장에서 보셨고?

▶ 한일영 : 그 사람들은 다 봤겠죠.

▷ 김경래 : 아니, 선생님도 훈련을 받다가.

▶ 한일영 : 제가 있을 때는 2명인가 봤고요.

▷ 김경래 : 그래요? 쓰러진 사람을요?

▶ 한일영 : 네.

▷ 김경래 : 그 사람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거죠?

▶ 한일영 : 그런데 확실하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거는 확인은 못하는데 실려가고 다시는 안 왔다는 거.

▷ 김경래 : 실려가고 그 뒤로는 못 봤다?

▶ 한일영 : 못 봤죠.

▷ 김경래 : 그러면 숨졌을 가능성이 꽤 높겠네요.

▶ 한일영 : 글쎄요. 그거는 어떻게 됐나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죠.

▷ 김경래 : 어쨌든 사망자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449명이다 이렇게 숫자는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이제 탈출하시고 나서 이게 굉장히 법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탈출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또 징역살이를 하셨다고요?

▶ 한일영 : 네, 죄명이 개헌법 위반이거든요.

▷ 김경래 : 탈출을 했다는 게?

▶ 한일영 : 네, 1심, 2심, 3심, 상고까지 다 해봤는데 다 기각이더라고요.

▷ 김경래 : 유죄가 나왔다. 그래서 징역살이를.

▶ 한일영 : 그렇죠. 대법원 때는 보면 대법원 판사 중에 한 분은 이회창 씨 아시죠? 대통령까지 출마한. 그분이 또 담당 대법원 판사였거든요. 그런데 웃기는 게 뭐냐 하면 그 당시에 국선변호사님이 하여튼 그거는 제 입장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제 사건은 그쪽하고 상관이 없고 이렇게. 그러니까 무죄추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랬겠죠. 그런데 이유 없다고 해서 기각을 시키더라고요. 그런데 작년 12월에 대법원에서 그 국선변호사님이 이야기한 취지로 해서 위헌 무효. 위헌 무효 판단을 했어요.

▷ 김경래 : 선생님 사건을요?

▶ 한일영 : 내 사건이랑 똑같은 사건인데 그 사람은 10개월 받았고 저는 1년 받았는데 똑같은 사건이거든요. 같이 근로봉사해서 넘어와서 도망간 사건이고 저 역시도 도망간 사건이고.

▷ 김경래 : 선생님은 지금 그거를 재심 신청하셔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거죠?

▶ 한일영 : 1년 됐어요. 재심 아직 받아들이지는 않았는데 똑같은 사건이니까 받아들여주기는 하겠죠?

▷ 김경래 : 그거를 기대하고 지금 기다리고 계시는 거고요.

▶ 한일영 : 그렇죠.

▷ 김경래 : 그러면 그 이후에 국가에서 어떤 보상을 해준다거나 사과를 한다거나 이런 어떤 과정은 있었습니까?

▶ 한일영 : 일부분 죽은 사람들, 사망한 사람들하고 장애를 입고 그래서 그게 진단 나온 사람들에 한해서 풍족한 건 아니라도 배상 차원이 아니라 그냥 보상 차원에서.

▷ 김경래 : 선생님 같은 경우는요?

▶ 한일영 : 저 같은 건 없죠.

▷ 김경래 : 없어요?

▶ 한일영 : 그러니까 조금 아까 두 부류 외에는 없어요.

▷ 김경래 : 아니, 그런데 사실 그때 어릴 때 선감학원 그리고 20대 때 삼청교육대, 또 징역살이를 그거 때문에 하게 되셨잖아요. 그 뒤에 그냥 생각을 해도 정상적으로 아주 좀 뭐랄까요. 사회생활을 하거나 직장생활하시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 한일영 : 힘들었죠, 직장생활이라는 걸 하고 싶어도 못했고. 왜냐하면 10대 때는 배운 게 국가에서 차단을 하는 바람에 못 배워서 그랬죠. 20대 때는 삼청교육을 해서 징역 살고 나오고 난 다음에 기술이라도 배워서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기술이라도 배우려고 조그마한 공장에 들어가고 그러면 삼청교육 갔다가 나온 놈이라고 사장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지금이야 노동법 때문에 자를 수는 없겠지만 그 당시에 이야기하면 나가라고 그러면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거든요.

▷ 김경래 : 그럼에도 국가는 전혀 보상이나 이런 부분들도 없었다?

▶ 한일영 : 없었죠, 전혀.

▷ 김경래 : 지금 박찬주 대장은 사과할 뜻이 없다, 삼청교육대 발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말씀하시면서 마무리 좀 해야겠습니다.

▶ 한일영 : 저도 그런 분한테 사과 받고 그런 기대도 안 하고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런 분들한테서 사과 받아봤자 뭐 하겠습니까, 솔직히. 사과라는 게 진정 뉘우치고 잘못된 걸 갖다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데 그럴 분 같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 김경래 : 이게 그냥 지나가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심 좀 잘 진행이 되셔서 인생에 대한 보상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좀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한일영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삼청교육대 피해자 한일영 선생님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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