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신문 봐요? 스마트폰 있는데"..지하철서 사라진 아날로그 일상

권구성 2019. 11. 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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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안 본 지 꽤 됐습니다. 차분히 신문 볼 시간도 없는 데다 웬만한 기사는 다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접할 수 있잖아요.”
 
“스마트폰으로 모든 뉴스를 볼 수가 있고 유튜브를 즐겨 보는 시대에 요즘 누가 신문을 읽어요? 방송 뉴스도 잘 안 보는 판에···” 
 
“책보다 웹 소설이나 웹툰(만화)을 즐겨요. 책을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 없이 스마트폰으로 저렴하게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까.”     
 
 
세계일보 취재진이 지난 1일 오전 출근 시간대 서울 지하철 2·3·5호선을 타고 살펴본 승객들 대부분 한 손에 쥔 스마트폰을 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예상했지만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 익숙했던 종이 신문을 펼치거나 책을 넘기는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꽂힌 시선들은 포털사이트에 올라 온 뉴스를 읽거나 유튜브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영화, 드라마 등을 시청하고, 아니면 게임에 꽂힌 경우가 많았다.

◆스마트폰에 자리 내준 종이 콘텐츠···‘독서의 계절’ 가을도 무색

취재진이 이날 출근길 혼잡도가 가장 극심한 시간이 지난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출근길 지하철 안을 살펴본 결과 책이나 신문을 보는 시민은 열차 1량에서 평균 한두 명가량 만날 수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열차 혼잡도가 100%인 경우를 열차 1량 당 최대 160명이 탑승한 것으로 본다. 출근길 승객이 꽉 차 있을 때를 감안하면 1% 정도가 책이나 신문을 볼 뿐이라고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날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은 신문과 책 등 ‘종이 콘텐츠’와 멀어지는 사회 분위기를 놓고 시대적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봤다. 직장인 이영준(55)씨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그것(신문이나 책을 멀리하는 현상)의 긍정과 부정을 따지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50대 남성 A씨도 “모든 정보가 담겨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게 대세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대중교통에서의 미디어이용’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교통 이용 시 스마트폰 사용율은 2017년 90.3%로 파악됐다. 2011년 67.52%였던 수치가 90%대까지 치솟은 것이다. 반면 그 외의 모든 매체의 점유율은 바닥을 쳤다. 2011년까지만 해도 신문 등 종이매체가 7.8%를 기록했는데, 2017년에는 0.7%까지 감소했다. MP3, 휴대용 라디오 등 오디오기기의 점유율도 20%에서 7.6%로 줄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정이 이렇다보니 흔히 가을을 가리켜 부르던 ‘독서의 계절’이란 말도 들어본 지 오래다. 정부가 독서를 권장하는 취지로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을 발효하고 ‘독서의 달’을 지정한 것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독서의 계절이란 말도 무색해진 것이다.

◆여전히 책·신문을 읽는 사람들, “그만의 매력 있어”···“생각하는 근육 길러줘”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거스르는 사람들도 있다.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31)씨의 손에는 책 한 권이 있었다. 그는 분주한 출근길에도 잠시나마 책을 읽는다. 박씨는 “주로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데, 집중해서 보기 힘들지만 종이 위의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며 “짧게는 반 페이지에서 길게는 두어 페이지를 읽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씨가 읽고 있던 책은 정인성 저자의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였다. 박씨는 “요즘 고민거리가 좋아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며 “발걸음이 무거운 출근길에 작게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 내에서 한 시민이 책을 보고 있다. 이우주 기자
 
출근길에 신문을 꼭 읽는다는 정모(57)씨는 “요즘은 PC나 스마트폰으로도 뉴스를 볼 수 있지만 신문으로 보는 것이 또 다르다”며 “신문은 편집된 순서나 제목의 크기 같은 걸로 강조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챙겨보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던 직장인 윤모(32·여)씨는 “지하철에서 볼 생각으로 e북을 사기도 했지만 종이로 보는 게 더 집중된다”며 “디스플레이와 종이가 주는 시각적 차이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씨는 “까슬까슬한 종이 위에 정갈한 글씨체를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기도 한다”며 “지하철이다 보니 집중해서 보는 데 한계가 있어서 단편이나 시집을 주로 본다”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일부러 책을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60대 남성 B씨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으면 편리하지만, 인식 체계를 많이 갉아먹는다”며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지만 거기에 갇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C씨는 “스마트폰을 주로 쓰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든다”며 “지하철에서라도 책을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고 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스마트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독서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백 대표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근육이 길러지는데, 영상이나 짧은 문장으로는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독서를 통해 자기만의 철학과 삶의 설계를 갖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권구성·김동환·안승진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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